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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Jul 31. 2023

캥거루 엄마들

온기를 느끼는 방법

캐나다 시골마을에서 만난 10년 지기 친구들이 있다. 비록 말도 안 되는 영어와 콩글리시 대마왕인 나지만 고맙게도 '엄마'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서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녀들은 한국에서 온 모습도, 언어도, 문화도 게다가 교육관도 다른 우리를 친구라는 따뜻한 울타리 안에 초대하여 아이들을 함께 키워가는 즐거움에 초대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40대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첫 만남은 놀이방에서 시작되었다. 알버타 시골마을로 이사 온 후, 그 당시 3살이었던 막둥이를 데리고 마을 놀이방을 방문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지역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되는 이곳은 넓은 방 한가득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들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매주 주제를 바꿔가며 마치 테마파크처럼 새로운 장난감들이 채워졌기에 이번주는 어떤 장난감과 게임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아이와 함께 일주일을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한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장난감을 공유하며 친구가 되어 갔고, 엄마들은 커피 한잔과 삶을 두런두런 나누며 친구가 되어 가는 그런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첫날 난 헬레나를 만났다.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이 시골타운에 마치 외계인이 되어 다른 별에 떨어져 버린 것 같은 겁 많고 수줍은 나에게 선 듯 다가와 따뜻하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친구였다. 그 당시 헬레나에게는 네 명의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생 큰아들 로리, 한 살 어린 쌍둥이 자매 스티비와 브리, 그리고 우리 딸과 놀이방 동기인 막내아들 엘리엇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헬레나는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아이엄마였다. 그때는 평범해 보였으나 절대 평범하지 않은 그녀를 소개하려 한다.


2년 정도가 흐르고 어느 여름방학이었다. 헬레나에게 두 명의 아이가 더 생겼다. 5살 딸아이 소피와 7살 아들 이든이다. 아이들은 처음에 헬레나를 엄마가 아닌 "Helena"라고 불렀다. 그리고 몇 개월뒤 자연스럽게 그녀를 "Mom"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신을 엄마라고 불러 줄 때까지 헬레나는 묵묵히 아이들 옆에서 늘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듯 자리를 지켰다. 오히려 아이들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해야 할지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그들의 눈을 마주했던 건 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몇년뒤 헬레나 품에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게 될 신생아 남자아기가 또 안겨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진 아기를 신생아실에서 안고 나오며 아이들에게 우리의 가족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급하게 날아갔다. 그녀가 돌아올 때는 미숙아로 태어나 품에 안기도 조심스러운 엄지공주처럼 작고 작은 페이가 안겨 있었다. 아기가 완전히 건강하게 안정될 때까지 마치 엄마 배속에 있는 것처럼 품에 안고 있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대로 헬레나는 얇은 기저귀천으로 만들어진 베이비 케리어로 최대한 자기가슴에 밀착시켜 캥거루 엄마처럼 패이를 품고 다녔다. 이렇게 헬레나의 가족은 남편인 이엔과 헬레나 큰아들 로리, 쌍둥이 자매 브리와 스티비, 엘리엇, 이든과 소피, 할리와 페이 이렇게 10명으로 완전체가 되었다. 엘리엇을 제외하고 모두 입양된 아이들이었다. 정말 문화적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명도 아니고 매년 아이를 입양하는 부부의 모습도, 10개월도 안 되는 미숙아를 병원 인큐베이터가 아닌 집에서 돌본다는 것도 또 얇은 천 한 장으로 아기를 품에 감고 있는 풍경도 나에게는 낯설고 놀라울 뿐이었다. 


페이가 처음 캐나다로 입국하는 날,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는 단체 문자방도 분주하기만 했다. 헬레나가 집중해서 아기를 돌볼 수 있도록 가족들 식사준비를 우리가 조금이나마 돕기로 한 것이다. 우리들은 함께 식사 메뉴를 정하고, 글로서리 리스트를 만들고, 각자 바쁘게 장을 봐서 하루종일 모여 음식을 만들었다. 모두 냉동보관용으로 끼니때마다 꺼내서 오븐에 데워 손쉽게 아이들을 먹일 수 있도록 엄마의 센스와 정성으로 만들어놓은 메뉴들이었다. 큰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어린 아이들과 우리만 남을 때면 누가나 할 것 없이 서로가 돌아가며 캥거루처럼 페이를 가슴에 품었다. 눈도 뜨지 못한 빨간 맨살의 페이는 내가 숨이라도 크게 쉬면 아기포대기와 나의 가슴사이에서 다칠 것만 같은 너무 작고 조심스러운 존재였다. 그리고 어느덧 그 아기가 4살이 되어 올해 나에게 생에 첫 피아노 수업을 받았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눈썰매를 타고, 함께 학교를 보내고, 함께 캠핑을 다니고 또 아플 때면 함께 가정을 돌보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여름방학 기간 동안 아이들 수영레슨을 시키기 위해 아침 8시부터 하나둘 수영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한 나를 발견한 페이가 멀리서부터 달려오더니 나의 허벅지를 꽈악 끌어안았다. 페이의 키가 나의 허벅지까지 밖에 오질 않기에 난 허리를 굽혀 다시 가슴으로 페이를 앉아주었다. 언제부터 이 아이를 이렇게 꽈악 껴안아줄 용기가 생겼는지 갑자기 그 순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똑같은 해님이 동쪽 부엌창에 걸려 있듯이, 우리의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투정 부리는 모습들이 그저 똑같이 일어나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고 내일에도 익숙할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지나온 그 시간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고 있었다.


넓은 둥지 안에서 우리는 공동의 엄마가 되고 이모가 되고 친구가 되고 선생님이 되어 우리의 아이들을 함께 보아왔다. 그리고 2023년 아기들의 재잘거림으로 정신없고 분주하며, 발 디딜 틈도 없이 서로 딱 붙어 따뜻하게 비비적거렸던 우리들의 둥지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올해 나를 포함한 모든 친구들이 Young Adult가 된 우리의 첫 아이들을 세상밖으로 내보내야 될 시간이 된 것이다. 대학생이 되어 이 넓은 땅 캐나다 여기저기로 떠나갈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감격과 행복, 서운함과 두려움, 자랑스러움과 걱정스러움이 하루에도 백번은 교차하고 있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아이들의 빈자리가 이제는 손을 뻗어야만 서로의 온기가 느껴질 수 있을 만큼 심리적으로도 큰 공간이 우리들의 둥지에 생기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캥거루처럼 서로 가슴에 품고 있을 아기 캥거루들도 없으니 말이다.

우리의 빛나는 금발머리, 매력적인 빨간 머리, 찰랑거리던 검은 머리는 어느덧 희끗희끗 흰머리로 덮이기 시작해 국적에 관계었이 같은 모습으로 닮아가기 시작했고, 침묵하는 시간이 많아도 많은 것을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떠나갈 아이들의 빈자리를 서로의 온기로 채우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좁은 수영장 밴치에 서로 가까이 따악 붙어 앉아 막둥이들의 수영레슨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이 하나, 둘 둥지를 떠나게 되면 우린 아마도 더 닮아 있고, 더 가까이 붙어있게 될 것 같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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