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홍종민 Dec 3. 2025 brunch_membership's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이상한 질문이다. 내가 하는 말을 내가 모를 리 있나. "오늘 피곤해"라고 말했으면 피곤하다는 뜻이고, "배고파"라고 말했으면 배고프다는 뜻이다. 뭐가 어렵다는 건가.
하지만 잠깐. 당신이 어제 한 말 중에 "아,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싶은 게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말하고 나서 후회한 말. 그 자리에서 바로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라고 해명해야 했던 말. 분명 내 입에서 나온 말인데, 내가 하려던 말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말.
정신분석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당신이 '말하려고 했던 것'과 당신이 '실제로 말한 것'은 다르다. 그리고 정신분석이 주목하는 건 후자다. 브루스 핑크라는 정신분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정신분석에서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 '실제로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의도한 바란 그저 의식적으로 생각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핑크, 2021: 54).
무슨 말인가? 당신이 "나는 이런 말을 하려고 했어"라고 할 때, 그건 당신이 의식적으로 계획한 말이다. 당신이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맞는 말이다. 착한 사람, 합리적인 사람, 배려 깊은 사람. 그 이미지에 어울리는 말.
문제는, 당신 안에는 그 이미지에 맞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거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망, 숨기고 싶은 분노, 의식하지 못하는 두려움. 이런 것들은 당신의 '의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디로 가는가? 말실수로, 엉뚱한 단어 선택으로, 이상한 꿈의 장면으로 튀어나온다.
그래서 핑크는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이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당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이미지, 즉 자기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 어떤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다(핑크, 2021: 54). 다시 말해, 당신의 '의도'는 당신의 자기-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무의식은 그 이미지에 별 관심이 없다. 무의식은 당신이 공들여 쌓아올린 자기-이미지의 틈새로 불쑥 튀어나온다.
곰이 참치가 되는 꿈
일본의 한 정신분석가가 여성 환자의 꿈을 분석한 사례가 있다. 꿈 내용은 이렇다.
바다 같은 곳에 커다란 검은 곰이 있었다. 무서워서 칼을 휘둘렀더니 곰의 눈가에 칼이 꽂혔다. 그러자 곰이 물에 빠지면서 참치로 변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찹쌀떡을 구웠는데, 너무 타서 먹을 수 없었다(가즈야, 2025: 107).
이상한 꿈이다. 곰이 참치로 변하다니. 그리고 그게 타버린 떡과 무슨 상관인가. 보통은 이런 꿈을 꾸면 "곰은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칼은 뭘 의미하는 걸까?"라고 묻는다. 꿈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의미가 아니라 '소리'에 주목한다.
일본어로 곰은 '쿠마(クマ)'다. 이 글자를 뒤집으면 '마쿠(マク)'가 된다. 여기에 검정을 뜻하는 '쿠로(クロ)'를 합치면? '마구로(マグロ)'. 참치다. 그리고 참치는 '진한 검정'으로 통하는데, 이것이 '매우 그을렸다'는 떡의 속성으로 남아있다(가즈야, 2025: 107-108).
이게 말이 되는가? 논리적으로는 전혀 안 된다. 하지만 무의식은 논리적이지 않다. 무의식은 소리로 작동한다. 비슷한 발음, 글자의 재배열, 말장난 같은 것들. 무의식은 이런 언어적 연결고리를 타고 움직인다.
이걸 이해하면, 꿈이 달리 보인다. 꿈에서 곰이 참치로 변한 건 '의미'의 연결이 아니라 '소리'의 연결이다. 쿠마 → 마쿠 → 마구로. 그리고 마구로(참치)의 '검정' 이미지가 '타버린 떡'으로 이어진다. 무의식은 의미가 아니라 소리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곰이나 참치가 '무엇을 상징하는가'가 아니다. 중요한 건 무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다. 당신이 어떤 단어를 선택했을 때, 그 선택에는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종종 의미가 아니라 소리에 있다.
모서리가 무서운 아이
더 놀라운 사례가 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돌토(Dolto)가 다룬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 질(Gilles)의 이야기다.
질에게는 두 가지 증상이 있었다. 하나는 오줌을 지리는 것. 또 하나는 벽이나 가구의 모서리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두려움. 얼핏 보면 이 두 증상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오줌과 모서리가 무슨 상관인가?
질의 배경은 이렇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서 사고를 당했고, 수영을 배우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도 있었다. 두 번 다 아버지와 함께였다. 이후 질은 어머니에게 늘 달라붙어 있게 된다(가즈야, 2025: 108).
그런데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세 살 때, 큰외삼촌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외삼촌은 런던에서 드골 장군에 합류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위험한 결정이었다. 어머니는 불안해했고, 아들이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가즈야, 2025: 108).
여기서 마법이 일어난다. 프랑스어로 영국은 'Angleterre(앙글테르)'다. 이 단어를 쪼개면? 'angle(모서리)'과 'taire(말하지 않다)'가 된다.
