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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여덟 번째 날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 23> 10월 13일


천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던 팀이 아침 7시에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 어제 작업하던 곳이 깨끗이 마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 저녁부터 시작하기로 한 페인트 작업도 내일로 미뤄졌다. 젊은 동양인 청년 두 명이 한 팀으로 일을 하는데 여간 부지런한 게 아니다. 아침 7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딱 한 번의 휴식시간만 가질 뿐 진지하게 작업에만 몰두하는 모습니다. 내일이 휴일임에도 기꺼이 와서 일을 하겠다는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인사가 절로 나온다.



지하 계단 래미네이트를 모두 깔았는데도 한숨만 나오는 이유는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 계단 사이즈라면 계단 끝에 부착하는 미끄럼 방지 제품이 딱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2인치가 높아서 시중에 판매하는 그 어떤 제품도 맞지 않는다. 학교에서 목공수업 1등 수제자였다는 아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남자 셋이 머리를 모았다. 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란다.


아이디어 회의



오늘은 주일이다. 주일인지 모르고 지나간 주일이 벌써 3번째다.

하나님.

당신을 잊은 게 아닙니다.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미 우리 옆에 계신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틈틈이 하나님이 그립습니다.

하나님을 불러봅니다.

대답해 주소서...




날이 점점 쌀쌀해지고 있다. 아침에는 싸늘한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더니 오전 10시가 다 되어 갈 때쯤에는 강한 햇빛으로 차가운 공기가 제법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장인어른과 배짱이'팀은 자재를 사러 또 홈디퍼에 갔다. 이른 점심 준비를 하며 다큐멘터리 한강을 듣는다. 노벨문학상에 우리나라 한강 작가가 당선되어 한국은 지금 축제분위기다. 이미 모든 책들이 절판이라 이 축제분위기가 한풀 꺾여야 캐나다에 있는 우리는 그 역사적인 책을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자들이 오기 전에 휘리릭 동네 한 바퀴 걷고 와야겠다.




드디어 계단 작업을 시작했다. 과연 오늘은 계단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가? 미끄럼 방지제품이 다 덮이지 않는 부분은 계단과 같은 색의 마감테이프로 덧붙였다. 사포질과 다리미질까지 여간 정성스러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정성이 가득 들어간 계단을 밟는 모든 분들 꽃길을 걸으소서...


계단 마감

지하실 계단은 아빠의 몫이었다. 조명도 없어서 힘드셨을 텐데 아빠는 글루작업과 실리콘 작업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셨다.

지하계단 마무리




남자들이 오늘 작업을 마무리하는 동안 잠깐 시간을 내서 H마트(한국 마트)에 다녀왔다. 참고로 우리 집에서 마트까지의 거리는 차로 35분 정도 걸린다. 가깝지 않은 거리지만 배짱이님의 생일케이크를 사야 하기에 서둘러 차에 올랐다. 공사에 직접 노동으로 참여하는 것도 힘들지만 이렇게 자잘한 심부름 때문에 차로 이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는 다 지나가고 몸은 쉽게 지쳐버린다.




아이스카푸치노로 모두에게 즐거운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말은 안 해도 모두가 지쳐 보인다. 일하는 사람이 다섯 명인데 생각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해졌다. 우리 5명 모두 공사의 'ㄱ'자도 모르는 초짜들인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쉽게 생각했었나 보다.




지금 시간 오후 3시 20분.

우리는 가을과 겨울이 줄다리기하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가을과 겨울사이




문밖에 센서등을 설치했다. 지금까지 수백 번 홈디퍼를 오간 결과 우리 집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실리콘이 구비되어 있다. 그중 센서등 마무리로는 검은색 실리콘이 당첨되었다.

"이쯤이야 쉽게 할 수 있죠!" 반 강제적으로 아들이 작업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아차차!!! 손에 뭍은 실리콘이 지워지지 않았다. 옆에서 손자를 보조했던 아빠의 손도 시커먼스가 되어버렸다.

"엄마! 식초가 산성이니까 식초로 지우면 지워질 것 같아요. 식초!!!"

우리 아들! 학교수업에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뭐라고 뭐라고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쉽게 검은 실리콘이 씻겨 내려갔다. 그제야 두 사람의 얼굴에 안도의 웃음이 번졌다.




땡스기빙 겸 배짱이님의 생일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 보았다. 주방도구가 모두 같춰저 있지 않다는 핑계로 배달음식과 냉동음식으로 준비된 파티 음식이다. 냉동야채로 샐러드를 만들고, 스터핑과 그레이비도 준비했다. 그리고 칠면조요리는 배달 치킨으로 대신했다. 이제 기숙사에 있는 큰 아이만 픽업하면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얏호!


파티음식




딸아이가 아빠의 나이대로 케이크에 초를 꽂으려는 걸 간신히 막았다. 이 작은 케이크에 그 많은 초를 다 꽂고 나면 케이크가 아니라 벌집이 되어버릴 것이다. 동갑내기 친구인 나와 신랑은 어느덧 믿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1시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여서 행복했고, 온 가족이 건강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오늘 하루의 피곤함이 다 달아난 것 같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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