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by 홍종민

라캉의 충격적 선언


2019년 늦가을, 나는 라캉의 세미나 녹취록을 읽다가 멈춰 섰다. "L'inconscient est structuré comme un langage" -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이 한 문장이 내 머릿속을 강타했다. 15년간 다뤄온 사주명리학도 결국 언어가 아닌가? 22개의 간지로 이루어진 운명의 언어. 그렇다면 무의식과 사주는 같은 구조를 공유하는 것일까?

자크 라캉은 프로이트를 언어학적으로 재해석했다. 무의식은 혼돈의 영역이 아니라 엄격한 규칙을 가진 언어적 구조라는 것. 은유와 환유, 기표와 기의, 그리고 끝없는 의미의 연쇄. 이것은 사주명리학의 작동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천간과 지지의 조합, 생극제화의 규칙, 그리고 해석의 무한한 가능성.

상담실에서 매일 듣는 말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무심코 튀어나온 말인데...", "말실수를 자주 해요". 이것들은 모두 무의식이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들이었다. 프로이트가 말한 '말실수(Freudian slip)'는 실수가 아니라 무의식의 정확한 표현이었다.

2020년 봄, 한 여성이 상담 중에 흥미로운 말실수를 했다. "저는 결혼하고 싶... 아니, 결론 내리고 싶어요." 그녀의 사주에는 강한 칠살(七殺)이 있었다. 관계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에너지. 그녀에게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결론', 즉 관계의 종결이자 확정이었다.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표의 사슬


라캉에 따르면, 우리는 기표(signifier)의 사슬에 묶여 있다. 하나의 기표는 다른 기표를 불러오고, 그것은 또 다른 기표로 이어진다. 의미(signified)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이것을 '의미의 미끄러짐(glissement du sens)'이라고 한다.

사주명리학도 기표의 체계다. '갑목(甲木)'이라는 기표를 보자.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큰 나무? 하지만 곧바로 다른 연상이 따라온다. 리더십, 고집, 시작, 봄, 동쪽, 청색, 간장, 분노... 끝없는 연쇄. 그리고 이 연쇄는 개인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갑목은 든든한 아버지고, 누군가에게는 억압적인 권위다.

2021년 초,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내담자들에게 자신의 일간(日干)에 대해 자유연상을 해보라고 했다. 한 남성(갑목 일간)의 연상은 이랬다:

"갑목 → 큰 나무 → 아버지 → 무서움 → 도망 → 자유 → 새 → 하늘 → 갑목..."

원을 그리며 돌아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서운 아버지'와 '자유를 갈망하는 자신'이라는 무의식적 갈등이 드러났다. 그의 갑목은 단순한 오행이 아니라, 복잡한 심리적 콤플렉스의 압축이었다.

한 여성(을목 일간)의 연상은 전혀 달랐다:

"을목 → 꽃 → 예쁨 → 시들다 → 버려지다 → 외롭다 → 강해지다 → 대나무 → 을목..."

같은 목(木)이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 사슬. 그녀에게 을목은 '버림받을 수 있는 연약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해지는 것' 사이의 긴장이었다. 기표는 같지만 각자의 무의식이 만드는 의미는 달랐다.


은유와 환유의 작동


라캉은 프로이트의 '압축'과 '전치'를 언어학의 '은유'와 '환유'로 재해석했다. 은유(metaphor)는 하나의 기표가 다른 기표를 대체하는 것. 환유(metonymy)는 인접한 기표로 옮겨가는 것. 무의식은 이 두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상담실에서 이것은 명확히 드러난다. 한 중년 남성이 있었다. 그는 상사와의 갈등으로 왔지만, 이야기하다 보니 계속 아버지 얘기가 나왔다. "상사가 꼭 아버지 같아요. 아니, 아버지가 상사 같았어요." 상사는 아버지의 은유였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고 있었다.

그의 사주를 보니 강한 편관(偏官)이 있었다. 권위와의 갈등을 암시하는 구조.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모든 권위적 인물을 아버지로 은유화한다는 점이었다. 상사도, 교수도, 심지어 나(상담사)도 잠재적 아버지였다.

"모든 권위자가 아버지로 보이시나요?"

"어...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환유의 예도 있었다. 한 여성은 남편에 대해 불평하면서 이상하게 주제가 계속 바뀌었다. 남편 → 시어머니 → 회사 상사 → 친구 → 다시 남편. 겉보기엔 무관해 보이지만, 모두 '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연결되어 있었다. 환유적 사슬을 따라 그녀의 핵심 상처가 드러났다.

그녀의 사주에는 식상(食傷)이 강했지만 인성(印星)이 약했다. 표현 욕구는 강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 환유의 사슬은 이 구조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반복됨을 보여주었다.


증상의 언어


라캉은 "증상은 하나의 언어"라고 했다. 그것은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암호화된 메시지다. 해독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구조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20년 여름, 강박증 환자가 찾아왔다. 그는 하루에 7번씩 손을 씻어야 했다. 왜 7번인지는 본인도 몰랐다. 그의 사주를 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칠살(七殺)이 일지에 있었다. 7이라는 숫자가 우연이 아니었다.

"7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가요?"

"모르겠어요. 그냥 7번은 씻어야 깨끗한 느낌이..."

자유연상을 시켰다. 7 → 일주일 → 창조 → 완성 → 아버지 → 7살 → 사고...

7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 후로 '7'은 그에게 죽음과 연결된 숫자가 되었다. 7번 씻는 것은 죽음의 오염을 씻어내려는 무의식적 의식(ritual)이었다.

"칠살이 당신 사주에만 있는 게 아니라 당신 인생에도 있었네요."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증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의미해 보이던 강박이 사실은 7살 때의 트라우마를 다루려는 무의식의 언어였다는 것을. 칠살의 에너지가 파괴가 아니라 정화의 의식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꿈의 문법


꿈은 무의식의 언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라캉은 꿈을 '레부스(rebus)', 즉 그림 수수께끼로 봤다. 이미지로 된 언어, 시각적 문법을 가진 텍스트.

2019년 겨울, 한 여성이 반복되는 꿈 때문에 찾아왔다. 꿈에서 그녀는 항상 기차를 놓쳤다. 플랫폼에서 뛰어가지만 기차는 이미 떠난 후. 그녀의 사주를 보니 역마살(驛馬殺)이 있었다. 움직임과 변화의 에너지.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는 10년째 같은 직장, 같은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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