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퇴직 후, 내 인생 2막은 정신분석-8화

by 홍종민

충격적인 재회 - 실재계의 침입


학기 10주차 목요일, '상담 실습' 수업이었다. 외부에서 자원자를 모집했는데, 첫 번째 내담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필자는 얼어붙었다. 전 직장 상사, 김 전무였다. 라캉이 말한 '실재의 조우(tuché)'가 일어난 순간이었다. 예기치 못한 만남이 상징계의 안정된 질서를 뒤흔들었다.

김 전무도 필자를 알아봤다. 순간 그의 얼굴이 굳었다.

"홍 부장?" "...전무님."

8년 만의 재회. 그것도 상담실에서, 완전히 역전된 관계로. 프로이트가 『언캐니』에서 말한 '섬뜩한 낯설음(Das Unheimliche)'의 순간이었다. 억압되었던 것이 돌아오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경험.


맥윌리엄스의 통찰: 반복강박의 메커니즘


그날 아침, 필자는 낸시 맥윌리엄스(Nancy McWilliams)의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를 읽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강력한 경험 중 하나다." (2007년, 54쪽)

이 문장을 읽으며 필자는 생각했다. 사랑만 그런가? 증오도 마찬가지 아닌가? 프로이트는 『본능과 그 운명』에서 사랑과 증오가 동일한 리비도 에너지의 양면임을 밝혔다. 우리는 미워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용서해야 할 때가 온다.

김 전무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라캉의 용어로 '증상(sinthome)'이었다. 필자의 무의식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고통스러운 향유의 대상.

8년 전의 기억: 원초적 외상의 재현

최 교수가 상황을 파악하고 개입했다.

"두 분이 아시는 사이신가요?"

김 전무가 어색하게 웃었다.

"네... 예전 부하직원이었습니다."

부하직원. 그 단어가 칼처럼 꽂혔다. 8년 전, 이 사람 밑에서 필자는 개처럼 일했다. 새벽 2시까지 보고서를 고치고, 주말도 없이 일했다. 프로이트가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설명한 '마조히즘적 만족'의 전형이었다.

"상담 진행이 어려우시면 다른 분으로..."

"아닙니다. 홍 부장... 아니, 홍 선생님께 상담받고 싶습니다."

필자는 당황했다. 이 상황이 현실인가? 라캉이 헤겔을 인용해 설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역전된 순간이었다.


반복강박의 실체: 죽음충동의 작동


상담실에 단둘이 앉았다. 김 전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작년에 퇴직했습니다. 그 후로 우울증이 왔어요."

8년 전, 이 사람은 필자에게 말했었다. "홍 부장, 우울할 시간 있으면 일이나 더 해!"

그런 사람이 지금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운명 신경증(Schicksalsneurose)'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40년 일했습니다. 전무까지 올라갔죠.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그 순간, 필자는 맥윌리엄스의 또 다른 구절을 떠올렸다.

"방임적인 부모를 둔 아이는 성인이 되어 자기를 방치하는 사람에게 끌린다."

김 전무는 필자를 방치했다. 아니, 학대했다. 그런데 왜 필자는 8년간 그 밑에서 일했을까?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의 핵심이 여기 있었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끊임없이 재연한다.


나의 아버지, 나의 상사: 전이의 구조적 분석


맥윌리엄스는 우리가 과거의 중요한 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한다고 했다. 그리고 치료했던 한 남자는 아동기에 매일 아침 부엌에서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있고 다른 손에는 커피 잔을 쥐고 멍하니 공간을 응시하는 알코올 중독의 어머니를 보곤 했는데, 대학교 식당에서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있고 다른 손에는 커피 잔을 쥐고 멍하니 공간을 응시하는 한 여성과 '불가사의하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에서 설명한 '원초적 대상 선택'의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최초의 사랑 대상을 평생 반복한다.

