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친구들이 하나, 둘씩 지하 음악실로 모였다. 딱히 십대들이 갈만한 곳이 없는 시골타운은 아이들에게 따분하게 그지없는 곳일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레슨이 없는 주말에는 음악실을 무료 오픈한다. 물론 어떻게든 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악기연습을 했으면 하는 사심이 가득한 계획임은 숨기지 않겠다. 하지만 음악에 관심 있는 아이라면 언제든, 누구에게든 오픈되어 있는 공간이다.
오늘 음악실을 예약한 팀은 3명인 듯 보였다. 부끄럼 가득한 모습으로 수줍게 들어오는 아이들은 아들의 친구들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었다더니 오늘이 첫 연습날 인가보다. 아이들은 음악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안타깝게도 시골 학교에는 음악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탓에 기본적인 음악 이론도 배워보지 못했다. 하지만 음악이 좋아서 영상을 보면서 혼자 연습을 해왔다니 그저 기특할 뿐이다. 부끄럽지만 피아노 선생님으로 다른 아이들에겐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정작 아들에게는 피아노를 가르치지 못했다. 물론 여러 차례 시도는 했으나 결과가 아름답지 못했기에 이러다가 모자관계가 틀어질 것만 같아서 밀어붙이질 못했다.
에너지와 엉뚱함이 넘쳐야 하는 10대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우리 아들은 아주 소심하고 소극적이며 조용한 성격이다. 여러 명이 부대끼며 땀을 흘려가며 하나가 되는 팀경기보다는 조용히 자신만 통제하면 되는 개인경기를 선호한다. 여러 친구들과 시끌벅적 몰려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한 명의 친구와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이런 아들의 성향을 잘 알기에 친구들은 어떤 아이들인지, 또 좁은 연습실에서 무엇을 할지 궁금증이 폭발 직전이었다.
음악 수업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들의 밴드 연습이라니!
음악실을 안내하는 척하며 은근슬쩍 따라 들어갔다. 한 녀석은 건반을 치고, 한 녀석은 그럴듯하게 폼을 재며 전자기타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은 드럼의자에 앉았다. 아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더 이상모른 척할수 없어 무심한 듯슬며시 문을 닫고연습실을 나왔다. 엄마의 극성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파투가나면 안 될노릇이기에 최대한 귀를 쫑긋 세우고 모든 레이더를 지하실에 집중했다.
당연히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음악을 찾아 블루투스 스피커로 듣고 따라 하며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나름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잔뜩 각을 잡고 각자의 악기 앞에 앉았지만, 악기소리보다는 아이들의 노랫소리만 들려왔다. 소심한 아이들의 힘찬 노랫소리에 기립박수라도 쳐주고 싶었지만, 미안하게도 열정을 다하여 목청껏 불러 대는 아이들의 노래는 기괴한 목소리에 음이탈을 장착한 웃음 버튼이었다.
결국 한 녀석이 소리를 질렀다.
"야! 야! 노래하지 마!"
다른 한 녀석이 대꾸를 했다.
"안 돼! 노래해야 해! 노래가 없으면 반주가 더 이상해. 이곡은 꼭 노래를 해야 한다고."
그러다 끝내 껄껄껄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자기들도 듣는 귀가 있다면 얼마나 엄청난 합주를 하고 있는지 알터이다.
신기하게도 1시간 하고도 20분이 넘도록 아이들은 지치지 않게 노래를 불렀다. 노래 속에 완전히 심취하는 듯했다. 더 신기한 건 조금씩 아이들의 악기소리가 하나로 열을 맞추기 시작했으며, 아이들의 노랫소리도 눈치껏 악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열심히 집중해서 노력한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1시간 넘게 같은 음악을 듣다 보니 내 귀가 이 연주에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내 피아노 콘서트에 특별공연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 날이 온다면 아이들이 폼나게 무대에 서있는 그 모습 자체로도 너무 사랑스럽고 즐거울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의 연주를 '잘했다 못했다'로 평가를 내릴 어른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4-5세 어린 학생들은 귀를 틀어막으며 "시끄러워~"라고 속에 있는 소리를 솔직하게 질러댈지도 모르겠다.
이 작은 공간에서나마 자신 있게 기타 줄을 튕기고 드럼스틱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미안! 노래)를 지르는 이 순간이 조금은 스트레스 해소가 되기를 바란다. 이 모든 순간들이 우리 모두에게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을 것을 알기에 찐하게 커피 한잔 내려놓고 음악 감상에 빠져보았다. 아이들의 사춘기가 끝나감이 자랑스럽고 아쉬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