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기숙사로 들어간 큰 딸이 두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비록 2시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지만 아이의 부재는 큰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딱히 대화가 많은 집도 아니었고, 살갑게 재잘재잘 하루 일과를 떠들던 아이도 아니었다. 가족과 있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평범한 10대 여자 아이였다. 학교와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을 빼면 집에서는 하숙집처럼 밥 먹고 잠만 자는 일상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독립을 한다고 해도 별 변화가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아이의 빈방을 내가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잠깐 흥분도 했었다. 아이의 기숙사는 생각보다 아주 훌륭했다. 혼자 쓰기에 딱 맞는 아담한 방에는 사무실용 넓은 책상이 있었고, 침대의 쿠션도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찬바람 하나 맞지 않고 바로 카페테리아로 내려가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언제든 아이를 위한 음식이 뷔페식으로 준비되어 있는 곳이었다.
짐을 싸면서 신랑과 나의 관점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아마 아빠와 엄마의 차이점일 것이다.
신랑은 아이가 노트북과 태블릿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노트북이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며 데스크톱을 준비했다. 또 큰 스크린으로 편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며 큼지막한 스크린까지 구입해 책상에 설치해 주었다. 프린트기까지 설치해야 한다는 신랑을 요즘은 프린트 안 하고 바로 이메일로 과제를 제출한다고 간신히 설득해 책상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의 눈에는 그냥 버려진 공간이었던 침대와 책상 사이의 빈자리를 찾아 알뜰하게 사이즈가 딱 맞는 전자 키보드를 설치했다. 공부하는 중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피아노 연주를 하라는 아빠의 깊은 뜻(?)이 담긴 선물이었다. 솔직히 피아노 연주를 계속했으면 하는 아빠의 사심 가득한 선물이었다.
아침에 깨워줘야 간신히 늦지 않게 학교에 갔던 아이인데, 아침잠이 많은 아이가 과연 늦지 않게 수업에 잘 참석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여기서 시작된 나의 걱정은 늦게 일어났다고 아침도 거르고 수업에 들어가면 어쩌나, 불규칙적인 식사 습관으로 자가면역에 또 문제가 생겨서 고생을 하면 어쩌나, 몸이 아파서 1학년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면 어쩌나, "어쩌나" 걱정이 쓰나미가 되어 밀려왔다. 카페테리아까지 가지 않고도 방에서 간단한 간식정도는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니 냉장고를 구입했다. 비타민 D, C, B, 종합비타민도 구비해 두었다. 물만 부어서 먹으면 한 끼 식사 열량과 영양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제품들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각종 알레르기 약과, 감기약, 해열제, 소화제, 구급상자도 준비해 두었다. 예전에 부모님이 "밥 좀 잘 챙겨 먹고 다녀라"라고 잔소리를 하실 때면, "엄마 아빠는 옛날 사람들처럼 왜 그래! 매일 밥타령이야!"라고 핀잔을 줬는데, 옛날 사람이 아닌 지금의 난, 우리 부모님 보다 한술 더 떠서 아이가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크지도 않은기숙사 방이 엄마, 아빠의 욕심과 과도한 걱정으로 점점 더 작아졌다.
아이가 없는 집은 조용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아주 평범하게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내방으로 쓰고 싶었지만 방에 있는 아이의 짐을 치우지 못했다. 가끔 신랑보다 일찍 잠이 들어야 할 때, 손님처럼 아이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공간이 없어지면 섭섭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방을 치우지 못했다.
점심시간마다 신랑이 물었다. "진이 전화 왔어?"
잠자기 전에 다시 한번 물었다. "진이 잘 지낸데? 전화 왔어?"
물론 우리 딸은 잘 지내고 있었다. 문자도, 전화도 자주 했다. 하지만 무엇을 자꾸 확인하고 싶은지 우리는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늘 서로에게 딸아이의 안부를 물었다. 이렇게 두 달이 흐르고 딸아이가 집으로 잠깐 돌아오는 날이었다.
집에 도착하기 30분 전.
남아 있는 두 아이들과 분주하게 뒷마당에서 모닥불을 만들었다. 잘 사용하지도 않은 야외 전구를 꺼내 모닥불 주위에 장식도 해 놓았다. 누나가 없어서 속이 후련하다고 침 튀며 이야기했던 아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맨발로 나가 불을 집혔다. 누나가 오기 전에 불을 피워야 한다며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연신 입술을 모아 '후~ 후~'불길을 살려 내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말은 안 해도 모두 서로 그리웠던가 보다. 집으로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우리 모두는 다 설레고 초조했다. 이미 깜깜하게 깊어진 밤에 불 앞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너무 좋아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따뜻한 차라도 만들어 주고 싶어 계속 주전자 물만 연거푸 끓이고 있었다. 순간 엄마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멀리 바다 건너 사랑하는 딸을 이민 보내고 훌쩍 커버린 손주들과 함께 방문한다는 딸의 소식에 깨끗한 집을 닦고 또 닦으셨을 엄마가 생각이 났다. 초조한 마음에 하루종일 찬물만 마셨다는 엄마의 마음이 지금 이런 마음일까?
"아이의 얼굴이 수척해 있으면 어쩌지?"
"불규칙한 식사와 스트레스 때문에 살이 쪘으면 어쩌지?"
아이가 말라도, 살이 쪄도 그저 안쓰러울 것 같기만 했다. 인천공항에서 출산 후 처음으로 아빠를 만났을 때, 깡마른 내 얼굴을 보고 눈물이 터져버리셨다는 아빠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아빠는 아마 내가 살이 포동포동 쪄서 돌아왔어도 "어찌 이리 부었냐!"라고 울음을 터트리셨을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