필자의 아버지도 김 전무와 비슷했다. 엄격하고, 칭찬에 인색하고, 늘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라캉의 표현으로 '상징적 아버지(père symbolique)'의 억압적 기능을 체현한 인물들이었다.

"홍 선생님..." 김 전무가 갑자기 말했다.

"사실 오늘 일부러 온 겁니다. 명단에서 홍 부장 이름을 봤어요."

"왜 저를...?"

김 전무가 고개를 숙였다.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8년 전, 제가 너무했죠. 인간적이지 못했어요."

이것은 라캉이 말한 '대타자의 욕망'이었다. 김 전무는 인정과 용서를 구하는 욕망의 주체로 왔다.


가해자의 고백: 초자아의 잔혹한 명령


"그때는 저도 미쳐 있었습니다. 실적 압박에, 더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에..."

김 전무의 눈가가 붉어졌다.

"부하직원들을 사람으로 안 봤어요. 그저 숫자를 만들어내는 기계로..."

맥윌리엄스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모두 강박적으로 과거를 반복한다. 김 전무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필자에게 반복했다. 프로이트가 『집단 심리학과 자아 분석』에서 설명한 '공격자와의 동일시'였다.

"전무님도 피해자였네요."

"피해자라기보다는... 공범이었죠. 시스템의 공범."

라캉이 말한 '상징계의 구조적 폭력'이 여기 있었다. 우리는 모두 대타자의 담론에 포획된 주체들이다.


스터디에서의 토론: 무의식의 논리


그날 저녁 스터디 모임에서 필자는 이 경험을 나눴다.

"믿기지 않아요. 전 상사가 내담자로 왔다니." 필자가 말했다.

수진이가 맥윌리엄스의 책을 들며 말했다.

"이것도 반복강박 아닐까요? 선배님이 무의식적으로 그 상사와의 관계를 해결하고 싶어서... 프로이트가 말한 '미완성 과제의 완성 충동'이죠."

30대 동기가 덧붙였다.

"맥윌리엄스가 말했잖아요. '알코올중독 아버지를 둔 딸은 술에 취약한 남자를 선택한다'고. 선배님도 학대적 상사를 계속 만난 건 아닐까요?"

필자는 놀랐다. 돌이켜보니 정말 그랬다. 첫 직장, 두 번째 직장... 늘 비슷한 스타일의 상사들이었다. 라캉의 '시니피앙의 연쇄'가 만들어낸 필연적 반복이었다.

우울한 어머니와 구원 환상: 멜랑콜리의 전이

김 전무의 두 번째 상담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어머니가 우울증을 앓으셨어요. 평생을."

맥윌리엄스의 세 번째 패턴이 떠올랐다. "우울한 어머니와 자란 아들은 불행한 여성의 그림자에 매혹된다." 프로이트가 『애도와 멜랑콜리』에서 설명한 '대상의 그림자가 자아 위에 드리워진' 상태였다.

"어머니를 구원하고 싶으셨군요."

"네. 하지만 실패했죠. 그래서 회사에서라도 성공하고 싶었어요."

김 전무는 어머니를 구원하지 못한 죄책감을 회사에서의 성공으로 보상받으려 했다. 그 과정에서 부하직원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프로이트의 '전치(Verschiebung)'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이다.


전이와 역전이의 춤: 무의식적 대화


상담 수퍼비전 시간, 최 교수가 분석했다.

"홍 선생님, 역전이가 일어났죠?"

"네. 분노가 올라왔다가, 연민이 느껴졌다가..."

"맥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했죠. '우리의 무의식은 캐스팅 디렉터처럼 과거의 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현재에 캐스팅한다'고. 라캉식으로 말하면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죠."

최 교수가 칠판에 도식을 그렸다.

"8년 전: 김 전무(가해자) → 홍 부장(피해자)" "현재: 홍 상담사(치유자) → 김 내담자(환자)"

"위치가 역전됐지만, 본질은 같아요. 둘 다 상처받은 사람들이죠. 프로이트의 '원초적 나르시시즘의 상처'를 공유하는 거예요."

