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30대 여성이 들어오자마자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너무 불안해요. 가슴이 막 뛰고, 손에 땀이 나고..." 그녀가 말하는 동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 심장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목이 조여왔다. 5분도 안 돼서 나는 그녀만큼이나 불안해졌다.
초보 상담자였다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와, 내가 정말 공감을 잘하는구나.' 하지만 아니다. 나는 그녀의 불안에 감염된 것이다. 마치 독감처럼 그녀의 감정이 나에게 옮은 것이다. 이게 도움이 될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뛰어들었는데, 나도 같이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꼴이다.
확실하다. 당신이 함께 울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투사적 동일시의 위험
정신분석가 비온은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를 설명하면서 중요한 구분을 한다. 정상적 투사적 동일시와 병리적 투사적 동일시의 차이다. 정상적인 경우, 아기는 참을 수 없는 감정을 엄마에게 투사하고, 엄마는 그것을 소화해서 돌려준다. 하지만 병리적인 경우는 다르다.
정신분석가 워렌 스타인버그는 이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는 역전이 환상을 경험하면서 환자의 무의식을 읽어냈다. "어떤 여성과의 첫번째 분석 시간에 그 여성이 그녀의 폭력적인 남자 친구에 대해서 말할 때, 나는 갑자기 그녀의 남자 친구가 문 밖에 서있다가, 방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에게 총을 쏘는 놀라운 환상을 본 적이 있다"(스타인버그, 2020: 38).
이것이 투사적 동일시다. 환자의 무의식적 공포가 분석가에게 전달되어, 분석가가 그 공포를 환상으로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스타인버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 환상을 통해 환자의 억압된 분노와 살해 충동을 읽어냈다.
내가 그 여성의 불안에 감염된 것이 바로 이런 경우다. 나는 그녀의 불안을 '받았지만' '소화'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불안이 나를 삼켜버렸다. 이제 상담실에는 불안한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된 것이다.
감정 전염의 메커니즘
문제는 이 복사가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이미 감염되어 있다. 화난 사람과 있으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우울한 사람과 있으면 나도 우울해진다. 이것을 공감이라고 착각하면 큰일이다.
융은 이를 명확히 봤다. "그 어떤 종류의 정동 과정도 다른 사람들에게 즉시 비슷한 과정을 불러일으킨다"(스타인버그, 2020: 37에서 재인용). 치료 과정에서 분석가는 환자의 정동들에 영향 받으며, "그가 영향 받는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보다 더 잘 행동할 수 없다"(스타인버그, 2020: 37에서 재인용).
핵심은 '의식하는 것'이다. 감염되는 건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감염된 줄 모르면 끝이다.
불안이 불안을 낳는다
한 40대 남성이 있었다. 그는 늘 초조했다. 말을 빨리했고, 다리를 떨었고, 시계를 자주 봤다. 신기한 건 그와 상담할 때마다 나도 초조해진다는 것이었다. 평소엔 여유로운 내가 그와 있으면 시간을 재촉하게 됐다.
어느 날 깨달았다. 그의 초조함이 나에게 전염되고, 내 초조함이 다시 그에게 전염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이것이 감정 전염의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