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4장: 반복강박과 시니피앙의 귀환

by 홍종민

정신분석이 파고드는 가장 심층적인 질문 중 하나는 **"나도 모르게 계속 나오는 이 말의 무의식적 의미는 무엇일까?"**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같은 말, 같은 감정, 같은 관계 패턴을 반복한다. 다른 사람, 다른 상황인데도 결과는 비슷하다. 프로이트는 이를 ‘반복강박(compulsion to repeat)’이라 불렀고, 라캉은 이 반복을 시니피앙의 구조로 풀어냈다.

이 장에서는 무의식의 반복 구조와 그것이 어떻게 시니피앙을 통해 귀환하는지를 다룬다. 반복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가 모르는 무의식이 구조적으로 되돌아오는 방식이며, 분석의 가장 깊은 층위를 구성한다. 반복은 고통이 아니라, 무의식의 언어다.


반복강박이란 무엇인가: 동일한 고통의 재현

:

프로이트는 전쟁 신경증 내담자들이 끔찍한 외상을 꿈속에서 반복하는 현상에서 반복강박 개념을 도출했다. 이들은 고통을 피하려 하지 않고, 되풀이한다. 어린 시절 상처를 받은 사람이 비슷한 관계를 계속 만들어내고,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이 반복은 고통을 다시 겪으려는 의식적 욕망이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의 구조가 ‘그 자리’를 반복하게 만든다. 반복은 상처를 치유하려는 시도이자, 동시에 그 상처에 갇혀 있는 구조다. 그리하여 주체는 무의식적으로 고통의 장면을 되찾아 가고, 무의식은 그것을 언어로 고정된 구조로 호출한다.


라캉: “반복은 시니피앙의 귀환이다”

:

라캉은 반복을 단지 심리적 습관이 아니라, 언어 구조로 설명했다. “반복은 시니피앙의 귀환”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반복은 무의식이 고른 말, 즉 시니피앙이 주체의 말 속에서 다시 나타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는 항상 버림받아”라고 반복한다면, ‘버림’이라는 시니피앙이 무의식적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그 사람은 새로운 관계를 맺더라도, 그 시니피앙을 재현하게 되는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구성한다. 즉, 시니피앙은 경험을 단지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다시 불러오는 장치이기도 하다.


반복은 어떻게 언어로 돌아오는가

:

시니피앙은 특정 감정, 기억, 상처를 언어의 형식으로 담아낸다. 이 말은 잊힌 줄 알았던 고통을, 다른 모습으로 재현한다. 반복강박은 단지 감정의 재현이 아니라, 그 감정을 언어로 다시 말하게 만드는 구조다.

“나만 보면 짜증내요”, “나는 또 실패했어요”, “그런 말 들으면 멍해져요”와 같은 표현은 단지 현재 감정의 반응이 아니라, 과거의 감정이 언어 구조로 반복된 것이다. 이 반복은 자기도 모르게, 하지만 일관되게 나타난다. 특히 같은 장소, 같은 유형의 사람, 같은 말투에 반응하는 반복적 패턴은 무의식이 재연을 통해 무언가를 알리려 한다는 신호다.


반복과 실재계: 언어로 표현된지 못한 것의 귀환

:

반복은 실재계와도 관련이 있다. 실재계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충격, 외상, 감각을 담고 있는 차원이다. 주체는 그것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우회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시니피앙은 그 실재계를 비껴 말하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그 실재를 호출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때 시니피앙은 과잉 반응, 무의미한 말 반복, 몸의 감각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냥… 짜증나요”라는 말은 짜증이 아니라, 말로 포착되지 않는 감정의 귀환이다. 그 감정은 실재계에서 흘러나온 것이며, 반복되는 말은 그 실재가 침투한 흔적이다.


반복되는 말은 나를 정의한다

:

사람은 자신을 설명할 때 반복적인 표현을 쓴다. “나는 늘 부족해요”, “내 인생은 늘 그랬어요”, “이제는 그냥 포기했어요” 같은 말들은 단지 상태의 설명이 아니라, 주체가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시니피앙의 자리다.

