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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Aug 12. 2021

팬데믹을 끝내려면 (2) 마음 속 팬데믹을 끝내자

서울대학교 코로나19 보건대학원 기획연구단 조사결과를 보고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서 소개해드립니다.


서울대학교 코로나19 보건대학원 기획연구단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중 절반 가량은 "확진자가 늘었지만 이전과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라는 것에 동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90% 가량은 "여전히 확진자 통제가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국민들은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안전하다고 느낄까요?


같은 조사에 따르면 일일 확진자 121명 정도, 백신접종률은 75%가 되어야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0명에 가깝게 확진자가 줄기 전에는 현재의 방역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80% 가까이에 달했다고 하네요.

(조사 결과 전문을 찾아보려 했으나 찾기 힘들어, 링크를 따로따로 드립니다.)


이 조사결과를 본 것과 함께,  <한겨레>에 실린 오명돈 코로나19 중앙임상위원장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도 비슷한 내용이니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공감하고,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집단면역은 오지 않을 확률이 높으며, 학교를 열어야 한다거나,

(관련 글: 정부의 학교 개방 조치를 환영하며 (brunch.co.kr))


통제조치의 편익(확진자 감소)과 비용(교육 손실, 자영업자 고통, 아동 발달장애 등)을 고려하여 침착하게 새로운 전략을 논의해야 한다는 말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죠.

(관련 글: "확진자 0"의 비용과 편익 (brunch.co.kr))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팬데믹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백신접종률이 75%가 되면, 일일확진자가 121명으로 줄어들 수 있을까요?


백신 접종으로 인한 집단면역은 오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백신접종률이 75%가 되어도, 그 이상이 되어도 일일확진자가 121명으로 줄어들지는 못할 겁니다.


백신 접종 완료율이 74.82%로서 우리 시민들의 목표인 75%와 가장 가까운 아이슬란드의 7일평균 확진자는 인구대비로 우리나라의 7배가 넘습니다. 


즉, 우리나라로 따지면 하루 만 명 이상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돌파감염 또한 1,500명을 넘었다고 하는 것에서 보듯,  확진자 수 제로를 위해서는 백신이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정말 확진자 0을 원한다면 강력한 봉쇄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봉쇄 또한 확진자 0은 달성하기 힘듭니다. 다음은 봉쇄로도 확진자 0이 달성하기 힘든 몇 가지 이유입니다.

봉쇄를 집행해야 하는 경찰이나 공무원은 출근을 해야 할까요? 그들이 움직이면서 감염되면 어쩌죠?

전기나 수도 등 사회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에 먹을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밖에 나가도 될까요?

봉쇄로 마트 직원이 출근을 안해서 마트가 문을 안 열었으면 어떻게 하죠?

마트가 문을 열어도, 마트에 넣을 물건, 가령 쌀이나 계란 등을 만들어야 하는 농부 등이 출근을 못해 제조가 안되면요?

아니면 제조까지는 되었는데 이를 배달할 물류 체계가 봉쇄되어 마트에 물건이 입고가 안되면요?

위와 같이, 100% 봉쇄를 불가능하게 하는 의문사항끝이 없습니다.


봉쇄의 목적은, 확진자 급증으로 인한 의료체계 마비로 치료도 못받고 죽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목적으로 하는 봉쇄는 "적정 수준에서 확진자 수를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여러 의문사항의 경우 예외를 두면 됩니다. 사회의 필수적 기능은 흘러갈 것이고, 필수 종사자와 그들의 접촉자 사이에서는 감염이 조금씩 진행될겁니다.

그러나 비필수적 기능(가령, 식당과 카페 등)의 경우  봉쇄로 감염이 어느 정도 예방될 수 있을 것이고, 의료 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진자 수가 내려오면 다시 봉쇄조치를 풀면 됩니다. 물론 봉쇄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적정하게 보상해주어야 하겠죠.


