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4> 10월 14일
아침 일찍 천정 마무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일찍 도착한 일꾼들 덕분에 우리의 하루도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오늘은 막내딸이 그토록 원하던 귀를 뚫는 날이다. 참고로 우리 집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귀를 뚫을 수 없다. 어떻게 시작된 법인지는 모르겠으나 귀를 뚫고 싶어 하던 큰딸에게 신랑은 "고등학교 졸업하면 뚫을 수 있어"라고 엄하게 이야기했고, 대학합격 후 귀를 뚫을 수 있었다. 큰딸이 알게 되면 억울해서 팔짝 뛸 노릇이지만 이런 국룰을 깨고 오늘은 이제 중학생밖에 안 된 막내딸이 귀를 뚫는 날이다.
사실 신랑은 귀 뚫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귀를 뚫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늘 말했고 어머님의 설득과 부탁으로 큰아이가 귀를 뚫을 수 있었다. 그것도 고등학교 졸업하는 나이가 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아마도 딸아이가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할머니 찬스를 썼던 것 같다.
역시 그 언니의 그 동생답게 막내는 할아버지가 오시는 그날 할아버지 찬스를 썼다. 고등학교 졸업 후라는 조건부 없이 할아버지가 계실 때 귀걸이를 한 예쁜 모습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말이다. 사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날 아빠는 아무 말씀도 없이 날 동네 미장원으로 데려가시더니 "귀좀 예쁘게 뚫어 주세요!"라고 하셨다. 미장원 의자에 앉아 벌벌 떨고 있었던 나와는 달리 엄청 흡족해하셨던 아빠의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아이고, 우리 막내. 귀가 벌겋게 아파 보이는데, 본인은 좋단다!
'장인어른과 배짱이팀'은 에드먼튼에 남았다. 그리고 아이들과 난 조금 일찍 집으로 출발했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아들이 좋아하는 베트남 쌀국숫집을 검색했다. 땡스기빙임에도 불구하고 오픈한 레스토랑 오너에게 축복을...
정작 본인의 생일이지만 직접 밥을 해 먹어야 하는 하루다. 집으로 출발하기 전 미역국도 끓여놓았고 불고기도 사다 놨지만 미안한 마음을 숨길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끼리 외식한 건 비밀로 해야겠다.
오늘작업 최종 마무리 보고를 받았다. 뭔지 모르지만 어려운 작업을 무사히 끝냈고 그 결과도 아주 훌륭하다며 두 분이서 자화자찬 아주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처음 하는 공사라 속도가 많이 느려서 그렇지 꼼꼼한 두 남자가 함께 일을 하고 있으니 완성도는 높은 것 같다.(비 전문가인 우리만의 생각이다.) 신랑의 꿈은 언젠가 자기 손으로 우리의 집을 짓는 것이다. 정말 집을 지을 수 있으려나? 엄청 오래 걸릴 것 같은데...
Rona에서 돌아오는 길 새로운 햄버거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고 인증사진이 도착했다. 늘 익숙한 걸 선호하는 신랑은 새로운 식당에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빠를 위해 메뉴를 고민하다 보니 이렇게 새로운 도전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이 집 햄버거 실하고 맛있어 보인다. 먹는 사진만 열심히 찍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아빠가 일도 안 하고 맛있는 것만 먹으러 다니는 줄 안다며 억울해하시더니 내가 보기에도 맛있는 음식 앞에 우리들의 얼굴이 제일 밝고 행복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빠 덕분에 에드먼튼 동네가 깨끗해졌다. 이렇게 낙엽을 곱게 쌓아둔 풍경을 이곳 사람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곳에 있으면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낙엽을 청소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역시나 아빠답다.
'그런데 아빠. 이거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처음 모습처럼 낙엽으로 덮여버릴 텐데요...'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떨어지는 낙엽 때문에 고생해서 치우셔도 아침이면 다시 제자리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천정도 내일이면 마무리된다고 한다. 아니! 오늘이 마무리 아니었나? 공사현장에서의 '마무리'라는 뜻은 내가 알고 있는 사전적 뜻과 다른가 보다.
오늘도 고생하신 두 분 편안한 밤 되시길.
아빠 덕분에 깨끗해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