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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dsommar Aug 09. 2021

정부의 학교 개방 조치를 환영하며

학교는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아야 합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말했듯, 확진자 0은 이상적인 상태입니다.


코로나 확진자 제로 말고도 이상적인 상태는 많죠.


예를 들어 제가 생각하는 저의 이상적인 상태는, 일을 안해도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이 있고, 그에 걸맞은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소유하고 있으며, 아픈 데 없이 건강해서 일년에 병원도 한 번 안가도 되고,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외모를 가지고 있고 등등...입니다. (써놓고 나니 너무 물질적이네요...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상이 실현되기 힘들듯이, 확진자 0도 실현되기 힘든 이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을 인정하고, 코로나와 다른 것 사이의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1000명 대 확진자가 나왔을 때 사망자가 20명이라면,

백신 접종으로 고령층이 보호받는 지금은 같은 1000명의 확진자가 나와도 사망자가 2명만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2명의 죽음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80대 이상 돌파사망률은 0.09%로, 미접종자를 포함한 18.04%보다 훨씬 낮습니다. 백신접종의 효과는 명확합니다. 자료 종합하여 직접 작성.


그렇다면, 우리는 "확진자 수 1000명"에 근거해서 똑같은 통제를 해야 할까요?

아니면 "사망자 수 20명->2명"에 초점을 맞춰서 통제를 조금 완화해도 될까요?


"확진자 제로"라는 목표에서는 당연히 확진자 수에 근거해서 똑같이 통제를 해야겠지만,

그러기에는 코로나 이외의 다른 사회 문제, 가령 자영업자의 고통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지금 우리나라와 스웨덴의 상황을 비교하면, 8월 6일 기준으로 7일평균 인구당 확진자는 스웨덴이 더 많고, 인구당 사망자는 한국이 조금 더 높습니다. 확진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더 적은 이유는 백신접종률의 차이가 어느 정도 설명할 것입니다.

지금(21.8.6) 기준으로는 스웨덴 코로나 상황과 한국 코로나 상황에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웨덴 방역정책은 지금 한국보다 훨씬 더 느슨한 수준입니다.

즉, 비슷한 상황이지만 한국 방역 정책과 스웨덴 방역 정책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웨덴 방역정책과 우리나라의 비교. 유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우리나라에 비해 통제가 훨씬 약합니다. 자료 종합하여 직접 작성.

코로나를 막는 것은 우리나라가 더 우수할 것이고,

이에 따른 반작용으로 코로나를 막기 위한 비, 가령 자영업자의 고통 또한 우리나라가 더 클 것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맞다고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방역완화를 통한 코로나 대응으로 인한 부작용 완화,

방역강화를 통한 코로나 자체에 대한 대응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작용 중, "학교 폐쇄"와 관련된 발표가 오늘 나왔습니다.

전면 등교에 대해 발표하는 유은혜 교육부 장관

저는 이 발표를 보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의 말대로, "학교는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아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스웨덴에서 가장 저명한 언론 중 하나인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에서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은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는 정부에 도전적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는 내용의 긴 칼럼을 실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는 코로나19를 통제하기 위해 많은 국가에서 앞다투어 내놓았던 학교 폐쇄라는 조치가 학생들에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논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교육 손실은 신체와 정신을 파괴시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청소년 그룹의 불안과 우울이 학교 폐쇄 이후로 커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신적 피해는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가정의 아이들이 더 크게 받았다고 합니다.


한편, 신체적 변화는 어땠을까요?

먼저 아동학대에 대한 보고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아동학대가 줄었을까요? 그것보다는, 학교에 안 나와서 알 수가 없으니 보고가 안되었을 확률이 높겠죠.)

또한 전반적으로 과일과 채소의 섭취가 줄어드는 등 영양 불균형이 심화되었고, 비만율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학교보다 집에서 부모님이 밥을 대충 준다고 비난하면 안됩니다. 맞벌이인 경우 어쩔 수 없이 대충 챙겨주시거나, 이도 아니면 밖에서 사먹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1/4 가까운 학생들은 수면 장애를 경험했다고 하네요.


