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가족 서사와 가계도: 사주와 정신분석의 만남
by 홍종민 Oct 11. 2025 brunch_membership's
세대를 관통하는 운명의 실타래
2020년 초봄, 상담실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삼대(三代)가 함께 온 것이다. 팔순의 할머니, 오십대 어머니, 이십대 딸. 딸의 결혼을 앞두고 불길한 예감에 시달린다며 찾아왔다. 세 사람의 사주를 나란히 펼쳐놓는 순간, 나는 숨이 멎을 듯한 패턴을 발견했다. 세 사람 모두 일지(日支)에 같은 지지를 가지고 있었다. 오(午).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세 사람 모두 결혼 첫해에 자오충(子午沖)을 겪었다는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스물둘에 결혼해 첫해에 남편의 외도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스물다섯에 결혼해 첫해에 시어머니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리고 이제 딸이 스물넷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내년이 자년(子年). 또다시 자오충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가족이 공유하는 운명의 각본일까?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세대 간 전이(transgenerational transmission)'라고 부른다. 트라우마와 무의식적 패턴이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현상.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프랑수아즈 돌토(Françoise Dolto)는 "가족의 비밀은 3대에 걸쳐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첫 세대가 만들고, 둘째 세대가 간직하고, 셋째 세대가 증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우리 집안 여자들은 결혼하면 불행해져요."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저주받은 것 같아요." 할머니가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봤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무의식적 대본의 반복이었다. 그들은 자오충이라는 사주의 구조를 '결혼 첫해의 시련'이라는 가족 신화로 해석하고, 그것을 충실히 재연하고 있었다.
"자오충은 충돌이지만, 동시에 변화의 기회입니다. 물과 불이 만나면 증기가 되듯, 대립을 통해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어요." 내가 제안한 것은 운명의 재해석이었다. 가족이 공유하는 부정적 서사를 긍정적으로 다시 쓰는 작업. 6개월간의 가족 상담 끝에 딸은 결혼했고, 자오충의 해를 '도전적이지만 성장하는 해'로 경험했다. 처음으로 가족의 패턴을 깨뜨린 것이다.
육친의 가계도: 관계의 원형과 현실
명리학의 육친(六親)은 가족관계의 원형을 보여준다. 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가 어떤 오행으로 표현되는가. 하지만 현실의 가족은 훨씬 복잡하다. 육친이 보여주는 것은 관계의 가능성이지, 실제 관계가 아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각 가족의 고유한 서사다.
2019년 가을, 한 남성이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찾아왔다. 마흔셋의 의사, 일흔의 아버지는 은퇴한 판사였다. 아들의 사주를 보니 편재(偏財)가 편인(偏印)을 극하고 있었다. 편재는 아버지, 편인은 어머니를 의미한다. 전통적 해석으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억압한다'가 된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고, 어머니는 평생 순종하며 살았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아들이 이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역시 아내에게 권위적이었고, 아내는 순종적이었다. "전 아버지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충격을 받았다. 사주의 육친 구조가 단순히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관계 패턴의 대물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보니, 이 패턴은 할아버지 대부터 시작되었다. 3대에 걸친 가계도를 그려보니 놀라운 반복이 보였다. 모든 남자들이 편재-편인 충돌 구조를 가졌고, 모든 여자들이 약한 관성(官星)을 가졌다. 마치 가족이 특정한 사주 구조를 선택적으로 재생산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유전인가요?" 그가 물었다. "유전이 아니라 관계 패턴의 학습입니다." 내가 답했다. "아버지의 권위적 태도가 어머니의 순종을 만들고, 그것을 본 아들이 다시 그 패턴을 반복하는 거죠."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동일시(identification)'의 과정이었다. 아들은 의식적으로는 아버지를 거부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치료는 이 패턴을 의식화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가 아내와의 대화를 녹음해서 들어보도록 했다.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말투와 억양이 아버지와 똑같았다. "제 입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나와요." 자각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다른 방식의 소통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편재의 에너지를 권위가 아닌 책임으로, 편인의 극(克)을 억압이 아닌 보호로 전환하는 작업이었다.
가족 트라우마의 사주적 각인
트라우마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 전체에 각인되고, 세대를 넘어 전달된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트라우마가 종종 사주의 특정 패턴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마치 정신적 상처가 운명의 코드로 새겨지는 것처럼.
