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25> 10월 15일
벌써 공사한 횟수로만 10일째가 되었다. 일이 많이 진전된 것 같기도 하고, 더디게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감정이 복잡하다. 에드먼튼까지 왕복 4시간이 넘는 운전길이 이젠 점점 더 멀게만 느껴지고 아무리 다 컸다 해고 주말마다 집에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도 마음에 걸린다. 또 공사 후 어떻게 좋은 세입자를 찾아야 할지 산 넘어 산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치 풀리지 않는 실타래가 되어 머릿속에 엉켜있는 느낌이다.
매섭고 날카로운 바람이 불고, 예쁘게 달려있던 단풍들도 모두 떨어졌다. 지금 이 시점, 누구라도 쉽게 지치고 짜증이 날 타이밍인 것 같다. 그래도 서로 보듬고 격려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해 본다.
핸드폰에 세큐리티 알람이 바쁘게 울려댄다, 겨울을 대비해서 바쁘게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아빠와 신랑이 앞뒤를 오가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화면 속 그분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며칠 집을 비웠을 뿐인데 에슨 집도 엉망이다. 참 신기하다. 집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먼지가 쌓여서 엉켜있을 수 있을까?
어젯밤 쓸어 모은 낙엽이 바람에 잘 버텨주었나 보다. 낙엽을 담는 아빠의 손길이 분주해 보인다.
정문에도 센서등을 설치했다. 이제 어떤 손님도 밝은 빛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라면 낙엽들을 그냥 놔둘 텐데... 아빠는 낙엽과의 전쟁을 선포하신 듯 밤사이 떨어진 낙엽을 또 청소하셨다. 아빠의 애쓴 손길이 헛되지 않게 신랑이 봉투를 사다가 탐스럽게(?) 담아 놓았다. 도대체 몇 개가 나온 건지 사진만 보아도 입이 떡 벌어진다.
아빠와 신랑이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저녁 8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피곤한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아마도 돌아오는 차속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셨나 보다. 오늘 하루 '장인어른과 배짱이' 팀은 황당한 일을 당했다고 한다. 쌍욕이 나올 정도로 힘든 작업이어서 서로 예민해져 있었는데 멀쩡한 실리콘 총까지 부러지는 어이없는 상황이 생겼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싸늘했던 상황 덕분에 오히려 좋은 실리콘 총도 구입하고, 작업 능률까지 올랐다며 그때의 상황을 흥분해서 말씀하셨다.
내 침 김에 문에 설치된 카메라 앱을 돌려 그 황당한 순간의 영상 함께 시청(?)했다. 아침에 카메라를 통해 아침인사를 했는데 어쩐지 둘 다 정신없이 대답도 제대로 못한다 했더니 그때가 딱 실리콘총이 부러지며 당황했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마음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짜증 나는 순간에도 웃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한 두 분이 참 감사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저녁 9시. 집안에 평안함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자기의 방에서 과제를 하고 있다.
신랑은 기타를 안은 체 침대에 누워 있다. 아마도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기타를 치고 있나 보다.
아빠는 핸드폰에 찍어두었던 오늘 하루 사진들과 영상을 정리하시며 웃고 계신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식기세척기 소음만이 집안에 가득할 뿐이다.
오늘 하루도 모두가 건강하게 집으로 모인 것에 감사드린다.
굿 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