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가이드님

by 패미로얄

딸아이가 혼자 지내고 있는 에드먼턴으로 나왔다. 우리 집에서 에드먼턴까지의 거리는 고속도로 2시간은 꼬박 110킬로로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거리다. 오디오 북을 들으며 운전을 하다가 문득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졌다.


"많이 발전했네. 혼자서 GPS도 켜지 않고 에드먼턴을 운전해서가고 말이지~"


젊을 때나 지금이나 방향감각이 깔끔하게 제로인 나는, 손바닥 만한 시골동네에서도 구글의 도움 없이는 친구 집에 제대로 찾아가지 못한다.


한창 달달하게 연예중일 때는 이런 나의 방향감각 때문에 우리의 만남은 대부분 "어디야?"로 시작해, 돌고 돌아 간신히 남자 친구(지금의 신랑)와 재회하는 식이었다.


"치하철 맨 앞칸에 타. 그리고 ***역에 내리잖아? 그럼 그냥 그대로 있어. 내가 갈게."


난 늘 지하철 맨 앞칸 아니면 맨 마지막 칸을 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남자 친구를 기다렸다. 내가 목적지를 찾아 엄한 곳을 헤매는 시간보다 차라리 그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게 여러모로 유리한 선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많은 사랑과 관심과 보호를 받았던 연애시절이었다.


이제 날 기다려주고, 나와 함께 길을 가는 존재는 신랑이 아니다. GPS님이다. 아마도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가이드가 아닐까?


2시간이란 운전시간 동안 몹쓸 상상력이 발동하였다. 우리의 미래에는 Ai이가 탑재된 GPS가 길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삶을 가이드하지 않을까? 이미 나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모든 성향을 파악한 G가이드(이렇게 부르겠다.)가 나의 진로를 계획하고 조기교육부터 70세까지 (아니 그때는 200세 때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단계를 계획하고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는 그런 시대 말이다.


젊은이들은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나의 어떤 부분을 개발하여 꽃을 피워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G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하나하나 따라 하며 1년, 2년 성실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실패율보다 성공률이 높은 인생에서 우리가 겪어왔던 좌절과 갈등과 고뇌 따위는 겪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캬! 부럽다.


물론 단점을 꼬집으려면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고, 절대 부러운 일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하나?',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고민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저 그 미래가 부럽기만 하다.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친 오늘 하루는 그냥 G가이드님이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가 퍽이나 그리운 걸로 마무리 해야겠다.


중년이라는 시간에는 안내 받는 삶 보다는 헤매는 자유를 조금더 너그럽게 봐주는 시기이길 바라본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