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지우기

by 패미로얄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부엌과 거실 전반에 널브러져 있는 지난밤 가족들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이다.

컵, 과자봉지, 주인 잃은 양말 한 짝.

제발 밤늦게 군것질하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건만 소귀에 경읽기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아침에 구석구석에서 수거한 컵만 해도 벌써 다섯 개가 훌쩍 넘는다. 한 끼 식사 후 설거지 거리와 맞먹는 개수다. 이제는 컵의 위치만 봐도 누가 어떤 포즈로 이 자리에서 무엇을 했는지 눈앞에 3D 영상으로 플레이가 된다. 덕분에 엄마라는 이름의 렙퍼가 되어 잔소리(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대상이 없는 잔소리기에 궁시렁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랩이 시작된다.


"밤에 라면 끓여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 운동도 안 하면서 이렇게 늦게 라면을 먹으면 배가 나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 양심이 있어야지~ 양심이!"


"제발 물컵은 한 개만 사용해 달라고 신신당부했잖아. 컵은 누가 요술로 씻고, 말려서 제자리에 넣어주는 줄 아나? 물 한번 마실 때마다 새 컵을 꺼내서 사용하면 컵이 남아나겠어?"


"우유나 주스 먹다가 흘리면 깨끗이 닦으라고 했어! 안 했어! 이거 얼룩 어쩔 거야! 끈쩍끈쩍 하잖아!"


"못살아~ 못살아~"


그런데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사람 사는 흔적이, 아이들이 자유롭게,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이 흔적들이 불과 몇년 뒤면 우리 집에서 자취를 감출거란걸. 큰 아이가 떠난 방은 먼지도 방문을 안 하는지 집안 다른 곳에 비해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다. 유독 우리 집에서 이 방만큼은 시간과 공기가 정지되어 적막함이 머문다.


엄마, 아빠가 잠든 틈을 타서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다람쥐처럼 꽁꽁 숨겨놓은 금기간식을 꺼내먹는 즐거움을 나라고 모를까? 그 즐거움을 잘 알면서도 건강을 핑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핑계로, 올바른 습관을 핑계로, 엄마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나는 잔소리 토핑을 언고 있는 중이다.

식탁과 의자 그리고 바닥에 얼룩져있는 탄산음료의 흔적을 지운다고 지웠건만, 아침 일찍 부엌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은 미처 지우지 못한 잔여물들과 이런 아이들의 모든 행적을 친절하게 아침 브리핑 하듯 고스란히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이 다 떠나간 그때가 오면, 아침에 눈을 떠서 부엌에 나왔을 때 깔끔한 부엌이 나를 맞이할까? 그래서 나는 행복할까?

이 끈적한 얼룩이 그리워지는 시간이 올까?

과연?


10년 뒤 나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행복해?"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