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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당신은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by 홍종민


한 남자가 호텔 짐꾼한테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별것 아니다. 그런데 차 안에서 이런 환상을 꿨다. "내가 부자 되면 저 호텔 사서 그 새끼 해고시켜버린다."

정신분석가 칼 쾨니히가 이 장면을 읽어냈다. 호텔은 아내다. 짐꾼은 장인이다(쾨니히, 2001: 31).


황당한가?


그럼 당신은 아직 모르는 거다. 당신의 무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호텔이 아내가 되는 순간


호텔은 뭔가? 들어가는 곳. 머무는 곳. 안식을 얻는 곳. 그리고 그 안엔 주인이 있다. 규칙을 정하는 사람이 있다.

아내는 뭔가? 남편이 돌아가는 곳. 머무는 곳. 안식을 얻는 곳. 그리고 그 집의 진짜 주인.

짐꾼은? 호텔 입구를 지키는 사람. 손님을 맞지만 동시에 심사하는 사람. "당신이 여기 들어올 자격이 있나?"

장인은? 딸의 집 문지기다. "이 남자가 내 딸 행복하게 할 자격 있나?" 평생 심사한다.

무의식은 이렇게 작동한다. 직접 말 안 한다. 바꾼다. 치환한다. 상징으로 만든다.

당신은 알아채지 못한다. 매일 그 안에서 살면서도.


경비원이 장인이 된 날


38세 직장인 남자가 있었다. 퇴근할 때마다 경비원한테 짜증이 났다. "왜 인사를 안 받지?" "왜 저렇게 무뚝뚝하지?" 아내한테 맨날 불평했다. "우리 아파트 경비, 진짜 불친절해."

그런데 들어가보니 다른 게 보였다.

장인이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명절에 만나도 사위한테 먼저 말 안 걸었다. 그는 늘 긴장했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못마땅한 건 아닐까?"

집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 사위를 바라보는 장인. 같은 위치였다.

그는 경비원한테 화냈지만, 사실은 장인한테 화가 나 있었다.

당신도 그렇다. 당신이 불편해하는 그 사람. 짜증나는 그 상황. 지금 여기 문제가 아니다. 과거 어딘가에서 해결 못한 갈등이 지금 이 순간 다른 얼굴로 나타난 거다.


우리는 늘 같은 사람을 만난다


35세 여자가 있었다. 연애할 때마다 같은 남자를 만났다. "착하다가 갑자기 차갑게 변하는" 남자들. 매번 상처받고 매번 다짐했다. "다음엔 다른 사람 만나야지."

다음에 만난 사람도 똑같았다.

왜?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다. 평소엔 다정하다가 기분 안 좋으면 가족 외면했다. 말 걸어도 대답 안 했다. 그녀는 평생 아버지 눈치 봤다. "오늘은 아빠 기분 좋으실까? 나한테 잘해주실까?"

그 패턴이 각인됐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남자들을 선택했다.

의식적으로? 아니다. 무의식이 알아서 했다.

왜? 그게 사랑이라고 배웠으니까. 사랑이란 눈치 보는 것. 기분 맞추는 것. 차갑게 변했을 때 불안해하는 것.

그게 전부였다.

쾨니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항상 과거의 관계를 재현한다. 우리는 내부의 대상과 맞는 사람을 찾고 있다"(쾨니히, 2001: 72).

당신 안엔 이미 특정한 관계 패턴이 각인돼 있다. 엄마와의 관계. 아빠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그 패턴은 무의식 속에 '내부 대상'으로 저장돼 있다.

그리고 당신은 평생 그 내부 대상과 비슷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왜?

익숙하니까. 편하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편하지만 익숙하니까.


당신이 상대를 바꾼다


더 무서운 건 이거다.

당신은 상대를 바꾼다. 당신의 무의식이 원하는 역할을 하도록 유도한다. 처음엔 다정했던 사람도 당신과 있다 보면 차갑게 변한다. 처음엔 존중하던 사람도 당신과 있다 보면 무시하기 시작한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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