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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Sep 26. 2024

안녕 류머티즘

Edson Alberta

류머티즘을 앓아온 지 13년이 되었다. 막내를 낳고 호르몬 이상과 자가면역질환으로 열손가락에 류머티즘이 생겼다. 30대에 얻은 류머티즘은 나를 너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오는 심한 통증과 후끈거림으로 일상생활뿐 만 아니라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류머티즘 약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을 때는 약에 대한 정신적 부작용으로 인해 치료를 지속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내 몸에 스스로 주사를 놔야 는데 그때 주사기에 주입해야 했던 약이 참 예쁘고 영롱한 노란색이었다. 피부를 문지르던 거즈에 뭍은 알코올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노란색 주사약이 시각을 자극하면서 극심한 울렁증에 시달렸다. 결국에는 주사 맞기 3일 전부터 마치 입덧하듯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하며 몸이 약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주사를 맞고 나면 다시 3일 동안 울트라 파워를 가진 후각으로 인해 잘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제일 힘들었던 건 노란색만 보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울렁증이었다. 그때 깨달은 건 이 세상에는 노란색이 참 많다는 것이었다. 예쁘게 보여야 할 노란색이 나에게는 공포의 색이 되었다. 색과 함께 떠오르는 알코올냄새와 주사기가 노란색을 극혐 하게 만들었다.


이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한 치료와 규칙적인 생활로 약물을 줄여오던 중 작년에 의사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었다. 한마디로 류머티즘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이다.


"나의 모든 환자들에게 너의 사례를 소개하고 싶을 정도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1년 뒤에 다시 한번 검사를 해보겠지만 앞으로 우리가 서로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수고했어!"


닥터 케이츠(류머티즘전문의)의 말에 코끝이 찡해왔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하셨다. 완벽한 1년이었다. 약으로부터 해방! 다시 청춘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오른쪽 눈에 누군가가 밤사이에 바셀린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듯 시야가 뿌옇게 가려졌다. 운전은 물론이고 양말의 제짝을 찾지 못할 만큼 시력이 없었다. 응급으로 의사를 만났다. 류머티즘 약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킨다. 그중에 하나가 시력상실이기에 1년에 한 번 늘 정밀 검사를 받아왔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병원 대기실에는 여전히 많은 노인분들이 계셨다. 물론 이곳에서 난 가장 젊은 환자 중 한 명이다. 오랫동안 다시는 찾아올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닥터그리브(안과전문의)를 보면 반가워해야 하는 건가...

너무 어려운 영어라 정확히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물이 맺혀야 할 눈의 매끄러운 면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엄청 굴곡이 심해졌다는 것 같다. 울퉁불퉁한 면이 사물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뚜렷하게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닥터그리브가 생각하는 원인으로는 첫째, 그동안 복용해 왔던 약의 부작용. 둘째, 약물중단으로 인한 리액션이었다. 나는 또 시력회복을 위한 독한 스테로이드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점점 시력이 돌아왔다. 적어도 바셀린을 바르고 다니는 답답한 느낌은 사라졌으니 이젠 운전도 할 만하고 양말 짝도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다.

어쩌면 안 보이는데 익숙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40대 중반을 지나며 노안도 시작되었는지 책 속의 글도 잘 읽히지 않았고 착용하고 다니던 안경도수가 맞지 않은 듯 불편해졌다. 나이 듦의 당연한 증상이다. 

이제는 안경을 끼지 않는다. 희미해진 시력에 완벽적응한 나는 우스개 소리로 "나 나이를 거꾸로 먹나 봐! 시력이 더 좋아져서 안경을 안 껴도 돼!"라고 웃으며 넘겼다.




피부가 너무 아팠다. 그냥 스치는 옷깃에도 마치 가만히 있는 의자다리에 발가락 킥을 해서 숨도 못 쉴 만큼의 순간적 고통이 밀려오듯 그런 신경통과 근육통이 생겼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데 내 몸에 닿는 모든 촉감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패밀리 닥터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류머티즘 때문에 그런 것 같아. 의사를 다시 만나보는 게 좋겠어." 맞다. 이 또한 류머티즘환자들이 겪을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였다. 류머티즘 때문일 수도, 복용한 약 때문 일 수도 있는 부작용이다. 닥터케이츠를 다시 만났다. 1년 6개월 만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난 또다시 류머티즘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안녕, 류머티즘.


북클럽 가족들과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마녀체력님의 <미리, 슬슬 노후대책>, 이근후 님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나이 듦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앞으로 더 살아가야 할 40년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나이 듦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그분들이 피하지 못하고 겪어야 할 신체적 불편함과 고통을 어떻게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시는지 지혜를 엿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나이 듦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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