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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Sep 12. 2024

자존감 회복 유효기간

Edmonton downtown

난 사랑을 참 많이 받았다. 내가 받은 사랑에 대해 의심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나를 믿어 주시는 부모님, 이유 없는 호출에도 언제나 달려와줄 친구들, 아침에 눈을 뜨면 고민 없이 가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고, 돌아올 집이 있었던 안정적인 생활들. 그때 내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견딜만했고, 도전할 만했고, 하나님도 행운도 모두 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에게는 자존감이 있다는 것과, 그것의 존재여부에 따라, 건강상태에 따라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이유도, 기회도 없었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관계로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노를 저어야 하는 상황.

나만 믿고 세상에 태어난 새로운 생명에 대한 책임감.

변함없이 따뜻한 사랑으로 나를 봐주시는 사람들의 부재.

매 순간 내 한계를 경험하게 되는 이민생활.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찾아오면서 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교과서 적이며 이상적인 부부관계처럼 어려운 시간들을 신랑과 의논하고 의지하며 이겨나갔다면 좋았으련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시작은 그렇지 못했다. 영어를 잘했던 신랑은 금방 사람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문화에 적응했고 영주권을 위한 영어시험과 전문가로 일하기 위한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반면 영어도 초보, 집안살림도 초보였던 나는 아이도 제대로 돌볼 줄 모르는 사고뭉치 초보 엄마였다. 지금처럼 구글번역기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처럼 유튜브를 통해 육아정보를 넘치도록 얻을 수 있었다면 난 좀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을까? 20년 전 난 쇼핑하는 것부터 심지어 집 전화를 받는 것까지 신랑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였다. 집안일과 육아까지 신경을 써야 했던 신랑은 당연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고, 영주권 신청 자격에서 멀어지며 렌트비를 벌기 위해 공장까지 나가게 되었다. 내가 내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탓에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모든 계획이 뿌리부터 완전히 뽑혀버린 것이다.


아프다고 들어 눕는 건 사치였고, 속상하다고 투정 부리는 건 철저한 이기심이었다. 이렇게 난 점점 혼자가 되었다. 경제적으로 버겁고,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믿는 나와, 모든 것을 혼자 하고 있다고 믿는 신랑과의 관계가 너무 어려웠다. 남편이 던진 원망의 말들이 칼날이 되어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혼자 운전을 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대로 교통사고가 나서 내가 불구가 된다면 보험료도 받고, 치료도 받고 앞으로 장애인 할인으로 우리 가족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여기는 캐나다 이니까...'

하지만 기본 자동차 보험 이외에 내 이름으로 들어놓은 보험이 하나도 없기에 보험금마저 우리 생활에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신랑에게 돌봐야 할 장애인 한 명이 더 생기는 것 뿐이었다.

가뜩이나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 같은데, 이 몸뚱이조차 아무짝에도 쓸대가 없다고 생각하니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구질구질하고 역겨웠다. 이런 힘든 마음을 신랑에게 내색할 수도 없었다. 신랑 또한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무게를 견디며 위태롭게 겨우겨우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태풍이 몰아치는 바닷가 위에, 낡은 돗하나가 겨우 걸려있는 작은 나무배를 타고, 힘겹게 바둥바둥 바다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를 붙잡고 있어, 그런데 너는 내 뒤에서 밝게 웃으며 '우와! 파도가 멋있네!' 하며 마치 다른 사람 쳐다보듯 구경만 하고 있는 것 같아 "