강박적 사랑과 강박적 증오: 양가감정의 역동

그날 밤, 필자는 깊이 생각했다. 맥윌리엄스가 말한 '사랑의 강박'이 증오에도 적용되는 것 아닐까?

우리는 강박적으로 사랑하고, 강박적으로 미워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늘 과거의 누군가를 닮아있다. 프로이트가 『토템과 타부』에서 밝힌 '양가감정(Ambivalenz)'의 원초적 구조다.

필자가 김 전무를 그토록 미워했던 것도, 그가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인정에 인색하고, 늘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아버지. 라캉의 '상상적 아버지(père imaginaire)'의 투사였다.


꿈의 분석: 무의식의 언어


세 번째 상담에서 김 전무가 꿈 이야기를 했다.

"회사 건물이 무너지는 꿈을 자주 꿔요. 제가 그 안에 갇혀 있고..."

"느낌이 어떠셨어요?"

"무섭기도 하지만... 시원하기도 했어요."

필자는 깨달았다. 그도 회사라는 감옥에 갇혀 있었구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따르면 이것은 '소원충족'이었다. 파괴하고 싶으면서도 두려워하는 양가적 욕망.

"건물은 어머니일 수도 있어요. 우울증이라는 감옥."

김 전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회사에 더 매달렸어요."

라캉이 말한 '어머니의 욕망(désir de la mère)'에 포획되어 상징적 거세를 거부한 주체의 모습이었다.


반복에서 인식으로: 통찰의 작업


맥윌리엄스는 이렇게 썼다. "인식은 변화의 시작이다. 우리가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때, 비로소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열린다."

김 전무도 자신의 패턴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의식화(Bewusstmachung)' 과정이었다.

"저는 평생 어머니를 구원하려 했어요. 회사에서, 부하직원들을 통해서... 하지만 방법이 틀렸죠."

"어떻게 틀렸다고 생각하세요?"

"구원이 아니라 지배였어요. 통제하면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죠."

이것은 라캉이 말한 '주인 담론(discours du maître)'의 한계였다. 지배를 통해서는 결코 욕망의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

맥윌리엄스의 다섯 단계: 정신분석적 작업

네 번째 상담에서 필자는 맥윌리엄스가 제시한 다섯 단계를 김 전무와 함께 적용해봤다.

패턴 인식하기: "전무님은 늘 통제하려 했죠. 어머니를 통제할 수 없었던 것처럼." - 프로이트의 '저항 분석'의 시작


과거와 연결하기: "우울한 어머니, 무력한 아들. 그것이 원형이었어요." - 라캉의 '원초적 장면의 재구성'


감정 느끼기: 김 전무는 처음으로 울었다. 40년 만의 눈물이었다. - 프로이트의 '카타르시스(정화작용)'


현재에 머물기: "이제 어머니는 안 계세요. 구원할 사람도, 통제할 대상도 없어요." - 라캉의 '실재의 수용'


다르게 반응하기: "이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 새로운 주체성의 구성과 욕망의 재배치


용서의 순간: 상징적 화해


"홍 선생님, 정말 미안했습니다."

김 전무가 고개를 숙였다.

"8년 동안 상처를 안고 사셨을 텐데..."

필자는 맥윌리엄스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포로다. 하지만 인식하는 순간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프로이트의 "Wo Es war, soll Ich werden"(이드가 있던 곳에 자아가 되어야 한다)의 실현이었다.

"전무님도 상처받은 아들이었네요. 이제야 이해합니다."

"그래도 제가 한 일은..."

"용서합니다. 아니, 이해합니다."

이것은 라캉이 말한 '상징적 승인'이었다. 타자를 인정함으로써 주체 자신도 인정받는 변증법적 과정.


