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홍종민

끝이 아닌 시작


2024년 봄, 나는 다시 상담실에 앉아 있다. 5년 전 그 정신분석 세미나실에서 시작된 여정이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내 상담실에는 사주명반과 함께 프로이트와 라캉의 책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오늘 만난 내담자는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반복되는 연애 실패로 고통받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사주에서 상관이 강한 것을 보았고, 동시에 그녀의 말 속에서 반복되는 '아버지'라는 시니피앙을 들었다.

"선생님, 제 운명이 그런 건가요? 평생 혼자 살아야 하는 건가요?"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사주는 당신이 타고난 성향과 패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에요. 당신이 반복하는 패턴 속에는 아직 의식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함께 그것을 탐색해볼 수 있을까요?"


통합의 길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수없이 망설였다. 과연 이렇게 다른 두 세계를 하나로 엮는 것이 가능한가? 혹시 양쪽 모두에게 배신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사주상담가'와 '정신분석가'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주고,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누군가일 뿐이다.

사주명리학과 정신분석의 만남은 단순한 학문적 융합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며, 동서양의 지혜가 만나 새로운 통찰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과정이다.

물론 이 시도가 완벽하지는 않다.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간극들이 있고, 때로는 모순처럼 보이는 지점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존재의 실상 아닐까? 우리는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간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이 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사주와 정신분석의 대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상담가들이, 학자들이,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대화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사주명반을 펼쳐놓고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옆에 정신분석 노트도 함께 둔다. 천간지지의 순환을 보면서 무의식의 역동을 생각하고, 상담 중 나타나는 전이를 느끼면서 음양오행의 흐름을 읽는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절충주의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21세기 상담가가 가져야 할 열린 자세라고 믿는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운명론과 자유의지론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 말이다.

독자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의 사주팔자는 당신이 타고난 악보와 같다. 하지만 그 악보를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는 당신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이면에는 당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멜로디가 흐르고 있다.

사주를 아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은 다르다. 운명을 읽는 것과 삶을 사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이 둘이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그 만남의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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