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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내 인생 2막은 정신분석-7화

by 홍종민

50대 막내의 두 번째 학기


대학원 2학기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스터디에서는 '막내'다. 오늘 주제는 '전이(transference)'와 '애도(mourning)'다. 프로이트가 『애도와 멜랑콜리』에서 밝혔듯, 애도는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 후 리비도를 철회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전이는 과거의 중요한 인물에 대한 감정을 현재의 누군가에게 옮기는 현상이에요."

28세 수진이가 설명을 시작했다. 필자보다 20년 이상 어리지만, 이론에서만큼은 선생님이다. 프로이트는 전이를 "과거의 이마고(imago)가 현재의 인물에게 투사되는 무의식적 과정"으로 정의했다.

"특히 상담 관계에서 내담자가 상담사에게 부모의 감정을 투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 30대 동기가 흥미로운 책을 꺼냈다. 이 순간, 라캉이 말한 '우연한 만남(tuché)'이 시작되었다. 실재계의 외상이 상징계의 언어와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이거 읽어봤어요? 대리언 리더의 『우리는 왜 우울할까』. 여기 나오는 사례가 정말 인상적이에요."


백 번의 작별 이야기: 반복강박의 메커니즘


수진이가 책을 받아 들며 읽기 시작했다.

"당신이 2년간 꿈꿔왔던 일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고 상상해보라. 그런데 그 순간, 행복해야 할 그 순간에 갑자기 깊은 우울감이 찾아온다면?"

필자는 귀를 기울였다. 작년 봄 퇴사 후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프로이트의 개념으로는 '이득을 통한 불쾌(paradoxical unpleasure)'였다. 초자아가 행복을 금지하는 것이다.

"한 젊은 여성이 2년간 남자친구와 대서양을 건너다니며 장거리 연애를 했대요. 뉴욕에서 런던으로, 런던에서 뉴욕으로."

지민이가 끼어들었다. "와, 낭만적이네요."

"그런데 남자친구가 런던으로 이사 왔는데, 오히려 우울증에 빠졌대요."

"왜요?" 필자가 물었다.

수진이가 책을 더 읽었다.

"리더에 따르면, 그녀에게 중요했던 건 만남이 아니라 작별이었대요. 히스로 공항과 JFK 공항에서의 이별 장면들이 가장 생생했다고."

이것은 라캉의 '환상(fantasme)' 개념으로 설명된다. 주체는 결여를 메우기 위해 환상을 구성하는데, 때로는 결여 자체가 환상의 대상이 된다.


14세 소녀의 상실: 상징화되지 못한 실재


"더 놀라운 건," 수진이가 계속했다, "이 여성이 14세 때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는데, 아무도 그녀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실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대요."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라캉이 말한 '상징계의 구멍'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언어로 포획되지 못한 실재계의 외상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작별 인사를 못했구나..." 필자가 중얼거렸다.

"맞아요. 리더의 분석에 따르면, 그녀의 장거리 연애는 '백 번의 작별'을 통해 아버지와 못다 한 작별을 반복하는 거였대요."

최 교수가 끼어들었다.

"전형적인 반복강박이네요. 프로이트가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해결되지 않은 과거를 계속 반복합니다. 이것은 죽음충동의 작동이죠."


나의 아버지, 나의 작별: 주체의 분열


그 순간, 필자의 목이 메어왔다. 왜일까? 무의식이 의식의 검열을 뚫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저도... 아버지와 제대로 작별하지 못했어요."

모두가 필자를 봤다.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출장 중이었어요.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50대 남자가 20대 동기들 앞에서 또 울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학기에 이어 두 번째였다. 라캉의 용어로 이것은 '향유(jouissance)'의 폭발이었다.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만족을 주는 과잉의 순간.

"죄송합니다. 잠시만..."

화장실로 가려는 필자를 최 교수가 붙잡았다.

"홍 선생님, 여기서 우셔도 됩니다. 이것도 수업의 일부예요.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abreaction(정서적 해방)'이라고 합니다."


억압된 애도의 폭발: 초자아의 잔혹성


필자는 자리에 앉아 울었다. 25년간 직장에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 대학원에서는 두 번째 우는 것이었다. 초자아가 금지했던 슬픔이 마침내 표출되었다.

"아버지는... 평생 공무원으로 사셨어요. 말이 없는 분이셨죠."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단 한 번도 '잘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저는 출장이 중요하다고..."

