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녀왔다. 류머티즘 약을 다시 처방받고 5개월 만에 중간 검진을 받기 위해서다. 그동안 어떤 약을 어떻게 먹었는지 내 이야기를 듣던 레지던트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이 분주하게 차트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알씩 6일을 먹고, 이틀은 약을 먹지 않았다는 거지? 그렇게 5개월 동안 먹었다고?"
"왜? 내가 잘못 복용한 거야?"뭔가 잘못됨을 감지하고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잠깐만 기다려봐!" 그녀가 급하게 계산기를 꺼내더니 약 용량을 계산했다.
"복용량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일단 닥터 케이트한테 보고 할게"
"..."
지금까지 약을 어떻게 잘못 먹었다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잠시 후 닥터 케이트가 들어와서 내 열 손가락을 꼼꼼히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일주일에 하루 6개 약을 한꺼번에 먹었어야지. 나빠지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제발 다음부터는 절대 그렇게 먹어서는 안 돼!"
그렇다. 일주일에 한 번 6알을 복용했어야 했는데, 하루에 한알씩 6일 동안 약을 복용했던 것이다. 도대체 이틀은 왜 약을 먹지 않았을까? 알 수가 없다. 날짜가 헷갈릴까 봐 달력에 약 먹지 않는 날까지 빨간색으로 체크해 가며 꾸준히도 이 규칙대로 약을 복용해 왔다.
처음부터 약을 복용할 때 복용방법을 확인했던 것도 같은데 왜 나는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을까?
매일 약뚜껑을 열면서 복용밥법을 눈으로 읽었을 텐데 왜 확인하지 못했을까?
늙어가나 보다.
9월의 또 어느 날
패밀리 닥터를 만났다. 건강에 대한 일반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의사가 물었다.
"지난달에 알레르기 테스트를 받았네? 왜 받은 거야? 증상이 어땠는데? 지금은 좋아졌어?"
"... 내가알레르기 테스트를 받았던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슨 증상 때문에 테스트를 받았는지 불과 한 달 전 일인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럽게 신랑에게 물었다.
"나 지난달에 알레르기 테스트받았잖아."
"어! 그랬지. 왜?"
"그런데 내가 왜 테스트를 받은 거지? 혹시 기억나?"
"이 사람 봐라! 당신 몇 달 동안 기침 엄청 심하게 했잖아. 감기도 아닌데 마른기침만 해서 혹시 알레르기 있는 거 아닌지 검사한 거였잖아."
맞다. 이제야 테스트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기침 때문에 받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신랑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설마 조기치매는 아니겠지?
9월의 또 또 어느 날
9월은 참 바쁜 날이다. 두 달 방학기간 동안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피아노 레슨을 받기 위해 다시 등록을 해야 하는 날이다. 기존 학생들과 신입생들이 자신의 스케줄에 맞게 요일과 시간을 조율해야 하는 중요한 기간이기도 하다. 9월 둘째 주까지 모든 학생들이 등록을 마쳤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모두에게 만족스럽게 레슨 스케줄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2주간의 레슨이 진행되고 아이들도 나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갈 때쯤 로지 엄마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내가 아직 레슨 시작한다는 이메일을 못 받았는데 레슨 언제 시작하는 거야?"
순간 호흡정지가 왔다. 로지는 내가 벌써 4년째 가르치고 있는 학생이다. 매주 같은 시간에 레슨을 받아왔는데 레슨 스케줄 그 어디에도 아이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확인하고 또 확인해 봐도 로지의 이름이 없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2주나 지나도록 아이의 이름이 빠졌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게다가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분명 내 기억에는 로지가 지난주에도 수업을 받았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기실에 앉아서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의 모습, 레슨시간에 함께 듀엣으로 피아노를 쳤던 모습들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그럼 이 모든 기억들이 지난주가 아니라 두 달 전 기억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