이 시니피앙은 자기 이미지를 고정하고, 그 이미지에 맞는 삶을 재현하게 만든다. 즉, 말이 감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구조화하고, 경험을 재생산한다. 반복되는 말은 주체가 자신을 인식하는 틀이 되며, 동시에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말은 단지 표현이 아니라 구조다.


분석 장면에서 반복을 듣는다는 것

:

분석가는 내담자의 말에서 ‘새로운 말’을 듣기보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지점을 주의 깊게 청취한다. 같은 이야기를 하되, 다른 구조로 반복되거나, 다른 상황에서도 같은 시니피앙이 등장할 때, 그것은 무의식의 반복이다.

청취는 단지 내용의 파악이 아니라, 말의 구조와 맥락, 리듬과 억양, 반복과 누락의 패턴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반복은 해석되기보다, 반사되고 되물어질 때 전복된다. 그 질문은 단순히 설명을 유도하지 않고, 반복의 기원을 역추적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반복의 중단은 어떻게 일어는가

:

복은 끝날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반복강박을 삶의 본능과 죽음 본능 사이의 긴장으로 보았다. 라캉은 이 반복을 시니피앙의 구조에서 끊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 바로 ‘다르게 듣는 것’이다.

동일한 말, 동일한 경험이 반복되지만, 그것을 다른 자리에서 듣고, 반응하고, 되묻는 방식이 생긴다면, 구조는 이동한다. “또 실패했어요”라는 말에, “그 말은 언제부터 반복되었나요?”라는 질문을 던질 때, 말의 위치가 이동하고, 무의식의 구조가 균열을 낸다. 반복은 무의식의 무대이며, 질문은 그 무대를 잠시 정지시키는 조명이다.


사례 분석 1: “저는 또 혼자 남았어요”


한 내담자는 반복적으로 “또 혼자 남았어요”라는 말을 했다. 관계가 깨질 때마다, 그는 이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 속에는 매번 자신이 먼저 거리를 두었고, 스스로를 소외시켰다는 흔적도 드러났다. 분석가는 그 말이 주는 감정에 머물지 않고, 그 말의 반복 위치에 주목했다. “왜 ‘또’라는 말을 하셨을까요?”라는 질문이 던져졌을 때, 그는 스스로 그 말이 어릴 적부터 늘 해오던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말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도. 이때 ‘혼자’라는 말은 단지 상태가 아니라, 무의식이 고른 시니피앙이었다. 그 말은 그가 놓여 있던 가족 구조, 감정 구조, 자기 서사 속에서 반복되었고, 분석의 계기를 통해 그 구조를 낯설게 보기 시작했다.


사례 분석 2: “그렇게 또 시작됐죠”


다른 내담자는 “그렇게 또 시작됐죠”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관계의 초반, 기대가 생기고 희망이 보일 때 그는 이 말을 했다. ‘또’라는 부사, ‘시작’이라는 단어는 기대와 동시에 무너짐을 내포한 시니피앙이었다.

그는 매번 좋은 관계가 시작되면 불안을 느꼈고,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먼저 거리를 뒀다. 분석가는 “그렇게”와 “또”라는 말의 반복 구조를 추적했고, 그가 그 말을 어린 시절 아버지의 출장을 언급할 때 사용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즉, ‘시작’은 희망이 아니라 상실의 전조였고, 무의식은 그 구조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었다. 분석을 통해 그는 ‘시작의 불안’이 실제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반복된 패턴임을 인식했다.


말은 돌아온다. 그러나 다르게 들을 수 있다


반복강박은 말의 귀환이다. 그것은 무의식이 잊히지 않은 자리에서 다시 돌아오는 말이며, 시니피앙이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방식이다. 우리는 그 말을 다르게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르게 들을 수는 있다. 이 장에서는 반복이라는 구조가 어떻게 언어를 통해 작동하며, 분석 장면에서 어떤 청취가 필요한지를 설명했다. 반복은 단순한 실패의 반복이 아니라, 무의식이 들려주는 구조적 메시지다. 청취는 그 메시지를 해독하려는 시도이며, 분석가는 그 해독의 동반자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시니피앙의 반복이 타자의 시선 아래서 어떻게 주체를 구성하는지를, 즉 언어와 주체 형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년 방랑, 언더핸드로 인생을 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