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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Oct 10. 2024

캐나다 기후변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정말 10년이 지나니 알버타도 변했다. 알버타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변화를 볼 수 있지만 풍요로운 자원과 자연보존상태가 양호한 캐나다 조차도 이런 안타까운 변화를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10년 전,

알버타에는 딱 두 개의 계절만 있었다. 여름 그리고 겨울이다. 봄과 가을은 예쁜 스카프도, 멋진 프랜치 코트도 꺼내볼 새도 없이 며칠 만에 지나가 버려 계절을 체감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캐나다 알버타의 여름은 참 시원하고 쾌적하다. 아무리 뜨거운 태양빛이라고 해도 나무밑 그늘에 앉아 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오히려 가디건을 걸쳐야 했다. 그렇다고 여름이 덥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름 시즌 중 3-5일 정도는 '헉!' 소리나 날만큼 더운 날이 지속된다. 하지만 에어컨을 작동시킬 만큼 끔찍한 더위는 아니었다. 물론 에어컨을 설치한 집들도 많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놓고 선풍기 맞바람으로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지하가 있는 집이라면 지하에서 충분히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알버타의 여름은 많이 변했다. 2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여름 중 체감온도가 39도 이상이 되는 무더위가 이제는 2주 정도 지속되고 있다.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집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다. 집집마다 에어컨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올여름 나도 심각하게 에어컨을 사야 하나 고민에 빠졌었다.


여름뿐만 아니라 겨울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0월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니 이곳의 겨울은 10월부터 시작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커튼을 열고 밖의 상황을 체크하는 게 하루 일상의 시작이다. 밤사이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겨울 내내 눈을 치우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눈을 치우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눈의 양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겨울이 10년 전과 비교해서 더 추워지거나 덜 추워진 건 아니다. 단지 눈에 띄게 강설량이 줄어들었다. 멀리 보이는 로키산 꼭대기의 만년설 면적이 육안으로도 현저히 줄어든 모습을 보면 로키산의 시각적 모습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제스퍼의 에메랄드 빛 맑은 호수들, 시원한 폭포수 들은 모두 눈이 녹거나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진 물들이다. 이런 강설량의 변화는 호수와 폭포에도 영향을 미친다. 제스퍼에 우리 가족이 아주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 빙하수가 찰랑찰랑 무릎까지만 오는 작은 호수인데, 호수 바닥이 아주 부드러운 모래로 되어있어 맨발로 물속을 걸으며 여름 더위를 식히는데 안성맞춤인 곳이다. 봄이 되면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수위가 어른의 무릎정도까지 높아지는데 최근 몇 년 간은 수위가 높아지기는커녕 내렸던 눈마저 다 증발해 버려서 사막 같은 모래바닥을 드러내었다. 게다가 바람이라도 불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모랫바람에 내려서 걸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겨울 동안 필요한 강우량을 채웠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우리는 매년 산불걱정에 마냥 여름을 즐겁게만 보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알버타인으로서 반가운 기후 변화도 있다. 여름과 겨울만 있었던 이곳에 봄과 가을이 생긴 것이다. 지금 알버타의 가을은 그 어떤 때보다 아름답고 황홀하기만 하다. 예전에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밤낮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단풍잎은 다 떨어져 버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금방 눈이 내리는 겨울이 왔었다, 하지만 10월인 지금은 눈길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가을풍경이 3주 내내 지속되고 있다. 상록수뿐 아니라 자작나무도 많은 이곳은 노란색 단풍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하얀색 수피의 자작나무에 샛노란 나뭇잎이 달려있는 모습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온라인 속 그래픽 풍경에 와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3주 이상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풍성하고 행복하다. 또 다른 반가운 기후변화로는 오로라 관측이다. 알버타 북쪽 끝으로 올라가야 있는 오로라현상을 이제는 우리 집 마당에서도 있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자주 오랫동안 여러 곳에서 관측된다. 까만 밤하늘에 출렁거리는 야광물결은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일 것이다.


눈을 덜 치우는 것도,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자주 보기 어렵다는 오로라를 내 집 마당에서 여러 번 볼 수 있는 것도 기분 좋고 즐거운 일이겠지만 뭔가 잘못된 것임은 확실하다. 이상기온으로 생겨난 홍수, 산불, 지진, 폭염, 태풍도 걱정이지만, 이 아름다운 변화 뒤에 숨기고 있는 상처들이 시간이 흐른 뒤 어떻게 표출될지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 10년 뒤 아름다운 곳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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