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수박 한 덩이의 기억
행복할 수밖에
여름엔
수박 하나면
행복할 수밖에.
동글동글
초록에 검정 줄무늬.
속은 빨갛고
검정 주근깨가 박혀 있지.
큰 수박 한 덩어리.
우리 식구 모두 모여
깍둑깍둑 썰어 예쁜 그릇에 담아두면
막내는 학교 다녀오자마자
포크 들고 하나씩 꺼내 먹는다.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 큼직한 수박 한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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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여름밤,
친구들과 수박 서리를 하던 날이 떠오른다.
해가 지기만 기다렸지.
과수원 할아버지가
저녁 드시러 들어가시면
그때다 싶어
우린 밭으로 조심조심 다가갔어.
손으로 콩콩, 수박 머리를 두드리며
“어, 이놈이다!”
탁! 하나 들고
신나게 달렸지.
누가 쫓아오나 뒤도 돌아보고,
무거워도 절대 놓칠 수 없으니
손에 꽉 쥐고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렸다.
정해진 곳은 없었어.
그냥
우리가 자유로웠던 만큼 달렸지.
그러다
수박이 손에서
퉁— 하고 떨어지고
쨍그랑!
바닥에 깨져버리기도 했지.
우린 소리도 못 지르고
박살 난 조각들을 들고
다시 달리고, 또 달렸어.
어느 정도 달린 뒤
“여기쯤이면 괜찮겠지?”
그늘진 둔덕 아래 둘러앉아
깨진 수박을 손으로 집어 먹기 시작했어.
얼마나 꿀맛이던지!
사실, 덜 익은 수박이었지만
그땐 몰랐어.
아니, 몰라도 괜찮았어.
왜냐면 우리는
안 들켰고,
해냈고,
함께였으니까.
입에, 옷에
질질 흘려가며 먹던 수박.
땀은 뻘뻘, 손은 끈적끈적.
다 먹고 나면
냇가로 달려가
시원하게 씻고
아무 일 없던 듯 집으로 들어갔지.
쉿—
오늘 서리는 성공!
지금도 여름이 되면
그 수박 생각이 나.
덜 익었지만
덜컥 뛰었던 마음,
달콤했던 순간,
뛰고 또 뛰던 어린 나.
그래서일까.
수박만 보면
행복할 수밖에.
여름의 맛은, 꼭 빨갛고 달기만 한 건 아니었다.
때론 서툰 용기와 친구들 웃음 사이에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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