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모임에서 만난 후배가 하소연을 했다. "형, 저 오늘 팀장님한테 칭찬받았는데 기분이 이상해요." 무슨 칭찬을 받았냐고 물으니 "역시 자네한테 맡기길 잘했어"라는 말이었단다. 좋은 말 아니냐고 했더니 한참 생각하더니 "그 말 들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야근 프로젝트만 떨어질 것 같아서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팀장은 분명 칭찬을 했다. 하지만 후배가 들은 건 칭찬이 아니었다. 누가 틀렸을까. 둘 다 맞다. 팀장은 칭찬했고, 후배는 예고를 들었다. 같은 말이 동시에 두 가지였던 거다.
라캉 정신분석을 미국에 소개한 정신분석가 브루스 핑크는 "청자는 화자의 말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핑크, 2021: 82)고 했다. 정확히 그거다. 우리가 던진 말의 의미는 우리가 아니라 상대가 결정한다. 그게 의사소통의 본질이다.
청자의 힘
라캉은 발견했다. 말의 의미를 결정하는 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라는 걸. 강연자가 진지하게 말해도 청중이 웃으면 농담이 된다. 반대로 농담을 해도 청중이 무표정하면 따분한 잡담이 된다. 강연자의 의도는 아무 상관이 없다. 청중이 웃으면 농담이고, 안 웃으면 잡담이다. 의미는 듣는 자의 반응에서 사후적으로 결정된다. 예외가 없다.
아이가 울 때를 생각해보자. 아이는 자기가 왜 우는지 모른다. 그냥 불편하다. 그런데 엄마가 먹을 것을 주면, 소급적으로 그 울음은 '배고픔'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만약 엄마가 안아주면 그 울음은 '외로움'이 된다. 울음 자체엔 의미가 없었다. 의미는 타자의 반응에 의해 생겨난 거다.
지인 한 명이 털어놨다. 아내에게 "당신 요즘 힘들어 보여"라고 말했다가 차갑게 돌아섰다고 한다. 그는 진심으로 걱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 말을 '네가 나한테 신경을 안 쓰니까 내가 이 모양이다'라는 비난으로 들었다. 남자가 항변했다. "난 분명 걱정했는데요!"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남자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아내가 어떻게 들었느냐가 전부다. 그게 말의 본질이다. 의미는 청중에 의해서, 듣는 자의 자리에서 결정된다.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 말이 왜곡됐다." 하지만 왜곡이 아니다. 그게 의사소통이다. 우리는 말을 던지지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할지는 상대가 결정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휘발유 없는 자동차처럼, 우리는 우리 말의 의미를 운전할 수 없다. 상대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요구와 욕망: 표면과 심층
라캉은 더 깊이 들어간다. 우리가 말하는 것과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다르다는 거다. 핑크는 이를 '요구'와 '욕망'으로 구분한다.
요구는 우리가 입 밖으로 내는 말이다. "괜찮아요." "바빠서요." "이해해요." 겉으로 드러난 말이다. 하지만 그 말 아래에는 욕망이 숨어 있다. '괜찮지 않은데 말하기 싫어요.' '당신이 날 좀 봐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듣기 싫어요.'
문제는 우리 자신도 그 욕망을 모른다는 거다. 아니, 정확히는 알고 싶지 않은 거다. 욕망을 마주하는 건 두렵다. 그래서 요구라는 안전한 가면을 쓴다.
회식 자리에서 만난 선배가 있었다. 40대 중반쯤 돼 보였다. 술잔이 돌 때마다 그는 손을 저었다. "나는 술 안 마셔." 다들 그러려니 했다. 요즘 술 안 마시는 사람 많잖아.
그런데 이차로 가는 길에 그가 툭 던진 말이 있었다. "사실 간 수치가 높아서 의사가 끊으래." 그제야 동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형, 괜찮아요? 많이 아파요?"
선배가 쓴 웃음을 지었다. "아니, 괜찮아. 그냥 조심하라는 거지 뭐."
하지만 선배 얼굴엔 안도가 번졌다. 누군가 자기 걱정을 해줘서. 그때 깨달았다. 선배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건 '나 지금 아프다' '나 좀 걱정해줬으면 좋겠다'였다는 걸.
요구: "술 안 마셔" (안전한 말)
욕망: "나 좀 걱정해줘" (위험한 진심)
선배 자신도 그 욕망을 몰랐다. 아니, 모른 척했다. "술 안 마셔"라고 말하는 순간까지도 자기가 위로받고 싶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방식이다.
핑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만약 분석가가 분석주체의 요구에 쉽게 응한다면, 분석주체는 자기 요구를 단순한 실제 욕구나 직접적인 욕구로 받아들일 것이다"(핑크, 2021: 81-82). 그게 함정이다.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뒤에 숨은 욕망은 영영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 진짜 욕망을 모른 채로 산다. 그게 바로 증상이다.
만약 동료들이 "아, 그래요? 그럼 형은 물 드세요" 하고 넘어갔다면? 선배의 요구는 들어줬지만, 욕망은 묻혔을 거다. '나 좀 걱정해줘'라는 외침은 영영 들리지 않았을 거다.