돌토의 분석은 이렇다. 어머니가 '말하지 말라(taire)'고 원했던 '영국(Angleterre)'이라는 단어가, 질에게는 '모서리(angle)'라는 형태로 되돌아온 것이다. 억압된 것이 증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가즈야, 2025: 109).
다시 정리하면, Angleterre(잉글랜드) = angle(모서리) + taire(말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불안, 비밀, 금지된 말이 아이에게 '모서리에 대한 공포'라는 형태로 새겨진 것이다(가즈야, 2025: 109).
이게 시니피앙의 논리다. 시니피앙이란 뭔가? 쉽게 말하면, 언어의 '소리와 글자' 그 자체다. 의미가 아니라 소리. 질은 '영국'이라는 단어의 의미 때문에 고통받은 게 아니다. 그 단어의 소리, 그 단어를 둘러싼 감정적 분위기, 어머니의 불안이 '모서리'라는 소리로 그의 몸에 새겨진 것이다.
"날아다니다"가 "어머니를 끊다"가 되는 순간
일본의 정신분석가 아카사카 가즈야가 직접 다룬 사례도 있다.
남성 환자 A씨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족을 두 명 잃었고, 남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담 초기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묶여 있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가즈야, 2025: 110).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건지, 아닌 건지 애매한 말이다.
몇 차례 상담 후, A씨는 꿈 이야기를 하다가 말실수를 했다. 꿈에 나온 여성에 대해 "해외로 날아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하려다가 "해외가 꺼림직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일본어로 '날아다니다'는 '하바타쿠(羽ばたく)'다. '꺼림직하다'는 '하바타츠(ハバタツ)'다. 발음이 비슷하다. 그런데 치료자의 귀에는 이 말실수가 또 다르게 들렸다. '하하타츠(母断つ)'. 어머니를 끊다(가즈야, 2025: 110).
이게 뭔가? A씨는 의식적으로는 어머니에 대한 의무감을 말하고 있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있어야 하나..." 효도하는 아들의 이미지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무의식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끊고 싶다." 어머니의 욕망(함께 살고 싶다)과는 다른, 자신만의 욕망.
그리고 실제로 A씨는 이후 상담에서 어머니와의 거리를 두게 되면서 변화해갔다. 말실수가 예언이 된 것이다(가즈야, 2025: 110-111).
따뜻함을 찾아서
또 다른 사례. 방임적인 어머니를 둔 남성 B씨는 과식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에게 대접하듯 나를 위해 만들어 주면 절대 과식은 안 합니다. 엄마가 밥을 안 해주고 사온 걸 먹은 후부터인가. 아무튼 내게는 너무 차가웠어요. 어머니는 불 조절을 정말 못하셔서 전자레인지에 태우는 것도 그렇고요. 따뜻한 밥상이란 아예 없고... 뜨거운 게 좋아서 그걸 계속 먹기도 하고"(가즈야, 2025: 113).
치료자는 이 말에서 무언가를 잡았다. "여러 가지 형태로 따뜻함을 찾고 계시네요." B씨는 즉각 반응했다. "그렇습니다. 그거. 정말 그래요. 따뜻함이 있으면..."(가즈야, 2025: 113).
여기서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이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온도로서의 따뜻함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
B씨의 어머니는 그를 대할 때는 '차갑고', 내놓는 음식은 '너무 뜨거워서' 타버린 것이었다. '따뜻한' 식사, '따뜻한' 관계 모두가 결여되어 있었다. B씨는 이 '따뜻함'을 찾아 뜨거운 음식을 배에 채우는 과식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가즈야, 2025: 113).
치료자가 '따뜻함'이라는 말을 해석에 사용한 후, B씨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온도로서의 따뜻함이 사람 사이의 따뜻함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과식은 줄어들었고, B씨는 사람의 따뜻함을 찾아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시작했다(가즈야, 2025: 114).
하나의 단어 안에 담긴 여러 의미. 그 의미들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지면, 증상이 변한다. 이것이 시니피앙 해석의 힘이다.
왜 우리는 자신의 말을 모르는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가? 왜 무의식은 말실수나 꿈을 통해 '몰래' 튀어나와야 하는가?
핑크는 이것을 '에고'의 문제로 설명한다. 에고란 뭔가? 쉽게 말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다. 좋은 사람, 합리적인 사람, 성실한 사람. 이런 자기-이미지.
문제는 이 에고가 자기 이미지에 맞지 않는 것들을 전부 배척한다는 것이다. 핑크는 이렇게 말한다. 에고는 우리가 이질적이라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즉 실수 행위를 통해 새어나오는 모든 사고나 욕망을 배제해 버리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핑크, 2021: 55).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스스로를 '효도하는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셨으면..."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당신의 에고는 즉시 이 생각을 배척한다. "아니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건 내 생각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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