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만가자
중간으로 살아가는 은혜
하나님께서는 늘 감사하게도, 나를 ‘중간’에 서게 하신다.
"무얼 하든 중간만 가라."
어릴 적부터 참 많이 들어온 말이다.
‘중간만 가자’,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
하지만 돌이켜보면,
차라리 가만히 있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중간이라는 자리는
가만히 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간’이라도 되기 위해서는
무지하게 애써야 한다.
나는 지금, 중간인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중간으로 살게 하셨다.
그게 부끄러워서도,
누구보다 잘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중간이라는 자리는 애매하다.
열심히 해도 “와, 정말 잘한다!”는 말을 듣기는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중간의 삶이,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는
반드시 남보다 뛰어나야만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세상의 기준을 뒤흔든다.
중간만큼만 해도,
"저 사람도 저렇게 하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생긴다.
내가 자존감 없이 웅크린 채 사는 모습이 아니라,
조용히 담담하게 앞에 서는 모습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세상으로 향하게 만든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동화책 읽어주기 대표 자리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아이를 키우며
“이제 내 인생은 여기까지지…”라고 말하는
젊은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책 한 권을 읽는 일,
그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용기가 아니다.
그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
함께 손잡아주고, 칭찬해주는 사람.
그것도 바로 나처럼 조용히 ‘중간’을 걷는 사람의 몫일 수 있다.
나는 율동을 좋아하고, 열심히 한다.
그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다.
그럼에도 스스로 생각할 때, 나는 여전히 ‘중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앞에서 몸을 움직이면
사람들이 편하게 따라온다.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중간에 세우신 이유가 아닐까.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그래서 나는 그저 감사하다.
중간만 가면 세상은 쉽게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은 아신다.
이 글도, 아주 잘 쓴 글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고
누군가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이 든다면,
지금 당장 써보시라.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이
여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중간’의 이야기는 참 많다.
하지만 그것은 자랑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조용한 위로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