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 수술을 둘러싼 세 여자 이야기

인생네컷의 배신 – 눈이 사라진 사진

by 호뚜니의 작은방


쌍꺼풀 수술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제 마음과는 별개로,

큰아이 수능이 끝나자마자 수능할인관련있는 병원을 찾아 상담을 다녔습니다.
아이 상담을 핑계 삼아 저도 슬쩍 상담을 받아봤는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지금 모습이 훨씬 좋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쌍꺼풀 수술을 하면 오히려 얼굴 전체의 균형이 깨져 다른 부위까지 손대야 할 수도 있다는

설명에 기분이 묘했습니다.
안 하는 게 예쁘다는 칭찬인지? 수술해도 티가 안 날 거라는 뜻인지? 혼자 웃었습니다.


그런데 더 웃긴 이야기는 인생네컷을 찍고 나서 벌어졌습니다.
딸아이들은 친구들과 놀고 돌아오면 꼭 사진을 한 장씩 가져오곤 합니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인생네컷이라니, 저도 가족들과 함께 찍고 싶어 외식 후 인생네컷으로 향했습니다.
모자, 머리띠 등 다양한 소품을 들고 즐겁게 촬영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포토샵으로 잡티 제거를 했는데, 제 눈이 사라진 겁니다!
언제부터 제 눈이 잡티였을까요?ㅜ.ㅜ 새우 눈도 아니고 잡티라니, 빌어먹을 AI 수정!
다시는 인생네컷에서 수정 기능은 사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어쨌든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더 신뢰가 갔기에,

막내딸(10살 터울) 수능 때 혹시나 있을 할인 혜택을 기대하며 나의 쌍꺼풀 수술은 일단 접기로 했습니다.


사실 쌍꺼풀에 대한 제 생각은 남들과 조금 다릅니다.
요즘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쌍꺼풀 수술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어리고 얼굴도 변할 시기에 너무 일찍 칼을 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어린 나이에 벌써 화장을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의 책임인지,
아니면 ‘요즘은 다 하니까’라는 분위기가 문제인지 씁쓸합니다.


10년 전, 친정어머니께서 쌍꺼풀 수술을 하셨습니다.
연세가 드시니 눈꺼풀이 처지는 현상 때문에,
그리고 60이 넘으면 쌍꺼풀 수술이 효도 선물이라며 자식들이 해드리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성형에 대해 다소 고지식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 얼굴이 예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제 얼굴로 50년 넘게 살아왔습니다.

눈이 작다는 말로 "눈은 어디에있니?" " 눈은 뜨고 다니니?"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 풀이나 쌍꺼풀 테이프로 몰래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성인이 되어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것에 대한 제 마음은 변함없었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면,
저는 제 진짜 모습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저는 저이고 싶습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웃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제 얼굴을 더욱 당당하게 마주봅니다.
잘난 척이 아니라, 이것은 저의 자부심입니다.


이제 어머니의 쌍꺼풀 수술 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수술 전날 저녁, 어머니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엄마, 내일 안 무서워?"
"아니, 무서워."

어머니의 솔직한 대답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놀란 어머니께서 왜 우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 엄마 보고 싶을까 봐."

어머니는 더욱 놀라셨습니다.
멀리 떠나시는 것도 아니고, 아프신 것도 아닌데….
어머니는 제 눈물을 닦아주시며

"괜찮아, 엄마는 엄마니까 괜찮아."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렁거리는 눈시울은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사위에게는 쑥스러우셨는지 "머 하러 왔노?"라며 수줍게 물으셨습니다.
연세 때문에 한쪽 눈을 두 번이나 시술하셔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너도 쌍꺼풀 할 거면 젊을 때 해라. 나는 이제 다시는 안 한다!"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이 부어 있었지만, 쌍꺼풀이 있든 없든 어머니는 여전히 사랑하는 저희 엄마였습니다.

말투와 엄마의 냄새 , 행동, 그리고 느껴지는 따뜻함까지,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보는 건 결국 눈보다 마음이라는 걸, 그날 알았다.

그렇다고 당장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았습니다.


큰아이 쌍꺼풀 수술 날,
친정어머니의 수술을 통해 느꼈던 불안한 감정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저 아이가 후회하지 않기를, 의사의 실수만 없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수능 엄마 서비스로 제공된 비타민 링거를 맞으며 걱정은 한가득이였지만 어느새 잠들었던 나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수술 후 딸아이는 거울만 보는 ‘거울 귀신’이 되었습니다.
"엄마, 어때?"를 연발하며,
서울에서 수술하고 지하철을 타고 오는 친구들이 독하다며 감탄하면서도
자신의 힘듦을 토로했습니다.

예뻐질 거라는 기대감과 붓기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설렘이 뒤섞인
딸아이의 모습에 저도 덩달아 기다려지지만,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남편은 제 쌍꺼풀 수술을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가끔 "이대로 만족 못 하겠니?"라고 묻지만,
남편은 늘 만족한다고 대답합니다.(살아 남을려는 자)

하지만 남편은 제가 쌍꺼풀 수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은근히 내비칩니다.
교회 예배에서 제가 율동을 하고 있으면,
앞에서 손으로 자꾸 눈을 크게 뜨라고 손짓을 합니다.
남편의 그 손짓에 저는 눈을 부릅떠 보곤 합니다.


이번 글을 통해 저는
쌍꺼풀 수술에 대한 저의 인식,
친정어머니와 큰딸의 수술 경험,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더 나아가 요즘 시대의 성형에 대한 변화된 시각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시대가 바뀌며 성형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더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모든 사람이 수술 결과에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를 바꾸다 보면 또 다른 부분이 거슬려 손대게 되고,
그렇게 강남미인이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형은 이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적 분위기와 기대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미적 기준이 점점 낮은 연령대에서 형성되는 현실,
부모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성형외과 앞에서 망설였던 제 마음과,
엄마로서 딸을 지켜보는 마음,
그리고 성형을 경험한 친정어머니의 흔들림 없는 따뜻함까지—
이 모든 것이 저에게는 하나의 이야기이고, 삶의 기록입니다.

이번 글을 통해,
성형에 담긴 허와 실,
우리 사회가 가진 미의 기준에 대한 문제,
그리고 진짜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용기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내 눈은 여전히 작지만,해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처럼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웃음을 나누며 살아가려 합니다.
오늘도 해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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