스터디에서의 깨달음: 욕망의 해석


그날 저녁 스터디에서 수진이가 물었다.

"선배님, 맥윌리엄스가 말한 '반복강박의 숨겨진 소망'이 뭐였을까요?"

필자는 대답했다.

"아마도... 이번에는 다른 결말을 원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 못 받은 인정을 상사에게서 받고 싶었고, 이제는 상사를 용서함으로써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었던... 프로이트의 '사후성(Nachträglichkeit)'의 작동이죠."

30대 동기가 감탄했다.

"그럼 김 전무님은요?"

"어머니를 구원하지 못한 죄책감을 저를 통해 해결하려 했겠죠. 사과하고 용서받음으로써. 라캉의 '상징적 채무'를 청산하는 거예요."

사랑도 강박, 증오도 강박: 리비도의 이중성

지민이가 맥윌리엄스의 책을 인용했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과거의 사랑받고 싶었던 대상의 이미지를 투사한다.'"

"증오도 마찬가지예요." 필자가 덧붙였다.

"우리는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과거의 누군가를 투사해요. 그래서 실제보다 더 미워하죠. 프로이트가 말한 '나르시시즘적 격노'의 메커니즘이에요."

최 교수가 정리했다.

"그래서 진정한 만남이 어려운 거예요. 늘 과거의 유령들이 현재에 개입하니까. 라캉의 '환상의 횡단'이 필요한 이유죠."

마지막 상담과 새로운 시작: 주체의 재탄생

다섯 번째 상담이 마지막이었다.

"홍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김 전무가 봉투를 내밀었다.

"상담료입니다."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아직 학생이고..."

"그럼 밥이라도 사게 해주세요. 8년치 미안함이 있으니까."

이것은 라캉이 말한 '상징적 교환'이었다. 선물과 채무의 순환을 통한 관계의 재정립.


식당에서의 대화: 진실의 순간


학교 근처 고깃집. 8년 만에 마주 앉아 술을 마셨다.

"홍 선생, 왜 정신분석을 공부해?"

"제 자신을 알고 싶어서요. 왜 제가 늘 비슷한 상사들에게 끌렸는지, 왜 그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썼는지... 프로이트가 말한 '자기분석(Selbstanalyse)'의 여정이죠."

"알게 됐어?"

"네. 맥윌리엄스가 말했어요. 우리는 과거를 반복한다고. 저는 아버지를 반복했고, 전무님은 어머니를 반복했죠. 라캉의 '기표의 사슬'에 묶여 있었던 거예요."

김 전무가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 둘 다 미쳤었네."

"이제는 깨어나는 중이고요. 정신분석이 추구하는 '각성(Erwachen)'의 과정이죠."

무의식의 캐스팅: 필연적 조우

"근데 신기하지 않아?" 김 전무가 물었다.

"뭐가요?"

"내가 하필 자네를 찾아온 것. 그것도 상담받으러."

필자는 맥윌리엄스의 '무의식의 캐스팅 디렉터' 비유를 설명했다.

"우리의 무의식은 영화감독 같아요. 필요한 배우를 정확히 캐스팅하죠. 전무님은 용서받을 사람이 필요했고, 저는 용서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라캉이 말한 '무의식적 지식(savoir inconscient)'이 만든 시나리오죠."

"그래서 만난 거군."

"네. 8년 만에, 완전히 다른 관계로. 프로이트의 '운명의 반복'이지만, 이번엔 치유적 결말로."


치유의 가능성: 변화의 잠재력


김 전무가 진지하게 물었다.

"홍 선생, 우리 같은 사람도 변할 수 있을까?"

필자는 맥윌리엄스의 희망적 메시지를 전했다.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어요. 하지만 인식하면 달라져요. 무의식적 반복에서 의식적 선택으로.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의 영역 확대'죠."

"60에 시작해도?"

"저도 50대에 시작했어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래요. 라캉은 '분석에는 끝이 없다'고 했고요."


