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

by 패미로얄


사랑의 빚

데이비드 가족을 공항에 데려다주는 날이었다.

데이비드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애틋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부모님이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신경계에 문제가 있으신 듯 말을 많이 더듬으셨고, 상대방의 눈을 맞추는 게 많이 불편해 보였다. 아담하고 작은 체구의 엄마는 다리에 장애가 있어 걷는 게 힘들어 보였다. 공항까지 가는 차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캐나다를 떠나는 이 순간 이들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기억이 남아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친절과 마음을 다하기로 다짐해 보았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데이비드에게 전해줄 카드를 적었다. 지금은 힘들고 모든 일이 엉망처럼 느껴지더라도 이 터널을 잘 통과하고 나면 아주 강하고 멋진 남자가 되어 있을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와 함께 조심스럽게 아이의 미래를 축복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리고 캐나다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따뜻한 한 끼 식사라도 할 수 있도록 작은 정성도 함께 넣어 동봉했다. 공항에 도착하고 아이를 꼭 끌어안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공항을 등지고 돌아오는 길, 17년 전 만났던 토론토 S언니 가정이 생각이 났다. 하루 한 끼를 걱정하며 영주권 없이 불안하고 고되게 살아갔던 캐나다 생활이,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들보다 감사함과 그리운 마음 그리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 더 많이 떠오르는 건 그때 우리 가족이 받았던 사랑 때문일 것이다. 작은 한인교회에 모인 성도들은 저마다 변변한 직업도, 확실한 영주권도 없는 가엽고 약한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그분들은 놀라울 만큼 기쁨으로 하루를 채워갔고, 마음의 풍성함을 아낌없이 서로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 아파트 아랫 위층에 살았던 S언니 가정은 어려운 상황을 유쾌함으로 풀어내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부부였다. 어쩌다 풍족하게 장을 볼 기회가 생기면 우리 가족까지 불러 따뜻한 한 끼를 먹였고, 나 혼자라는 생각에 고립되어 눈물로 청승을 떨고 있을 때면 소리 없이 다가와 가벼운 농담과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따뜻하게 내 등을 토닥여 주던 S언니였다. 남편이 첫 직장을 얻고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이사를 가던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 마지막 짐이 나갈 때까지 나와 함께 있어 주었던 분들도 언니네였다.

그날따라 너무나 느리게 움직이는 듯한 엘리베이터 안,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언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밴쿠버에서 또다시 혼자가 될 생각을 하니 가기 싫다고 생떼이라도 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언니가 내손에 하얀 봉투를 쥐어주었다. 언니의 눈에는 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담겨 있었지만 아무 말 없이 그냥 날 힘껏 끌어안아주었다. 남들 눈에는 크지 않았던 그 봉투 안의 금액은 내가 받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거금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걱정하는 언니의 마음까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서로의 형편을 너무 잘 알기에 가볍게 받을 수 없는 언니의 마음이었다.


그 시절 언니에게 받은 사랑을 아주 조금 덜어 데이비드에게 전한 것 같아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언니의 큰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난 조금 더 경제적으로 넉넉하면, 마음의 여유가 더 생기고 나면 이웃들을 돌보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토론토에서 받았던 사랑의 빚이 너무 커서 평생 빚진자로 살아갈 것 같다.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줄 가족들이 있기를, 가족과의 대화 속에 희망이 있기를 기도하며 오랜만에 S언니의 안부를 묻는 카톡이라도 보내야겠다.


"언니! 나 잘 살고 있어요. 언니 사랑덕에 난 아직도 배가 불러요! 감사해요!"



월요일 연재
이전 05화어른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