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기(氣)와 무의식: 동양의 촉과 서양의 욕망

by 홍종민

보이지 않는 두 세계의 만남


2019년 한겨울, 새벽 3시. 나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을 읽다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을 집어 들었다. 두 권의 책을 번갈아 읽으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2500년 전 중국의 의학서가 말하는 '기(氣)'와 100년 전 빈의 의사가 발견한 '리비도(libido)'.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 둘은 같은 것을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생명의 에너지, 인간을 움직이는 근원적 힘에 대한 통찰이었다.

기(氣)는 동양사상의 핵심 개념이다.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근본 에너지이자 생명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힘. 사주명리학에서 기는 오행으로 분화되어 목화토금수의 다섯 가지 성질로 나타난다. 각 개인은 태어난 시간의 기운을 받아 고유한 기질을 형성한다. 이것이 바로 사주팔자의 본질이다. 타고난 기의 구성과 흐름이 그 사람의 성격과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발견한 정신의 숨겨진 영역이다. 의식 아래 거대한 빙산처럼 존재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힘. 억압된 욕망, 잊혀진 기억, 원초적 충동들이 살아 숨 쉬는 곳. 프로이트는 이 무의식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리비도'라고 불렀다. 성적 에너지로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모든 생명 충동과 창조적 에너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상담실에서 매일 마주하는 것이 바로 이 두 힘의 작용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주(기의 구성)를 알고 싶어 하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충동과 욕망(무의식)에 시달린다. "제 사주는 이런데 왜 저는 저럴까요?"라는 질문의 답은 대개 기와 무의식의 상호작용에 있었다. 기가 하드웨어라면 무의식은 소프트웨어. 둘이 함께 작동해야 한 인간이라는 복잡한 시스템이 돌아간다.

2020년 봄, 한 중년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원인 모를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온몸에 힘이 없어요.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대요." 그의 사주를 보니 화(火)가 극도로 약했다. 화는 열정과 활력의 기운. 한의학적으로는 '양기부족(陽氣不足)' 상태였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니 그의 무기력은 단순한 기의 부족이 아니었다. 그는 최근 아버지를 잃었고, 그 상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 프로이트가 말한 '멜랑콜리'. 상실한 대상에게 투자했던 리비도가 철수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상태. 기의 부족과 리비도의 철수가 동시에 일어나 극도의 무기력을 만든 것이다.


원기(元氣)와 리비도의 평행이론


동양의학에서 원기(元氣)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명력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정(精)이 변화한 것으로, 신장(腎)에 저장되어 있다가 일생 동안 소모된다. 원기가 충실하면 건강하고 장수하지만, 고갈되면 질병과 죽음에 이른다. 이것은 놀랍도록 프로이트의 리비도 경제학과 닮아있다. 리비도도 한정된 에너지로, 한 곳에 투자하면 다른 곳은 부족해진다. 과도하게 소모하면 신경증이 생기고, 적절히 순환하면 건강한 정신을 유지한다.

사주명리학에서 일간(日干)의 강약을 보는 것도 결국 원기의 충실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신강(身强)한 사람은 원기가 충실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다. 신약(身弱)한 사람은 원기가 부족해 소극적이고 내향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양적 차이가 아니다. 원기가 어떻게 분배되고 사용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마치 리비도가 어디에 투자되느냐에 따라 성격이 결정되듯이.

2021년 여름, 흥미로운 쌍둥이 자매가 찾아왔다. 같은 사주, 즉 같은 원기를 타고났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언니는 워커홀릭 변호사, 동생은 은둔형 외톨이. 같은 양의 원기/리비도를 가졌지만 사용 방식이 정반대였다. 언니는 모든 에너지를 일에 투자했고, 동생은 내면세계에 투자했다. "같은 배터리를 가졌지만 다른 앱을 실행하는 거예요." 내가 그들에게 설명한 비유였다.