이 연구 결과는, 교육과 건강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교육 손실은 장기적으로 건강과 기대 수명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는 기존의 연구를 다시 한 번 증명한 것입니다. 사실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었죠.


열려 있는 학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육부의 발표에 대한 여론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 지지 성향이 강한 다음이 이 정도고, 네이버로 가면 학교를 닫지 않겠다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은 더 심합니다.


저는 이것이 어린이와 같이 사회적 약자의 의견이 과소대표되는 경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예전 강서구 서진학교 사태에서 보듯, 사회적 약자의 의견은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아이는 발달장애가 아니니까 한방병원을 짓는 게 훨씬 좋습니다.


걸어서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시민에게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서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장애인단체의 시위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최근 정부에서 "자영업자의 고통이 너무 크다"라며 강한 통제의 부작용을 걱정할 때에도, 다음 선거까지 투표권이 없을 확률이 높은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는 소외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8월 9일) 정부는 좋지 않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결국 어려운, 그리고 옳은 결정을 했습니다.

코로나 통제와 교육 격차의 사이에서, 처음으로 "다른 것"을 전면에 내세운 것입니다.

(물론 학교가 감염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등으로 변론을 하긴 했지만, 코로나 확산을 감수하고 다른 무엇인가를 선택했다는 것은 커다란 진전입니다)


학교 폐쇄는 앞으로 아이들의 남은 인생에서 복구할 수 없는 커다란 충격을 남길 것입니다.

특히 부유한 아이들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아이들에게 그 충격은 더 큽니다.


이는 위의 연구결과에 언급되어 있는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수준뿐만 아니라, 학업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령, 자기의 방에서 개인 노트북과 와이파이로 원격교육에 접속하는 학생과, 단칸방에서 노트북이 없어 형제자매와 함께 스마트폰으로 원격교육에 접속하는 학생의 교육격차는 더 심해집니다.)


열려 있는 학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스웨덴 공공보건국 국가 역학자 안데스 테그넬이 말한 것처럼, 학교 폐쇄는 "해머로 파리를 잡는 것"입니다.


파리 잡겠다고 바닥을 해머로 치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파리는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닥또한 망가집니다.


그런데 파리를 잡기 위해 바닥을 부수는 일이 옳은 일일까요?

게다가 코로나는 파리보다 큽니다. 가령 돼지일 수도 있습니다.

돼지를 해머로 잡을 수 있을까요? 

바닥만 부숴지고, 멧돼지는 살아서 도망친다면 깨진 바닥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래 인용문은 안데스 테그넬이 학교 폐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웨덴의 약한 조치에 대해 여러 비판이 있었지만 학교 폐쇄를 하지 않은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폐쇄는 한두 번 정도는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열고 닫을 수 없으며, 이것은 재앙이 될 것입니다.
학교가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는 장소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동시에 어린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입니다.
만약 그들이 학교에서 성공한다면, 그들의 삶은 빛날 것입니다.
만약 거기서 실패한다면, 삶은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들의 수명은 줄어들 것입니다.
그들은 더 가난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를 닫고자 할 때 이것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합니다.

스웨덴 공공보건국 국가 역학자 안데스 테그넬

학교 정상화, "코로나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하는 첫걸음으로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학교를 여는 것이었지만,

그것 말고도 우리는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자영업자의 고통, 통제조치가 길어짐에 따르는  시민의 우울감과 무기력감 등의 정신건강 문제도 모두 보듬어줘야 합니다.

백신 접종으로 높아진 확진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사망자 수 통제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집단 면역까지 기다린다"기에는 고통이 너무 크고,

높은 백신 접종에도 확진자 규모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영국 등을 볼 때 백신만으로 집단 면역이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갑자기 엄청난 부자가 되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얻고 호감 있는 외모를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집단 면역 또한 오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독감이 집단 면역이 없듯, 코로나 또한 마찬가지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불가능한 목표인 집단 면역만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이내에서, 코로나와 다른 것 사이의 균형을 찾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다른 균형을 생각하는 첫걸음으로 학교 개방이 정해진 것에, 무척 기쁜 오늘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정부의 정책을 주로 비판적 입장에서 바라봤지만, 오늘 하루는 비판을 멈추고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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