사랑과 증오를 넘어 - 욕망의 윤리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맥윌리엄스의 책을 다시 펼쳤다.

"반복강박은 저주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정신이 치유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김 전무와의 만남도 그랬다. 8년 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무의식의 선물이었을까. 프로이트가 말한 '치료 충동(Heilungstrieb)'의 발현이었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왜 이렇게 늦었어?"

"전 상사랑 술 마셨어."

"그 악마 같던 사람?"

"응. 근데 악마도 한때는 천사였대. 프로이트가 말했듯, 우리 안에는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공존해."

아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우리 모두 상처받은 아이들이라는 거야. 어른 옷을 입고 있을 뿐. 라캉의 '유아적 주체(sujet infantile)'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해."

스터디 최종 발표: 이론의 통합

학기 말, 필자는 이 경험을 주제로 발표했다.

"맥윌리엄스는 우리가 강박적으로 과거를 반복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에서도, 증오에서도. 이것은 프로이트의 '반복강박'과 라캉의 '향유의 반복'이 결합된 현상입니다."

교수님이 물었다.

"그래서 홍 선생의 결론은?"

"반복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집니다. 완전하진 않지만, 이전보다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죠. 프로이트의 'Wo Es war, soll Ich werden'의 실천이며, 라캉의 '주체의 재구성'입니다."

수진이가 손을 들었다.

"그럼 선배님과 김 전무님의 만남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필자는 미소 지었다.

"맥윌리엄스라면 이렇게 말하겠죠. '무의식에 우연은 없다. 모든 만남은 필연이다.' 라캉도 동의할 거예요. '실재의 조우는 항상 이미 써진 것'이라고."


새로운 관계의 시작: 상징적 재탄생


김 전무는 이제 정기적으로 정신분석을 받는다고 한다. 60세의 새로운 시작. 프로이트가 말한 '끝나지 않는 분석(Die endliche und die unendliche Analyse)'의 시작이었다.

필자는 가끔 그와 커피를 마신다. 더 이상 상사와 부하가 아닌,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서.

"홍 선생, 요즘 꿈이 바뀌었어."

"어떻게요?"

"회사 건물이 무너지는 대신, 정원에 꽃을 심는 꿈을 꿔."

"좋은 변화네요. 프로이트라면 '승화(Sublimierung)'라고 했을 거예요. 파괴 충동이 창조 충동으로 전환된 거죠."

"자네 덕분이야. 아니, 정신분석 덕분이지."


맥윌리엄스의 마지막 통찰: 자유를 향한 여정


맥윌리엄스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여전히 강박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강박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이제 필자는 안다. 사랑도 강박이고, 증오도 강박이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프로이트의 '통찰을 통한 치유'이며, 라캉의 '욕망의 윤리'다.

김 전무를 용서한 것은 사실 아버지를 용서한 것이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용서한 것이었다. 라캉이 말한 '주체의 탈소외(désaliénation)'였다.

8년간의 증오가 이해로 바뀌는 데는 다섯 번의 상담이면 충분했다.

정신분석의 기적이다.

그리고 이 기적은 계속된다.

다음 학기에는 '전이와 역전이'를 주제로 논문을 쓸 예정이다.

제목은 이렇게 정했다.

"When the Boss Becomes the Patient: A Psychoanalytic Journey" (상사가 환자가 되었을 때: 정신분석적 여정)

맥윌리엄스가 이 논문을 읽는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모든 관계는 반복이지만, 인식된 반복은 성장의 기회가 된다. 프로이트와 라캉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통찰이다."


참고문헌: Nancy McWilliams. (2004). Psychoanalytic Psychotherapy: A Practitioner's Guide. 권석만, 이한주, 이순희 역(2007).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서울: 학지사. 54p

keyword
작가의 이전글퇴직 후, 내 인생 2막은 정신분석-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