수진이가 티슈를 건넸다.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어요. 다음 날 아침 부고 전화를 받았죠."

프로이트가 말한 '죄의식'이 여기서 작동한다. 초자아는 자아를 처벌하며, 이 처벌이 우울증의 핵심이 된다.

30대 동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선배님이 회사에서 그렇게 일에 매달렸던 거군요."

"무슨 말이야?" 필자가 물었다.

"리더의 사례처럼, 선배님도 일을 통해 뭔가를 반복하고 있었던 거 아닐까요? 라캉이 말한 '증상'처럼, 무의식의 메시지를 신체화한 거죠."


25년간의 반복: 대타자의 욕망


최 교수가 분석을 시작했다.

"홍 선생님, 혹시 회사에서 특별히 인정받고 싶었던 상사가 있었나요?"

"있었죠. 첫 직장 부장님이..."

"어떤 분이었나요?"

"엄격하고, 칭찬에 인색하고... 아!"

필자는 깨달았다. 그 부장님은 아버지와 똑같은 스타일이었다. 라캉의 표현으로 '대타자(l'Autre)'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게 전이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상사에게 전이한 거예요. 프로이트는 이를 '대리만족'이라고 했죠."

"그래서 제가 그렇게 인정받으려고..."

"네. 아버지에게 못 받은 '잘했다'는 말을 상사에게서 받으려 했던 거죠. 라캉식으로 말하면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한 거예요."


리더의 통찰과 나의 깨달음: 애도작업의 시작


수진이가 다시 책을 펼쳤다.

"리더는 이렇게 말해요. '작별인사를 할 수 없게 된 바로 그 순간,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우울 감정의 밑바닥에는 끝내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있었다.'"

필자는 몸이 떨렸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자기애적 동일시'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저도 그랬어요. 아버지와 작별하지 못한 후, 25년간 회사에서 미친 듯이 일했어요.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지민이가 물었다.

"그게 작별을 대신한 건가요?"

"아니, 오히려 작별을 회피한 거죠." 최 교수가 설명했다. "일에 몰두함으로써 애도의 고통을 피한 겁니다. 프로이트는 이를 '조증적 방어'라고 했어요."


공항에서의 기억: 실재계의 회귀


"저도 공항 이야기가 있어요."

필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출장 갈 때마다 공항에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어요. 특히 출국장에서..."

"어떤 감정이었나요?"

"죄책감... 그리고 두려움. 이번에도 누군가 떠날 것 같은."

이것은 라캉이 말한 '실재의 회귀'다. 상징화되지 못한 외상이 특정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수진이가 리더의 책을 인용했다.

"'히스로 공항과 JFK 공항에서의 눈물은 단순한 이별의 아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14세 소녀가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었고,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던 작별인사의 대리 수행이었다.'"

"저도 그랬나 봐요. 공항에서 혼자 울 때가 많았어요. 그것은 '사후성(Nachträglichkeit)'의 작동이었죠."


아버지의 편지 발견: 억압된 기표의 귀환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오래된 상자를 뒤졌다. 아버지의 유품이 들어 있는 상자.

그 안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필자가 첫 직장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가 쓴 편지였다.

"아들아,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겸손하게 살아라."

'자랑스럽다'는 단어가 있었다. 필자는 왜 이걸 잊었을까? 프로이트의 '원초적 억압'이 작동했던 것이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의식이 거부했던 기억.

다음 날 수업에서 이 편지를 공유했다.

"아버지도 사랑을 표현하려 했던 것 같아요. 다만 그 시대의 방식으로..."

최 교수가 말했다.

"그 '하지만'이 문제였네요. 한국의 아버지들이 자주 쓰는 패턴이죠. 칭찬 뒤에 바로 '하지만'. 이것이 라캉이 말한 '아버지의 이름(Nom-du-Père)'의 한국적 변형입니다."


현대 한국의 애도 문제: 상징적 의례의 부재


30대 동기가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저희 아버지도 코로나 때 돌아가셨어요. 면회도 못 가고,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렀죠."

지민이도 거들었다.

"한국은 특히 애도에 인색한 것 같아요. 3일장 끝나면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최 교수가 리더의 책을 인용했다.

