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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May 16. 2023

새소리가 예쁜 아침

나의 아침 루틴은 간단하다.

새벽 5시 30분, 부엌으로 나와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신다. 한 장 성경 읽기와 묵상을 마친 후 북클럽 멤버들과 함께 하는 영어필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지난 2주 동안 알버타에 시작된 산불 때문에 나에겐 또 다른 루틴이 생겼다. 눈을 뜨자마자 발코니로 나가 저기 먼 하늘을 확인한다. 혹시나 검붉은 연기가 피어오르지는 않는지, 하늘 색깔이 평소와는 다르진 않는지 시력도 안 좋은 눈으로 부지런히 살핀다. 그러고 나서는 유독 냄새에 민감한 나의 코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 공기의 냄새를 분석한다. 혹시나 나무 타는 냄새가 섞여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Edson(에슨) 타운으로 복귀하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직 짐가방을 풀지 못하고 있다. 타운으로 불길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BC에서 보충인력이 파견되었다. 아마도 타운 근교에 불길을 막는 바리케이드를 설치할 계획인 것 같다. 하루에 두 번 아침시간과 저녁시간에 산불 관련 내용들이 페이스북에 업데이트된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상황은 Wildfire danger extream 상태이다.


길고 긴 겨울을 이기고 이제 막 봄과 인사를 나눌 시기가 되었건만 봄이 온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우리는 바로 산불을 마주했다. 보통의 우리라면 데크에 야외 테이블을 펼쳐놓고 하루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을 것이다. 밤에는 별을 보기 위해 모기향을 피우고 데크주위에 작은 캠핑전구들을 달아 한껏 분위기를 잡았을 것이다. 집집마다 피워놓은 뒤뜰의 모닥불에서는 마시멜로를 굽는 아이들의 기글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며, 바비큐 냄새와 감자, 옥수수 굽는 냄새 그리고 나무 타는 냄새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웠을 오늘 하루 였다. '이렇게 불길이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면 아름다웠던 우리 타운이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움이 밀려온다. 


1시간 거리 작은 타운에 조만간 대피령이 떨어질 것 같다. 극건조와 더위로 인해 진압이 어려운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할 때 신랑과 함께 주위 환경도 살펴볼 겸 타운에서 좀 떨어진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한 주유소로 주유를 하러 가기로 했다. 멀리서 불길을 관찰할 생각이었다.(요즘 우리는 항상 차에 기름을 가득 채워놓고 있다. 첫날의 악몽을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집 앞에 세워둔 트럭 위로 하얗게 재가 덮여 있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맑은 하늘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는데 말이다. 주유소에서 도착해서 타운 쪽을 바라보니 검붉은 하늘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드디어 2차 대피를 해야 하는 건가?' 이제는 재가 떨어지는 모습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많은 재들이 날리기 시작했다. 저녁 10시.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대피가방을 점검하게 했다. 혹시나 밤에 대피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최대한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분주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밖으로 나와보니 어제보다 맑은 아침 하늘에 누군가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 밀려왔다. 밤새 얼마나 많은 분들이 불길 속에서 혼심의 힘을 다했을지 하늘을 보니 또 속도 없이 지저귀는 새들을 보니 알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어젯밤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노트북을 다시 꺼내 글을 쓰고 있다. 누군가의 헌신으로 이렇게 내 집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아침이다. 

어제 주일예배 때 어떤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알버타에 살면서 처음 경험한 산불은 아주 어렸을 때였지. 그때 할머니한테 여쭤봤어. 왜 하나님이 이렇게 무서운 산불을 만드셨냐고. 그때 할머니가 그러시더군. 이 산불 또한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거라고. 산불이라고 모두 나쁜 결과만 가져오는 건 아니라고 말이지. 산불을 통해서 모든 게 없어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생명들과 새로운 관계들이 다시 태어난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어." 

어떤 어르신은 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대피할 때 말이야, 주변에 차가 없는 이웃들을 함께 데리고 대피를 했거든. 그런데! 이 노인분들이 (사실 말씀하시는 분도 노인이시다) 강아지를 얼마나 많이 키우고 있는지 아니? 임시거처에서 함께 머물렀는데 전체 인원이 사람 11명에 강아지 16마리 그리고 고양이 2마리였어.(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이 많은 생명들을 우리가 충분히 먹이고 재울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야."

그리고 또 다른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피령이 떨어지고 우리 부부는 일단 짐을 쌌지. 그런데 우리 가축들을 그냥 놔두고 갈 수가 없었어. 그래서 떠나는 대신 총을 들었지. 총알을 챙기고 총을 점검했어. 우린 그냥 집에 남기로 결정했지만 그냥 마음이 편했어. 두려움 없이 편안한 마음을 주셨어."


아마 아침부터 지저귀는 저 작은 새들도 지난주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이렇게나 분주하게 울어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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