어느날 신랑이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만큼 본인도 너무 힘들게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것도 도움이 못 되는 내가 원망스럽다는 이야기였다. 신랑 또한 그 누구에게도 힘든 마음 털어놓지 못하고 맘속에서 곪아 터져서 나온 말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족을 책임저야 하는 가장이라는 무게까지 짊어졌으니 말이다. 신랑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억울하긴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구차한 변명만 될 뿐, 내 존재가 도움이 안 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우울한 감정이 아이들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늘 아이들 앞에서는 모자란 엄마처럼 웃고 또 웃었다. 장난치고 농담하고 웃고 또 웃었다. 부모님께도 연락드릴 수가 없었다. 돈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없는 그 마음은 얼마나 속상하실까. 부모 된 입장이 되어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예배마다 빼놓지 않고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신다는 부모님이신데 그 기도에 응답은커녕 더 힘들어진 사실을 아신다면 그분들의 새벽기도가 더 눈물과 고통으로 얼룩질 것 같아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한국의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혼자 많이도 울었다. 그것도 소리 내 울지도 못했다. 꺼이꺼이 꾹 꾹 이 감정들을 눌러왔는데 소리 내 울어버리면 모든 것들이 터져버려 마치 역겨워 치울 수 없는 오물이 되어 내 세상을 덮어버릴 것 같아 조용히 점잖게 쪼르륵 눈물을 흘리는 게 고작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살아갔다. 어느 날은 괜찮은 듯, 어느 날은 다 나은 듯, 어느 날은 다시 우울한 듯.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하셨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가정으로 토론토에서 이주한 목사님이셨다. 아무리 목회 때문에 믿음으로 알버타 시골마을까지 왔다지만 이곳에서의 적응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인들이 마음을 열고 환영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었지만 힘든 마음은 위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예배 후 친교시간 사모님이 일어나 몇 마디 말씀을 시작하셨다. 솔직히 말씀에 집중하지 않았기에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집중을 했더라도 내 영어실력으로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갑자기 사모님이 울기 시작하셨다. 한 분, 두 분 할머니들이 일어나시더니 사모님의 손을 붙잡기도 하시고 어깨에 손을 얹기도 하시며 둥글게 모이기 시작하셨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모님 주변을 둘러싸고 기도를 하기 시작하셨다. 참 아름답고 따뜻한 모습이다.


부러웠다. 나의 외로움, 그리움, 어려움과 사모님의 마음을 비교 할 순 없지만, 자신의 마음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모님이 부러웠다. 모든이들의 관심과 위로를 받으며 중심에 서있는 사모님의 모습이 부러움을 넘어 질투가 나기 시작했다. 사모님의 상황이 이해가 되기 보다는 더 사랑받기 위해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아무래도 난 과거의 상처에서 회복되지 않은 듯하다.

이제 남편과 이야기도 제법 통하는데...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는데...

허점투성이 엄마였지만 우리 세 아이들 너무 예쁘게 잘 커 주었는데...

게다가 이제 난 마을에서 꽤나 유명한 피아노 선생님인데...

나 이렇게 가진 게 많은 사람인데...

눈물이 났다.


이번에는 참지 않고 울었다. 모두들 사모님을 위해 긍휼 한 마음으로 울면서 기도하는 중이라 울고 있는 내가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난 기도하지 않았다.

억울해서 울었다.

내가 너무 불쌍해서 울어주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두렵고 서러웠던 그때의 나를 위해 울어주었다.

나와 늘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에게 나를 왜 외면했냐고, 버렸냐고 원망까지 퍼부었다.


싫어도 오늘하루를 살아가야 했기에 힘겹게 하루하루 나아갔던 시간들이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그때의 그 상처들이 치유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처에 피가 멈췄을 뿐 새살이 돋지는 못했다.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힘들 때 나에게 날아와 꽂혔던 신랑의 말을 어쩌다 다시 듣게 되었을 때, 차를 세워두고 눈물만 흘렸던 그 장소를 지나갈 때, 하루 햇살이 너무 밝고 아름다워 더 서럽고 우울했던 그날과 똑같은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될 때 '쿵'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이미 과거가 되었고 너무 오래돼서 기억마저 희미해진 감정들도 있지만 아직도 나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자존감 회복에 유효기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단지 너무 늦지 않게 그때의 어린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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