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2번째로 감염된 케이스는 이탈리아에서 스웨덴 스톡홀름 아를란다 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왔고, 아를란다 공항부터 고텐부르크까지 고속열차를 이용해서 집으로 갔으며, 며칠간 지역사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스웨덴에서도 확진자의 방문 장소를 알려달라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궁금증이 빗발쳤지만 공공보건국과 지역정부의 대응은 한결같았습니다.
"개인정보라서 알려줄 수 없다."
(물론 알려줄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공공보건국은 기차에서 근처에 앉은 사람과 승무원, 확진자가 방문한 장소 등에 대한 동선을 추적해서 2명의 확진자를 추가로 발견하는 등, 추적 작업은 비공개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왼쪽부터 사회보건부 장관 레나 할렌그렌, 총리 스테판 뢰벤, 공공보건국 카린 테그마르크 뷔셀
확진자의 동선을 적극적으로 공개했던 한국과는 상당히 다른 반응입니다.
이 차이에 대해 대부분 언론은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중시하는 서구인들의 특징이라고 썼고, 이것이 옳은 설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저는 확진자의 정보를 알리지 않았던 스웨덴의 행동이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는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와중에, 불필요한 개인정보가 함께 공개되었으며,
때문에 "유흥 주점에 가니 걸리는 게 당연하고 이런 사람은 죽었으면 좋겠다"와 같이 확진자를 탓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초기 미지의 전염병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조심했던 것과는 달리, 경험적 데이터가 쌓이며 사망률이 엄청나게 높지는 않다는 점은 더 이상 코로나를 조심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높은 사망률로 통제조치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을 생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국 어딘가에는 화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비난의 화살은 확진자에게 돌아가고 있고, 이 때문에 불필요한 사회의 갈등과 반목이 커지고 있습니다.
아래는 한국의 초기 코로나 보도입니다.
신천지 사태가 터졌던 당시의 코로나 보도
사실 우리나라도 초기에는 코로나의 심각성을 주로 보도했었습니다.
마비된 의료체계, 병원에 입원을 못해서 자택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당시에는 모임 금지와 같은 조치 없이 법적 효과가 없는 이동 최소화를 "권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권고사항에 따르며 눈물겨운 연대의식을 발휘했습니다.
그럼 최근의 언론 보도는 어떨까요?
최근의 코로나 보도
이제는 확진자의 동선 공개를 넘어 확진이 되지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를 따르지 않은 사람마저도 보도해버리고 있습니다.
세상에나, 나는 지금 숨이 막히는 무더위에 마스크도 잘 쓰고(그러나 제 생각에 무더위 야외 마스크 착용은 거짓 보호기는 합니다), 여행도 못 가고, 친구들도 제대로 못 만나고 있는데, 누군가는 "노마스크에 풀파티"를 벌이다니요?
바이러스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는 연대의식은 사라지고, "노마스크에 풀파티" 하는 사람들은 "공공의 적"이 되어버리고야 맙니다.
이런 기사는 초기 미지의 바이러스이던 시절에는 소위 "욕먹을까봐 유사한 일을 못 하게 하는" 효과, 그리고 경각심 제공이라도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코로나 사망률이 "생각보다는" 낮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경각심이 떨어진 상황에서, 통제조치가 길어지며 더 이상 자유의 제한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지금, 소위 "일탈 보도"는 불필요한 갈등을 양산하는 이상의 역할을 못 하고 있습니다.
자발적 "이동최소화 권고"의 효과가 강제적인 "3인 이상 집합금지"보다 높았습니다. 연대의 힘은 명확합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갈등의 결과는 위의 이동분석(기준: 2020년 1월) 표에서 나타납니다.
3인 이상 집합 금지 등의 강제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작년 2월의 단순 권고보다 효과가 더 낮아져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의미 없는 확진자 탓은 그만하자
기후변화와 관련한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은 남탓입니다.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있다면 문제해결을 위해서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의 심각성은 존재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그 문제의 원인인 (것으로 생각하고 싶은) 사람-가령, "노마스크 풀파티"를 즐기는 사람-을 내부의 적으로 만들어욕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도 갈등과 반목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스웨덴의 코로나 보도는 어땠을까요?
스웨덴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문제의 심각성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백신으로 정상화의 길이 열리고 있다는 긍정적 소식이 더 많기는 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의 코로나 보도
그리고,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확진자 탓하기"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시민들은 수많은 희생을 치뤘지만, 바이러스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한다는 연대의식을 지켜낼 수 있었고, 코로나 자체에서는 한국보다 큰 피해를 냈지만, 적어도 사회의 신뢰는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은 코로나라는 전투에서 (지금까지는) 이겼지만, 계속 이런 보도가 지속된다면 남은 전투에서 수많은 (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양산하며 전쟁에서 패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웨덴의 이동 데이터. 확진자 탓 보도가 없었지만, 한국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덧붙임으로, 한국의 최근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이나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인식을 확진자에서 사망자로 전환하자
지금 한국의 사망자 수는 코로나 발발 이래로 가장 안정되어 있는 시기 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이는 고령층 등 위험집단에 대한 백신접종 등으로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탈동조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코로나 전투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사망자 수가 줄어듦으로써, 잠시 "휴전"을 선언하고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속가능한 방역,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를 위해 이제 사회에 누적된 갈등을 치유할 시기입니다.
우선 의미 없는 소위 "내부의 적" 기사들을 없애고 코로나 자체의 심각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 저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지쳤으면 이럴까, 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단순히 무개념이라고 치부하고 넘겨버리기에는 이들도 지금까지 저희와 비슷한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방역을 위해 안전한 활동을 알려주고 최소한의 일상을 보장해야 합니다.
1년동안 지속된 통제조치로 시민들 모두가 지쳤습니다.
이제 더 이상 집에 머무를 수만은 없습니다. 때문에, 보건 당국이 (가령 바다에서의 해수욕, 숲에서의 산림욕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을 권장함으로써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생업 빼고는 모든 활동이 범죄행위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술집이나 숙박업도 누군가에게는 생업인데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