깊이 탐색해보니 그들의 차이는 유아기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언니는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성취'에 리비도를 투자하도록 조건화되었다. 동생은 언니의 그늘에 가려 '위축'으로 리비도를 철수시켰다. 같은 원기를 가졌지만 무의식적 패턴이 다른 방향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사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신분석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원기와 리비도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전환 가능성'이다. 한의학에서는 원기를 후천지기(後天之氣)로 보충할 수 있다고 본다. 호흡, 음식, 수련을 통해 원기를 충전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도 리비도의 '승화(sublimation)'를 말한다. 원초적 충동을 예술이나 학문 같은 고차원적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 둘 다 에너지의 질적 변환을 통한 성장과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행의 감정과 무의식적 정동


오행은 단순한 물질 분류가 아니다. 각각의 행(行)은 특정한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목(木)은 노(怒), 화(火)는 희(喜), 토(土)는 사(思), 금(金)은 비(悲), 수(水)는 공(恐). 이것은 한의학에서 '오지(五志)'라고 부르는 감정 체계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감정들이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기의 움직임이라는 점이다. 노하면 기가 상승하고, 기뻐하면 기가 이완되고, 슬프면 기가 소모되고, 두려우면 기가 하강한다.

정신분석에서도 감정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무의식적 에너지의 표현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정동(affect)'이라고 불렀다. 정동은 억압될 수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날 뿐이다. 불안이 신체 증상으로, 분노가 우울로, 슬픔이 조증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2020년 가을, 한 여성이 공황장애로 찾아왔다. 그녀의 사주를 보니 수(水)가 과다했다. 수는 공포와 연결된 오행. 실제로 그녀는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씩씩한 커리어우먼이었다. "전 겁쟁이가 아니에요. 그런데 왜 이런 증상이..."

정신분석적 탐색을 해보니, 그녀는 평생 두려움을 억압하며 살았다. 부모가 "겁쟁이는 쓸모없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억압된 공(恐)의 정동이 공황이라는 형태로 폭발한 것이다. 수의 과다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었다. "겁이 많은 것도 하나의 기질이에요. 그것은 신중함과 섬세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죠."

6개월의 작업 끝에 그녀는 자신의 수(水) 기질을 받아들였다. 두려움을 부정하는 대신 활용하기 시작했다. 리스크 관리, 안전 점검, 세심한 계획. 공포가 전문성이 된 것이다. 오행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억압하면 증상이 되지만, 의식적으로 수용하면 강점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목(木)의 분노도 마찬가지다. 한 남성은 강한 갑목(甲木) 일간을 가졌지만 평생 화를 내지 못했다. "착한 아들"이어야 한다는 초자아의 명령 때문이었다. 억압된 목의 노(怒)는 간 질환과 우울증으로 나타났다. 한의학에서 간(肝)은 목에 속하고, 간기울결(肝氣鬱結)은 우울의 원인이 된다. 서양 정신분석에서도 우울은 자기에게 향한 분노로 본다. 동서양이 같은 통찰에 도달한 것이다.


경락과 무의식의 통로


한의학의 경락(經絡)은 기가 흐르는 통로다. 12경맥과 기경팔맥을 통해 기는 온몸을 순환한다. 막히면 병이 되고, 통하면 건강해진다. 이것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의 통로와 유사하다. 프로이트는 꿈, 말실수, 증상을 통해 무의식이 의식으로 올라온다고 했다. 라캉은 이것을 '무의식의 형성물'이라고 불렀다. 막힌 곳을 뚫어 소통하게 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2019년 겨울, 만성 요통 환자가 찾아왔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의 사주를 보니 신장(腎)에 해당하는 수(水)가 약했다. 한의학에서 "요통의 원인은 신허(腎虛)"라고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발견은 그가 요통이 시작된 시기를 정확히 기억한다는 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신장은 동양의학에서 '선천지본(先天之本)', 즉 부모로부터 받은 근본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그의 '근본'이 흔들린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그는 아버지를 신체의 기둥인 허리에 간직했다. 요통은 상실의 신체화였다. 침술로 신장 경락을 자극하는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애도 작업을 진행했다. 경락이 뚫리고 무의식이 의식화되면서 요통은 서서히 사라졌다.

경락의 불통(不通)과 무의식의 억압은 같은 현상의 다른 표현이다. 동양에서는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이라고 한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정신분석도 마찬가지다. 무의식이 의식과 소통하면 증상이 사라지고, 억압되면 고통이 생긴다.

한 여성은 매년 특정 시기에 편두통을 앓았다. 사주를 보니 그 시기는 충(沖)이 일어나는 때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기가 어머니의 기일이라는 사실이었다. 담경(膽經)이 막혀 편두통이 왔는데, 담(膽)은 결단과 용기의 장부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결단하지 못한 자책이 담경을 막은 것이다. 경락 치료와 함께 죄책감을 다루자 편두통은 사라졌다.


정기신(精氣神)과 이드-자아-초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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