그러나, "적정 수준의 확진자"가 아니라 "확진자 0"을 목표로 하는 봉쇄정책은 위의 여러 가지 예외를 둘 수가 없습니다. "예외 없이, 무조건 나오지 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집에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간다고 할지라도요.


만약 "확진자 수 일일 121명"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면,

기다림의 결실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더 좋습니다.

드라마 <Falkenberg Forever>가 보여주는 것처럼,

서울대에 가고, 삼성전자에 취업하고, 강남에 아파트를 사야만 완벽한 삶은 아닙니다.

적정 선에서 만족하고, 다른 것들과의 균형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죽음을 방치하자"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령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찾자는 겁니다. 코로나가 0이 된다고 우리가 행복해질까요? 0이 되기 위해 지불한 우리의 비용때문에 오히려 코로나만 잡고 다른 것이 파산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균형을 찾자"는 주장입니다.)


"확진자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해보자, 학교가 그 시작이다


하지만, 확진자 121명은 오지 않는다는 현실과는 별개로,

여전히 이를 원하는 시민들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확진자 통제 일변도로 정책을 집행한 정부와,

확진자가 늘어나면 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떠들썩했던 언론의 잘못이 큽니다.


그럼, 이런 시민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코로나 외에 다른 것들을 말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가령 얼마 전 교육부의 등교 정상화 발표는 그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안데스 테그넬 스웨덴 공공보건국 국가 역학자가 말한 것처럼,

"학교 폐쇄는 해머로 파리를 잡는 것"입니다. 파리는 잡을 수 있겠지만 바닥 또한 부숴집니다.

또한 코로나는 파리 한 마리는 아닙니다. 한 마리 잡아도 다른 파리가 계속해서 돌아다니겠죠.

파리 하나 잡기 위해 바닥을 부수는 것이 좋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학교는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교육 결손은 장기적으로 건강과 기대수명의 감소로 이어지는 명확한 증거가 있으므로,

코로나 잡기 위해 학교를 폐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학교는 "코로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라는 걸 설득하기에 가장 쉬운 장소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코로나보다 더 중요한 것"의 범위를 천천히 확장시켜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교육 손실입니다. 교육 이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코로나보다 무서운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생활치료센터의 의료진, 중환자실로 돌리자


 오명돈 위원장과 함께 인터뷰를 한 김동현 한림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확진자가 쏟아지면 이를 수용할 만한 의료체계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라고 하며 더 강력한 통제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이를 수용할 만한 의료체계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건 사실이겠지만,

이것의 해결책으로 "의료체계의 준비"가 아니라 "강력한 통제"를 주문한 것은 의아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놔두고 왜 곁가지를 건드린 걸까요?

(그리고 코로나가 발발한 지 2년이 다가오고 있는데, 아직도 의료체계가 준비되지 않은 것은 당국의 실책임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교수님께서 강력한 통제를 푸는 전제조건으로 언급하신 "백신접종률 90%"실현 가능성이 없어보이기조차 합니다.

12세 미만에게는 허가된 백신이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를 고려할 때,

현재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다 맞아도 90%가 겨우 되는 수준이고 희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백신 접종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구조 출처: 통계청)


또한, 백신접종률이 아무리 높아져도 아이슬란드의 경우에서 보듯 통제를 완화하면 확진자는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체계를 준비시키지 않는다면, 강력한 통제는 영원히 지속되어야 합니다.


의료체계를 어떻게 준비시켜야 할까요?


다른 나라가 무증상이나 경증 환자의 경우 자가치료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생활치료센터라는 개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생활치료센터가 왜 생겼는지 검색해보니,

코로나가 초기, 경증과 무증상 환자까지 모두 입원시키다보니 막상 중증 환자가 입원할 곳이 없어 집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이때문에 생활치료센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즉,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도입한 것인데,

지금은 오히려 생활치료센터가 의료체계에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무증상과 경증까지 생활치료센터에 입소시킴으로서, 다른 곳에 활용될 수 있는 의료와 행정인력의 발이 묶이게 되고, 생활치료센터의 포화(응급실이나 위중증병상의 포화는 의료체계 붕괴겠지만, 생활치료센터의 포화는 그냥 생활치료센터의 포화입니다. 두 가지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를 막기 위해 확진자 0 정책을 전환할 공간이 없어지는 겁니다.


