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1> 9월 21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아빠는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으시다. '무사히 탑승하셨겠지!'라고 믿으며 좁은 비행기 안에서 잠 못 이룰 아빠처럼 나도 뒤척이며 잠자리에 들었다. 핸드폰에 에어캐나다 앱을 깔아놓으니 바로바로 알림 문자가 왔다.
'보딩 하세요!'
'탑승하세요!'
'밴쿠버에 일찍 도착할 예정입니다!'
'짐을 찾으실 필요 없이 환승하세요!'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문제는 이런 업데이트된 문자를 아빠가 아닌 내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로 전달되는 이 메시지가 아빠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서 내 핸드폰 번호로 신청해 두었다. 덕분에 새벽 1시, 3시, 5시, 7시 계속 알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밤을 지셌다. 설렘인지, 걱정인지, 행복인지, 흥분인지, 내 감정을 알 수가 없다.
밴쿠버에 도착하실 시간이 훨씬 지났다. 환승할 때까지 대기시간이 2시간 조금 넘게 있기는 하지만 입국심사는 제대로 하셨을지, 환승장은 잘 찾으셨을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도착했다고 카톡을 주실만도 한데 아무런 연락이 없어 더 걱정스럽다.
난 국제선을 타본 지 너무 오래돼서 아무것도 정보를 드릴 수 없었다. 인터넷에 돌고 있는 이런저런 카더라 통신을 전해드렸는데 혹시 그 정보중 잘못된 정보로 인해 고생을 하고 계신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난다.
지금 시간 오후 1시 45분, 에드먼튼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출발할 때까지 2시간이 남았다.
캐나다 식구들이 걱정하는 걸 알고 계시기에 비행기가 랜딩 하자마자 바로 카톡을 주실줄 알았는데...
왜 연락이 없으신지 걱정이 된다. 엄마와 함께 오실 때는 아마도 당신만 믿고 계신 엄마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서로 의지하는 마음으로 어렵지 않게 에드먼튼까지 오셨을 것이다. 또 그때는 지금보다 7년이나 젊으셨을 테니 주변 반응에 대한 순발력과 눈치도 빠르셨을 것이다.
혼자 오시는 길이 얼마나 떨리셨을까?
실수라도 해서 자식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건 아닌가 얼마나 염려를 하고 계실까?
한국에 계신 엄마에게는 연락을 하셨을까?
갑작스러운 시차변화로 피곤해 지쳐계신 건 아닌가?
별 쓸 때 없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비록 밴쿠버와 에드먼튼이라는 거리가 있지만 우리는 같은 캐나다 하늘아래 있다. 이 사실 만으로도 아빠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같은 하늘 아래 있다. 7년 만에.
14시간 비행동안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다면서 집에 도착하시자마자 손자와 팔씨름 한판이 벌어졌다.
밤 11시 30분.
온 동네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고요하기만 한데 에슨 시골마을 우리 집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럽고 활기차다. 70대 노장은 아직 늙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아빠는 손자에게 팔씨름을 도전하셨다. 예전에 울보 꼬마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해야 할 듯 이에 질세라 아들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사실 둘 다 "으앗!" , "헛!" 하며 기압소리만 요란하지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시합에 힘차게 손만 잡고 있는 듯 보였다.
"할아버지! 대단하신데요? 저도 내일부터 다시 운동 가기 시작해야겠어요. 저 충격받았어요. 할아버지도 여기 계시는 동안 운동 같이 하실래요?"라며 아들이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함으로 달밤의 팔씨름이 마무리되었다.
말이라도 살갑게 해주는 아들을 보니 뿌듯하다. 언제 이렇게 상대방을 헤아릴 줄 알만큼 성숙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