"리더는 '현대인의 정신건강 문제 중 상당 부분이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상실과 관련이 있다'고 했죠. 한국은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상징적 의례가 축소되면서 애도작업이 개인의 무의식에 갇히게 됩니다."


반복에서 인식으로: 통과(working through)


12주차, 필자는 큰 변화를 경험했다. 프로이트가 말한 '통과'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알겠어요. 제가 왜 그렇게 일에 매달렸는지, 왜 퇴사 후 우울했는지."

수진이가 물었다.

"뭘 깨달으셨어요?"

"저는 25년간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고 일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안 계시죠. 불가능한 일을 계속 반복한 거예요. 라캉이 말한 '대상 a'를 쫓았던 거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

"리더가 말한 '백 번의 작별'처럼요?"

"네. 저는 매일 퇴근하면서 작별 연습을 한 거예요. '오늘도 수고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사실은 아버지께 듣고 싶었던 말이었죠. 이것이 바로 '증상의 형성'입니다."

진정한 작별의 시작: 상징적 거세의 수용

학기 말, 필자는 특별한 결정을 했다.

"아버지 묘소에 가서 편지를 읽으려고요. 제가 쓴 편지를."

스터디 멤버들이 응원했다. "좋은 생각이에요."

"저희도 가도 될까요?" 수진이가 물었다.

"정말요?"

그렇게 스터디 멤버 5명과 함께 아버지 묘소를 찾았다. 이것은 라캉이 말한 '상징적 거세'를 수용하는 의례였다.

필자는 준비한 편지를 읽었다.

"아버지, 이제야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이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애도는 대상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바람이 불었다. 낙엽이 떨어졌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그리고... 잘 가시라고.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미완성된 슬픔들의 치유: 욕망의 재구성


돌아오는 길에 수진이가 말했다.

"리더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미완성된 작별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프로이트의 표현으로는 '애도작업(Trauerarbeit)'이 미완성된 거죠."

30대 동기가 덧붙였다.

"하지만 인식하면 달라지죠. 선배님처럼.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 그것이 정신분석의 목표니까요."

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제야 시작이야. 진짜 애도가. 라캉이 말한 '주체의 재구성'이."

새로운 관계의 시작: 전이의 해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필자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이가 해소되면서 진정한 관계가 가능해졌다.

전에 부하직원이었던 후배를 만났을 때,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자네 정말 잘했어. 고마웠어."

후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부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이제 부장님이 아니야. 그냥 사람 대 사람이지. 이제 '상상적 동일시'에서 벗어났으니까."

아내와의 관계도 달라졌다.

"당신 요즘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뭐가?"

"감정 표현을 하잖아. 예전엔 무뚝뚝하기만 했는데. 초자아의 검열이 약해진 거 같아."


라캉과 리더의 만남: 이론과 임상의 통합


최종 발표 시간, 필자는 리더의 사례와 자신의 경험을 연결했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은 '백 번의 작별'을 통해 아버지와의 미완성 작별을 반복했습니다. 저는 25년간 직장 생활을 통해 아버지의 인정을 구했죠. 둘 다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의 사례입니다."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불가능한 것을 추구한 거네요. 라캉의 '대상 a'를 쫓은 거죠."

"네. 하지만 그 불가능을 인식하는 순간,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상징적 거세'를 받아들인 거예요."

수진이가 라캉을 인용했다.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다.' 선배님의 무의식에는 아버지의 담론이 있었고, 이제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신 거네요. 이것이 정신분석이 추구하는 '주체화(subjectivation)'입니다."

에필로그: 작별 너머의 만남 - 욕망의 윤리

이제 3학기가 시작된다.

필자는 여전히 '막내'지만, 이제는 울어도 되는 막내가 되었다.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의 강화'가 일어난 것이다.

리더의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백 번의 작별'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백 번의 인정'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넘어서는 것이다. 라캉의 표현으로 '욕망의 윤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오늘도 스터디 모임이 있다. 이번 주제는 '애도와 우울증'이다.

카페로 가는 길, 공항을 지나간다.

이제 공항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실재의 공포가 상징적 의미로 전환되었다.

작별의 장소가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아버지, 이제야 진짜 인사를 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마음속으로 인사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작별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사랑하고 일할 수 있는 능력'의 회복이며, 라캉이 말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의 실천이다.


참고문헌: 대리언 리더. 『우리는 왜 우울할까』 (서울: 동녘사이언스, 2011). 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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