생활치료센터 제도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확진자 통제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고,

백신접종에도 불가하고 확진자 통제는 불가하므로 앞으로도 통제는 풀리지 않을 겁니다.


의료체계의 준비를 위해, 지금보다 중환자 병상을 늘리고 물적/인적 자원을 보강해야 합니다.

의료 자원은 한계가 있으므로 생활치료센터에 투입되어 있는 의료진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활치료센터는 방역정책의 경직성을 가져오는 등 부작용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헬스조선

고령자 백신 접종에 집중하자


앞서 백신접종을 아무리 많이 해도 집단면역은 오지 않는다라고 했는데요,

그럼 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백신의 중증과 사망 예방 효과는 확실합니다.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한정한다면, 코로나는 독감 수준의 질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위험군의 경우 백신 접종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80대 돌파사망률은 0.7의 오타입니다.


기존에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했던 70% 집단면역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래 백신 접종이 불가능한 10%(어린이, 알러지 등 백신접종불가인구) 가량에 20% 가량의 무임승차 정도는 허용할 수 있으니, 맞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일정 부분 있어도 집단면역은 달성 가능했습니다.


이제 90%가 백신을 맞아야 집단면역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접종이 불가능한 10%를 제외하고는 무임승차가 전혀 없어야 함을 의미하므로,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젊은 층은 원래 위중증이나 사망 확률이 낮기 때문에 백신 접종으로부터 오는 편익이 크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백신의 잠재적 편익이 위험보다 더 크기 때문에 맞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제 날짜가 되면 예약할 것입니다)

맞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결정을 존중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령층의 백신 접종 이익은 비용을 훨씬 상회하고,

따라서 고령층이라면 백신은 반드시 접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령층이 아니라도 기저질환이 있다면 접종하는 것이 좋구요.


확진자 증가에도 불구하고 사망자를 늘리지 않으려면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것이 절실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백신 접종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고위험군은 반드시 백신을 접종해야 합니다. 사진출처 뉴스1

비용과 편익 계산을 해보자

단기사망률: 확진자가 사망까지 10일 걸린다는 가정 하에, 사망자에 10일 전의 확진자를 이용하여 추정한 사망률. 가령 1월 11일의 사망자가 1명이고 1월 1일의 확진자가 100명이라면 단기사망률은 1%


위 표는 한국과 스웨덴 확진자, 한국과 스웨덴 사망자, 한국과 스웨덴 사망률, 한국과 스웨덴 백신 접종률 등을 비교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과 스웨덴의 통제 정책도 비교하였습니다.


최근 상황으로는 확진자는 스웨덴이 더 많고, 사망자는 한국이 더 많으며, 백신접종률은 스웨덴이 더 높은 편입니다.


어디의 코로나 상황이 조금 더 나은지는 개인별로 생각이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어디의 통제가 더 심한지는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통제조치 덕분에 우리는 확진자 수를 통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통제조치로 인해 가지고 오는 편익, 즉 확진자 수의 감소 또는 정체가 통제조치의 비용, 가령 자영업자의 고통, 일반 시민들의 우울감 등 정신건강 악화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까요?

https://youtu.be/m_jQ-203XdU

조금은 더 정상에 가까운 스웨덴 스톡홀름의 일상. 2021년 8월 촬영

우리는 항상 균형을 생각해야 합니다.


"방역정책 전환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물론 방역 그 자체만 생각하는 의료전문가로서는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으나,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델타 변이 유행으로 확진자 수 통제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방역정책 전환을 논의할 때"는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팬데믹 또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팬데믹을 끝내기 위해, 지금부터 의식을 바꾸고 방역정책 전환을 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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