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64> 11월 24일
밤사이 눈이 많이 내렸다. 쌓여있는 눈만으로도 높이가 10센티는 넘어 보인다. 눈을 치워주는 업체를 불렀지만 작업하는 사람들은 어젯밤에도 오지 않았다. 대문 앞, 인도 등에 쌓여있는 눈들을 보자마자 아빠는 새벽부터 외투도 걸치지 않으신 체 눈을 몰아내기 시작하셨다. 삽으로 치워도 힘든 작업인데 한 톨의 눈도 남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빗자루로 쓸고 계신다. 추운데 그냥 들어오시라고 소리치는 나의 잔소리에 돌아오는 아빠의 대답은
"내가 또 언제 이런 많은 눈을 치워보냐! 알버타 눈도 이렇게 치워보고... 아빠는 기분 좋다!"였다.
밤늦게 까지 공부하다 잠이든 아이들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져있다. 아빠와 신랑 그리고 나는 조용히 된장국으로 이른 아침밥을 먹었다.
가족들이 귀국하는 날에는 이상하게 꼭 된장국을 끓이게 된다. 먼 비행에 소화도 잘 안될 텐데, 따뜻한 아침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국을 끓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된장국을 잘 끓이지 못한다. 그런데도 왜 자꾸 귀국 아침마다 국을 끓이는지 모를 일이다. 아버님께서 귀국하실 때에는 떠날 시간은 다가오는데 간을 맞추지 못해서 결국 울음이 터져버린 적이 있었다. 당황하신 아버님께서 맛도 없는 국 한 그릇을 다 비우시며 "맛있다! 맛있어!" 하시며 내 눈치를 보신 적도 있었다.
고기한점 들어가지 않은 된장국에 왜 기름이 둥둥 떠있는지 모르겠지만(아마도 참기름을 많이 넣은 것 같다) 오늘 새벽에도 요리 똥손인 나는 된장국을 끓여서 아침식사로 내놓았다. 국물 한 스푼과 함께 눈물을 삼키시느라 아빠는 아마도 국의 맛을 잘 모르셨을 거다. 다행이다.
세수도 못하고 눈곱만 겨우 떼고 나온 아이들과 함께 에드먼튼 공항에 도착했다. 염려와는 달리 길은 미끄럽지 않았고, 막히지도 않았으며, 그토록 걱정했던 아빠의 이유 없이 무거웠던 가방도 일사천리로 무사통과 되었다. 혹시나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취소되지는 않을까 염려되어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한 덕분에 우리는 팀홀튼에서 1시간 가까이나 되는 모닝커피 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인사를 전하던 아빠는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 겉으로는 불도저처럼 강인한 아빠지만 이별의 슬픔 앞에는 어쩔 수가 없다. 눈앞에 사랑하는 가족을 보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 서로가 그립고, 너무 보고 싶다. 우리가 많이 울어버리면 마음도 몸도 흔들리실까 봐, 그래서 혼자 돌아가시는 긴 여행이 힘들어지실까 봐 우리 모두는 눈물을 꾹 참으며 웃으며 아빠를 보내드렸다.
"우리 진. 관. 수가 할아버지 많이 사랑해 줘서 고맙다"
"우리 사위와 가까워질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 딸 고생 많았다"
함께 하셨던 두 달 동안 늘 하셨던 말씀을 오늘은 마지막으로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시며 전달하시고는 씩씩하게 들어가셨다.
아빠와 우리 사이에 가까이 갈 수 없는 공간적 분리대가 생겼다. 그리고 몇 시간 후면 16시간이라는 시간의 장벽도 생길 것이다. 함께했던 두 달 동안 좀 더 따뜻한 말로 전하지 못했던 모든 순간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아빠가 나에게 말을 걸 때 조금이라도 더 눈을 맞추고 대답해 드리지 못한 순간들이 생각이 나서 죄송했다.
산책할 때마다 차가운 내손을 꼭 잡고 아빠의 온기로 따뜻하게 데워주셨던 아빠가 생각나서 행복했다.
제발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함께할 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든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 나의 세계에서 내 마음속은 이런 생각들로 눈보라가 일고 있다.
아들이 자꾸 맛있는 걸 먹고 들어가자고 졸랐다.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조심스럽게 아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할아버지 맛있는 거 사드리겠다고 모시고 나갔는데, 나중에 할아버지가 한국 가고 나면 아빠 엄마한테 할아버지 대신 맛있는 거 사드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엄마아빠한테 맛있는 거 사드리고 싶어서 가자고 했어요. 할아버지랑 약속했으니까."
잘 참아왔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아빠는 내가 첫날에 드렸던 용돈을 하나도 쓰지 않으시고 아이들마다 편지와 함께 용돈을 남기고 떠나셨다. 어렸을 쩍 아빠의 사랑이 아직도 나를 따뜻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할아버지와 함께한 두 달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오랜 시간 동안 따뜻함으로 맘속 깊이 자리했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오니 아빠의 편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남편에게도 편지를 남기셨다.) 봉투 속 캐나다 달러가 살짝 비친다. 봉투가 두툼한걸 보니 여러 장의 편지를 남기신 것 같다. 오픈을 했는데 편지를 꺼낼 수가 없다. 다시 있던 자리에 그대로 넣어 두었다. 언제쯤 편지를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편지가 펼쳐지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과 감사함에 아이들 앞에서 다시 어린아이가 돼버릴 것 같다.
아빠가 비행기에서 캐나다에서의 시간들을 정리하시는 동안 난 집안에 있는 아빠의 흔적을 정리하는 중이다. 아빠의 옷, 신발, 이불, 침대보, 베갯잇.
평생 본인의 이름보다 더 많이 불리셨을 아빠의 이름이 있다. '혜진이 아빠'
아빠. 너무 멀리 있어서 죄송해요.
아빠. 혜진이 아빠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