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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Oct 03. 2024

어머님의 40대, 나의 40대, 내 딸의 40대

패미로얄 일상

Edmonton Alberta

딸아이가 캐나다 정부에서 인정하는 18살, 공식적으로 성인이 되는 날이었다. CRA (Canada Revenue Agency)에서 생일축하 카드와 함께 올해에 있을 선거에 참여하라는 선거 신청서가 함께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성인이 된다는 건 다양한 사회적 위치에서 자격이 부여되고, 자신의 일에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알려주는 희비가 교차하는 재미있는 순간이다.


딸아이는 이제 그 어떤 생일선물도 요구하지 않는다. 생일이라고 무언가 특별한 걸 기대하지도 않는다, 부모에게 바라는 것도, 친구들과의 생일파티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 또한 처음으로 성인이 된 자녀를 가진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하나이든 열이든 모든 주어진 상황에서 늘 나는 초보 엄마였다. 아기가 태어나던 순간, 걸음마를 떼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는 시기, 첫 등교날과 사춘기 시절을 보낼 때도 아이는 성장하고 있었지만 난 늘 초보엄마였다. 하지만 성인 된 딸 앞에서 이제는 초보엄마가 아닌 듯하다.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아이에게 속마음을 내보이기도 하고,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의 조언을 받기도 한다. 이제는 아이와 절친이 되어가는 과정을 밟아가는 것 같다. 아이와 함께하는 수다시간이 나에게 힐링이 될 때가 많다.


18세인 딸은 많은 꿈을 꾸고 있다. 멋진 대학생의 모습을 꿈꾸기도 하고, 당당한 사회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무엇이든 다 해낼 것 같은 자신감과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아이가 40세가 되었을 때 과연 꿈을 이루었을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지금의 딸의 모습처럼 의기양양해 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의 내 모습처럼 여전히 방황하고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오지랖을 떨기 시작했다.

혹시나 힘들어하고 방황하고 있을 미래의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이 났다.

"지금 네가 서있는 그 자리가 지금까지 꿈꿔왔던 그런 곳이 아닌 것 같을 때, 가 지나온 시간들에 후회와 두려움이 생길 때, 갑자기 잘못된 길로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에도 꼭 기억해. 과거에 미련을 갖고 걱정을 하기보다는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도록 해. 내일의 너 자신을 생각하며 지금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럼 언젠가는 네가 원하는 모습의 너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이것은 내 딸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넌 늘 빛나는 아이야."

"네 안에 그 빛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포기하지 않고 늘 배우는 자세로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나서 너의 모습을 되돌아보았을 때, 결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왔음에 감사하게 될 거야."





이제 40대 초반이니까! 라며 스스로에게 관대했던 부분이 많았는데 어느덧 40대 후반이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렵다는 제2의 사춘기 40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지금 이 순간도 과거가 되겠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엄마의 40대는 어땠어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40대를 맞이한 내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지금의 나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다 문득 어머님이 보내신 40대 시절이 궁금해져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의 40대는 어떠셨을까? 어머님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실까?


"어머님, 어머님의 40대는 어떠셨어요? 인생에서 그 시간이 가장 많이 힘들다고 하는데, 어머님께서는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참고로 우리 어머님은 한 편의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온갖 어려운 일들을 겪으신 분이시다. 그 시절 앳되고 젊은 어머님은 어떤 생각과, 위로와, 의지로 살아내셨는지 궁금했다.


"요즘 젊은이들 너무 힘들지. 우리 세대보다 배움이 많은 너희들은 훨씬 더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아야 하는데 안타깝구나. 나는 열심히 사는 데에만 바빠서 무언가를 생각할 틈도 없었단다. 그저 아이들이 잘 자라주는 모습 만으로도 행복하고 위로받았지.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시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40대가 그냥 지나가 버렸구나. 세월이 이렇게 흘러 가끔 뒤를 돌아보면 내가 했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후회하는 일도 많단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까지도 감사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나에게는 가족이 있으니까 말이다."


열심히 사는 데에 몰입하다 보니 힘들다는 생각도 못했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투정하는 것 자체가 아직은 마음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기상을 알리기 전 고이 잠들어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살아낼 나의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하나님의 평안함이 함께 하시길 기도해 본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편히 잠들지 못한 지친 신랑의 뒷모습을 보며 살며시 격려라는 에너지를 담아 꼭 안아본다. 지금 이 시간 내가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40대를 보내는 미래의 딸에게 지금의 젊은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더 남았다면,

"지금 이 순간 너와 함께 하는 가족들을 꼭 안아주렴. 무슨 말이 필요하겠니.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나의 가족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줘. 그리고 오늘 하루도 힘차게 또 시작하는 거야. 너답게! 너에게 주어진 시간이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가는 거야! 2024년 지금의 40대를 살아가는 엄마도 오늘을 그렇게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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