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 이해하기 프로젝트 1

by 패미로얄

난 참 축복받은 사람이다. 아니, 외로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 결혼 후 누구나 맛본다는 <시월드>를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혼 후 바로 캐나다로 건너왔기에 명절에 찾아뵐 시댁도, 생신 때 생신상을 차려드릴 시댁도 바다 건너 멀리 계셨다.


IMF로 일찍 강제적 은퇴를 당하신 아버님만 3번 정도 캐나다에 다녀가신 적이 있다. 소극적이고 우울하며 까다로운 아버님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함께 계신 시간 동안 늘 화가 나 계셨고, 항상 마지막은

"다시는 안 온다! 너희들이나 잘 살아라!"라는 축복 같지 않은 말씀만 남기시고 비행기표를 앞당겨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철없고 경험 없던 젊은 며느리는 그런 아버님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멀리 계셔서 다행인 시아버님 이셨다.


IMF이후로 가장의 자리를 떠맡으신 어머님은 새벽에 일찍 출근을 하시고 다음날 새벽에 늦게 퇴근을 하셨다. 한 끼 식사도 제대로 함께 해보지 못한 어머님 이시기에 나에게는 늘 책 속에 존재하는 작은 거인 같은 주인공일 뿐이었다.


마침내 어머님이 은퇴를 하시고 두 분은 큰마음을 먹고 캐나다에 2달 동안 방문을 하시기로 계획하셨다. 드디어 결혼 20년 만에 시부모님과 2달간의 동침이 계획된 것이다. 출발 전부터 아버님과의 전화통화에서 삐걱거림이 시작되었다. 슬기로운 동거생활을 위해 아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 되어야 성공할 확률이 높을 테니.

좀 더 객관적으로 시부모님을 이해하기위해 나의 시점을 아버님의 핸드폰으로 전환하여 상황을 해석해 보았다.




Y어르신의 핸드폰은 가볍고 깨끗하다. 핸드폰에서 사용하는 앱이라고는 딱 3가지 유튜브 1위, 카톡 2위 그리고 가끔 카메라 정도이다. 이메일 계정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터라 이메일 아이콘은 핸드폰 바탕화면을 채워주는 장식단추일 뿐 Y어르신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르신이 애장 하는 중요한 개인 물품 중 하나인 것이 다행스럽다.

최근 익숙하지 않은 pdf 문서들이 카톡으로 전달되었다. 나는 '까똑'을 울리며 그들의 대화를 펼쳐 보였다. 조심스럽게 다운로드하는 어르신의 손끝이 내 화면 위를 조심스레 스쳤다. 나는 작은 떨림까지 고스란히 느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아들네로부터 전달된 문서였다. 온통 영어와 숫자로 가득 찬 서류와 함께 당부의 메시지도 함께 전달되었다.


"아버님! 문서 다운로드하여서 잘 저장해 놓으셔야 해요. 다운로드 어떻게 하는지 알고 계시죠? 나중에 비행비 티켓도 카톡으로 보내드릴게요. 저희 집 주소와 전화번호도 잘 저장해 두세요."


"그 정도는 나도 안다!"


말끝은 퉁명스러웠지만, 주름진 입가에는 이미 은근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캐나다 아들집으로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여사님과 함께라니 내가 Y어르신을 만나고 처음 있는 부부동반 여행인 것 같다. 평소 장보고, 요리 외에 누워 계시는 걸 즐기시는 어르신과는 달리, 여사님은 7일 내내 주말도 반납하고 새벽부터 나가 일을 하신다. 어쩌다 쉬는 날이 생길 때면 배우고 싶은 악기와 미뤄 두었던 공부까지 하시는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시는 분이다. 한마디로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분이 14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함께 캐나다를 가신다니 내 저장공간에 처음으로 부부의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훌륭한 카메라 기능을 어르신께서 잘 활용하실 수 있을지 걱정과 함께 흥분이 밀려온다.


70이 훌쩍 넘어 2025년이 돼서야 은퇴를 하신 여사님은 이번 첫 해외여행임과 동시에 21년 만의 아들과의 재회다. 방금 나온 따끈한 여권을 쓰다듬는 여사님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21년간 눌러 담았던 그리움이 손끝을 타고 조금씩 번저 오는 듯했다.


또다시 캐나다에서 보이스 톡 신청이 왔다. 혹시나 어르신이 듣지 못할까 봐 온 힘을 다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님! 인천공항 너무 좋던데요? 유튜브에서 보니까 인천공항에 쉴 곳도 많고, 구경할 곳도 많더라고요. 비행기 이륙시간보다 조금만 더 일찍 나오셔서 어머님이랑 공항에서 데이트 좀 하세요! 어머님 정말 좋아하실 것 같은데~"


"아이고! 에이~!"


"아버님 걷기 힘드시면 거기 수면실도 있더라고요. 기왕 두 분이서 함께 여행하시는데 어머님을 위해서 깜짝 이벤트 이런 것 좀 준비해 보세요"


"잠은 집에서 자면 되지 뭐 하러 공항까지 가서 자냐! 됐다 됐어 너 엄마한테는 아무 말도 말아라."


"아버님 점수 좀 따시죠~!"


".... 솔직히 말해서 네 엄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다. 우리가 앞으로 캐나다를 얼마나 가보겠냐. 네 엄마 어디 여행 다녀본 적도 없고, 비행기도 처음이라 혼자는 불안해서 못 보내니까 내가 따라가는 거지. 난 캐나다 가는 거 별로다!"


어르신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내 스피커를 울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좋게 돌려 말하고 있는 거라는 걸. 어르신과 똑같다는 아들과 많이도 툭탁거릴 것 같지만 그래도 여사님이 계시니 "비행기표 당장 변경해라! 나 내일 당장 서울 갈 거다!"라고 호통치는 일은 없으리라 믿으며, 두 분의 이야기를 잘 담아보고 싶다.


제발, 어르신이 아니라 여사님을 위해서라도 짧은 2달 동안 그동안 못다 한 사랑, 감사, 그리움이 차곡차곡 잘 쌓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참 신기하다.

아버님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을 향한 어머님의 그리움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집만 세진다고 하는 말들은 정말 사실이다. 그동안 쌓아왔던 습관들과 생각들 그리고 나이만큼이나 견고해진 자기 방어적 사고 때문에 때로는 순수한 어린아이들 보다도 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중년에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고정관념을 깨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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