결여가 욕망을 만든다
그런데 더 역설적인 게 있다. 모든 요구를 들어주면 욕망이 죽는다는 거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모든 걸 해줬다. 원하는 거 다 사주고, 가고 싶은 데 다 데려가고, 듣고 싶은 말 다 해줬다. 완벽한 남자친구였다. 그런데 여자가 떠났다. "왜요?" 그가 물었다. 여자가 답했다. "당신이랑 있으면 숨이 막혀요. 뭘 더 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바로 그 지점이다. 모든 요구가 충족되면 욕망이 죽는다. 욕망이 죽으면 살아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작동하는 거다. 기계처럼.
욕망은 결여에서 피어난다. 뭔가 부족해야, 채워지지 않아야, 욕망이 생긴다. 모든 게 채워지면 욕망할 게 없다. 욕망할 게 없으면 살 이유가 없다. 그게 불안이다.
욕망을 찾는 3단계
그렇다면 어떻게 욕망을 찾나? 핑크가 제시하는 방법을 일상에 적용하면 이렇다.
1단계: 요구를 의심하라
누군가 "괜찮아"라고 말할 때, 일단 멈춰라. 정말 괜찮은 걸까? "바로 갈게"라고 말할 때도 멈춰라. 정말 바로 오는 걸까?
내 말도 마찬가지다. 내가 "괜찮아"라고 말할 때, 잠깐 멈춰서 물어보는 거다. '나 정말 괜찮나?' '왜 괜찮다고 말하는 거지?'
요구는 표면이다. 그 아래를 봐야 한다.
2단계: 한 번 더 물어라
"정말 괜찮아?" 이 질문이 욕망으로 가는 문이다.
선배 사례를 다시 보자. 만약 동료가 "형, 술 안 마신다고 했는데, 혹시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었다면? 선배는 처음엔 "아니, 그냥"이라고 답했을 거다. 하지만 한 번 더 물었다면? "진짜 괜찮아요? 뭔가 걱정되는데..."
그 순간, 요구의 가면이 벗겨진다. "사실은..."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욕망이 고개를 든다.
구체적으로 물으면, 진심이 드러난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왜 바쁜 거야?" "무슨 이해를 한다는 거야?"
3단계: 결여를 인정하라
라캉의 역설이다. 모든 요구를 들어주지 마라.
아이가 운다고 바로 먹을 것을 주면? 아이의 울음은 영원히 '배고픔'으로만 해석된다. 하지만 잠깐 기다리면? '외로움'일 수도, '불안'일 수도, '심심함'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회의 끝나면 바로 갈게"라고 문자를 보낸다. 아내가 "알았어"라고만 답하면? 남편의 요구는 들어줬지만, 아내의 욕망('나도 좀 봐줬으면')은 묻힌다.
하지만 아내가 "회의가 언제 끝나는데? 10시 넘으면 안 돼"라고 답한다면? 남편은 멈춰 서서 생각한다. '아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내가 집에 일찍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내가 외로운 게 문제구나.'
결여를 만드는 순간, 욕망이 드러난다.
일상의 적용
동네 카페에서 본 풍경이 있다. 젊은 부부가 앉아 있었다. 남자가 휴대폰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오늘도 야근이야."
여자가 답장을 보냈다. "괜찮아. 조심히 와."
남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여자의 표정은 달랐다. 눈물이 핑 돌았다. 커피를 마시는 손이 약간 떨렸다.
여자의 요구는 "괜찮아"였다. 하지만 욕망은 달랐다.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해?' '오늘은 좀 일찍 왔으면 좋겠어.' '우리 좀 같이 있자.' 남자는 요구만 받았다. 욕망은 못 봤다.
만약 남자가 한 번 더 물었다면? "정말 괜찮아? 나 요즘 너무 늦게 들어가는 것 같은데..." 여자는 처음엔 "응, 괜찮아"라고 답했을 거다. 하지만 남자가 계속 물었다면? "미안해. 당신 외로웠지?"
그 순간, 여자의 욕망이 터져나왔을 거다. "응... 조금. 우리 요즘 얼굴 보기 힘들잖아."
딱 이거다. 우리는 요구를 말하지만, 상대는 욕망을 들어야 한다. 아니,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감춘 욕망까지. 그래서 대화는 어렵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인정할 때,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핑크의 조언을 빌리면, 상대의 요구를 액면 그대로 받지 말라는 거다. "괜찮아"라고 할 때 "정말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거다. "바로 갈게"라고 할 때 "정말 바로 올 거야?"라고 확인하는 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내 말도 의심하는 거다. 내가 "괜찮아"라고 말할 때, 정말 괜찮은지 물어보는 거다. 내가 "이해해"라고 말할 때, 정말 이해하는지 되짚어보는 거다. 내 요구 뒤에 어떤 욕망이 숨어 있는지 찾아보는 거다.
그게 진짜 대화다. 요구와 욕망을 구분하는 거다. 표면과 심층을 오가는 거다. 말과 욕망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는 거다.
당신이 오늘 던진 그 말, 그게 정말 요구였을까, 아니면 욕망이었을까. 상대는 어떻게 들었을까. 한 번쯤 물어보는 건 어떨까. 그 질문이 시작이다.
참고문헌
브루스 핑크/ 맹정현(2021). 『라캉과 정신의학』.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