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은혜
누구나 광고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유명한 모기약, 바퀴벌레약을 만드는
생활용품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약 3년 동안
바퀴벌레라인의 첫 스타트를 끊고
마지막 포장 작업까지 라인 전체를 담당하며 일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고, 그 경험은 지금도 내 기억에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글로 풀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자 보물 같은 시간이었다.
공단이라는 공간엔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훨씬 많다.
중국 노동자들이 주를 이루는 라인, 고려인들이 중심이 된 라인 등
각 구역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국적별 문화’가 있었다.
“빨리빨리 해. 왜 이렇게 느려.”
“그러면 쉬는 시간까지 하는 거야. 쉬는 시간 없어.”
어설픈 한국말이지만 어쩐지 익숙한 말투다.
그들은 한국인들에게서 배운 말을 서로에게 쓰며
조금 아는 한국어로 기싸움을 하기도 했다.
“너 한국말 못 해? 못 알아들어?”
무심한 듯 던진 말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참 기운 빠질 수 있는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눈에 띈 한 사람이 있었다.
검은 피부에 키가 큰 청년.
처음 보는 인상이었고, 어디서 왔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함께 일하던 언니들이 나를 부추겼다.
“야, 너 영어 잘하잖아. 한번 말 걸어봐~!”
그래서 용기 내 한 마디 던졌다.
“헤이 맨~ 웨어 아 유 프롬?”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내 얼굴을 본다.
‘우와~ 영어 했다!’는 표정이다.
나도 괜히 발음 신경 쓰며 눈 한 번 실룩거려 줬다.
그 친구는 “가나”에서 왔다고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외쳤다.
“와우! 쌤 오취리~!”
(당시 TV에서 쌤 오취리가 꽤 인기 있었던 때였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반가운 듯
자신의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이 프렌드~”
정말 쌤 오취리와 닮은 친구들이 줄줄이 나왔다.
우리들은 그 사진을 연예인 사진 보듯 줄 서서 구경했다.
나는 또 물어봤다.
“왓츠 유어 네임?”
“임마누,”라고 들렸다.
“임마누? 임씨야? 나도 임씨야! 잇츠 미~ 쌤쌤!”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유어 빠덜 코리언?”
내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노~ 크리스천. 임마누엘.”
그 이름 속엔 의미가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귀한 이름, 임마누엘.
“너 교회 다녀?”
나는 기쁜 마음에 바로 우리 교회를 소개했다.
꿈의교회. 우리 교회 자랑은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고된 라인 작업 속 10분 남짓한 휴식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웃기고 싶었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었다.
그때 그 시절.
웃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고된 현실도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땅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조금 더 따뜻한 식사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내가 겪었던 그 순간들이,
그들에게도 작은 웃음과 은혜로 남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