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64일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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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1. 2025
벌써 존에게 내부공사를 맞긴지 1년이 지났다. 홈니스들과 약물중독자들이 망처 놓은 우리 집은 베트맨의 고담시티를 생각나게 할 만큼 폐허가 되었다. 그때 우리에게 나타난 친구 존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 같았다. 모든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아무 염려 하지 말라며 우리를 위로했다. 믿도 끝도 없이 그런 말을 믿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다니... 우리는 정말 비록 사기꾼이라도 이런 위로의 말, 힘이 되는 말이 필요했었나 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인테리어 공사의 잔금은 공사 끝난 후 준다고 하는데, 선금, 잔금 개념 없이 우리는 존이 달라는 대로 모든 공사금액을 카드로 메꿔가며 입금해 주었다. 그 결과 보기 좋게 5000만 원 이상 사기를 당했다. 그것도 친구에게. 내가 천사라고 극찬했던 친구에게...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건축 관련 영상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다.
"좋은 건축업자를 고르는 법은요, '다 괜찮습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안 오셔도 잘 진행되니 걱정 마세요'라고 안심시키는 업자가 아니에요! "
"진짜 좋은 업자는요, '와서 보세요. 어떤지 확인하세요. 본인의 집인데 확인하셔야죠'라며 자꾸 건축주를 불러대는 업체입니다!"
그리고 보니 존은 늘 이야기했다. 모든 것이 너무 잘 진행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본인의 아이들이 집을 렌트하고 싶어 하는데 그래도 되겠냐며 선 듯 세입자도 되어주었다. 설마 본인의 아이들이 사는 집인데 얼마나 신경을 쓸까? 우리는 고마운 마음에 더 고마운 마음을 더하여 믿고 존의 아이들에게 랜트를 주었다.
존의 아이들이 몇 개월 거주하고 이사를 나가기로 결정한 날, 우리는 집 내부를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감이 안된 타일은 기본이고, 모든 집안의 문들이 규격이 제대로 맞지 않은 채 못에 의지하여 겨우 걸려 있었으며, 천정마감, 바닥 마감도 대충 눈가림으로 덮어두었고, 클로젯 문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테이핑 없이 페인트 칠을 했는지 모든 창문과 조명은 페인트로 덕지덕지 지저분하게 덮여 있었고, 부엌 카운터 탑에 떨어진 페인트는 제대로 지우지 않고 에폭시로 덮어 두어 음식 할 마음이 싹 사라지도록 만드는 지저분한 부엌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케비넷 한 짝은 도대체 어디로 도망갔단 말인가!
공사를 진행하다 어려우면 어렵다고 이야기해 줬으면 고마웠을 터였다.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존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정말 눈에 보이는 곳만 그럴듯하게 발라놓았다. 몇 달 전부터 연락이 두절된 존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미안하고 부끄러운 건 죄 없는 그의 어린아이들 몫이었다.
다른 인테리어 전문가분을 모셔서 재공사 견적을 받았다. 자그마치 2만 불 견적이 나왔다.
이제는 눈물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심했다. 우리 스스로 레노베이션을 해보겠다고. 앞으로 인건비가 높은 캐나다에서 집주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이런 능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업치료사인 신랑과, 피아노 선생님인 내가 어떻게 이 집을 수리할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겠지만 기왕 날린 돈이라면 비싼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마음 단단히 먹기로 했다. 유튜브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이 좋은 시기에 우리라고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존 레일!
이름이 존이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여. 당신이 아니기를...
성이 레일인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여. 당신이 아니기를...
이름이 존이며 성이 레일인 당신이여. 네 아이들 보기에 부끄러운 줄 알기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병원에 출근하고 금요일 토요일은 요양원으로 출근하는 신랑이 공사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하루 주일밖에 없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거주하는 우리 집에서 에드먼튼 집까지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라는 것이다. 의욕만으로 시작했다가는 금방 포기하고 뒤로 나자빠질게 뻔한 싸움이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SOS메시지를 드렸다. 지금으로선 신랑 옆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은 아빠밖에 없다. 또 이런 핑계로 7년 만에 아빠를 뵙고 싶기도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아빠는 "언제 가면 되는데! 당장이라도 갈 수 있다!"라고 하시며 내편에 서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아빠의 두 달 캐나다 살이가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