2021년 여름, 한 가족이 집단 상담을 요청했다. 6.25 전쟁 때 아버지를 잃은 할아버지, 그의 아들인 아버지, 그리고 손자. 3대 모두 일간이 무토(戊土)였고, 일지가 신금(申金)이었다. 무신(戊申) 일주의 3대 전승. 더 놀라운 것은 세 사람 모두 '버림받음의 공포'를 공유한다는 점이었다.
할아버지는 여섯 살에 아버지를 전쟁으로 잃었다. 그 트라우마는 평생 그를 지배했다. "누구든 떠날 수 있다"는 불안. 그는 자녀들을 과보호했지만, 동시에 정서적으로는 거리를 뒀다. "가까워지면 잃을 때 더 아프니까."
아버지는 물질적으로는 풍족했지만 정서적으로는 결핍되어 자랐다. 할아버지의 정서적 부재를 '버림받음'으로 경험했다. 그 역시 자녀들과 비슷한 관계를 맺었다. 제공하되 연결되지 않는. 책임지되 사랑하지 않는.
손자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극심한 분리불안을 겪고 있었다. 연애를 해도 늘 "언제 떠날 거야?"라고 묻는다. 직장도 "언제 잘릴지 몰라"라는 불안으로 자주 옮긴다. 전쟁 트라우마가 3대에 걸쳐 '버림받음의 공포'로 전승된 것이다.
무신(戊申) 일주를 분석해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무토는 산, 신금은 계곡이나 골짜기를 의미한다. 산중의 계곡, 고립되고 외로운 이미지. 더구나 신금은 편인(偏印)이 되어 불안정한 모성을 암시한다. 가족의 트라우마가 사주의 구조와 공명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트라우마가 특정한 사주 구조를 선택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치료는 3대가 함께하는 '가족 조각(family sculpture)' 작업으로 시작했다. 각자가 가족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세 사람 모두 등을 돌리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연결되지 않은 채. 그들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떠난 후 처음으로... 누군가와 눈을 마주보는 것 같아요."
부부 사주의 무의식적 선택
사람들은 왜 특정한 배우자를 선택하는가? 사주 궁합은 단순한 오행의 조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는 자신의 무의식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상대를 선택한다. 때로는 상처를 반복하기 위해, 때로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2020년 겨울, 결혼 20년 차 부부가 이혼 위기로 찾아왔다. 남편은 병화(丙火) 일간에 인성(印星)이 과다했다. 어머니의 과보호 속에 자란 전형적인 '마마보이' 사주. 아내는 경금(庚金) 일간에 상관(傷官)이 강했다.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성격. 전통적 궁합으로는 화극금(火克金), 상극 관계다.
하지만 그들이 왜 서로를 선택했는지를 탐색하자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남편은 어머니의 과보호에 질식하면서도 돌봄을 갈구했다. 그래서 '비판적인' 아내를 선택했다. 의식적으로는 어머니와 정반대인 사람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또 다른 형태의 '통제하는 여성'을 선택한 것이다.
아내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무능하고 의존적인 아버지를 경멸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돌봐줘야 할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의 의존성이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이번에는 자신이 통제권을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이 있었다.
"우리는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 상처가 맞아서 결혼한 건가요?" 아내가 울면서 물었다.
"상처가 서로를 알아본 거죠. 하지만 이제는 상처를 넘어 진짜 관계를 만들 수 있어요."
그들의 사주 궁합을 다시 읽었다. 화극금이 아니라 화가 금을 제련하는 것으로. 남편의 따뜻함이 아내의 날카로움을 부드럽게 하고, 아내의 명료함이 남편의 혼란을 정리하는 것으로. 인성 과다와 상관 과다가 충돌이 아니라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6개월간의 부부 상담 끝에 그들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 여전히 갈등은 있지만, 이제는 그것이 '성장통'임을 안다. 상극이 상생이 되는 것은 사주의 변화가 아니라 해석과 관계의 변화였다.
형제 서열과 사주의 분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이 왜 다른 사주를 갖는가? 단순히 태어난 시간이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다양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까? 형제의 사주를 연구하면서 나는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다. 가족은 마치 의도적으로 다른 역할을 배분하는 것처럼, 상호보완적인 사주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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