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프로이트의 발견: 기억하지 못하면 반복한다
이상한 환자들
프로이트는 이상한 환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면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부모와 어떤 관계였는지 물어보면 "기억이 안 나요"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부모의 권위에 반항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런 식으로 의사를 대한다. 의사에게 반항한다. 의사를 불신한다. 의사의 말을 무시한다.
유아기에 뭔가 시작하면 끝내지 못하고 막혔던 경험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 대신 "저는 항상 실패해요"라고 한탄한다.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하는 게 제 운명이에요"라고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깨달았다. 이게 바로 그들이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말로 기억하지 못하면, 행동으로 기억한다. 의식으로 떠올리지 못하면, 몸으로 반복한다. 이게 반복강박이다.
쾌락원칙의 한계
여기서 프로이트는 당혹했다.
그때까지 프로이트는 인간을 "쾌락원칙"으로 설명했다. 사람은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를 피한다. 배고프면 먹는다. 아프면 피한다. 즐거우면 다가간다. 단순하다.
그런데 반복강박은 이걸로 설명이 안 됐다.
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반복하는가? 왜 실패한 관계를 되풀이하는가? 왜 같은 유형의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상처받는가?
한 번 상처받으면 피하는 게 정상 아닌가? 불쾌하면 멀리하는 게 본능 아닌가? 그런데 왜 같은 고통을 찾아가는가?
프로이트는 여기서 쾌락원칙 "너머"를 보았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힘이 있다는 걸 발견한 거다.
그는 이걸 "죽음충동"이라고 불렀다. 유기체가 무기물 상태로 돌아가려는 근본적 경향. 생명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힘. 반복강박은 이 죽음충동의 표현이라고 봤다.
솔직히 말하면, "죽음충동"이라는 개념은 지금도 논쟁적이다.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발견한 현상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것을 반복한다. 이건 팩트다.
전이: 과거가 현재를 점령하다
프로이트가 더 흥미로웠던 건 "전이"라는 현상이었다.
환자들이 프로이트에게 이상한 감정을 쏟아냈다. 어떤 환자는 프로이트를 열렬히 사랑했다. 어떤 환자는 극도로 두려워했다. 어떤 환자는 격렬하게 미워했다.
처음에 프로이트는 당황했다. 나는 그냥 의사인데, 왜 이 사람들은 나한테 이렇게 강렬한 감정을 갖는 거지?
그런데 관찰해보니 이상했다. 환자들이 프로이트를 보는 게 아니었다. 과거의 누군가를 보고 있었다. 대부분 부모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지금 의사한테 그대로 옮겨놓는 거다. 마치 오래된 영화를 지금 스크린에 틀어놓듯.
프로이트는 이걸 "전이"라고 불렀다. 옮긴다는 뜻이다. 과거의 감정을 현재의 사람에게 통째로 옮기는 것.
처음에는 치료의 방해물로 여겼다. 환자가 의사를 아버지로 착각하면 객관적인 치료가 안 되지 않나? 그런데 곧 깨달았다. 이게 바로 치료의 결정적 무기라는 걸.
왜? 전이가 일어나면, 환자의 과거 패턴이 눈앞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환자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떻게 관계 맺었는지, 지금 의사와의 관계에서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이 자체가 되풀이하기의 한 단편일 뿐이며, 되풀이하기가 잊혀진 과거를 의사뿐 아니라 현재 상황의 다른 모든 영역에도 전이하는 것임을 곧 알아차리게 된다."
전이는 의사한테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다. 연인에게, 상사에게, 친구에게.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에 옮겨놓는다.
실제 사례: 탁자와 하녀
프로이트가 만난 한 부인의 사례다.
서른 살 정도 되는 여자였다. 심한 강박증에 시달렸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차례나 이상한 행동을 반복했다.
자기 방에서 나와 옆방으로 달려간다. 방 한가운데 놓인 탁자 옆에 기대선다. 초인종을 눌러 하녀를 부른다. 사소한 심부름을 시키거나, 아니면 아무 지시도 없이 하녀를 돌려보낸다.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이걸 하루에 여러 번 반복했다.
프로이트가 물었다. "왜 그런 행동을 하세요?" 그녀는 답했다. "모르겠어요."
"도대체 그 행동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모르겠어요."
분석이 2년쯤 진행됐을 때, 그녀가 갑자기 기억해냈다. 10년 전 신혼 첫날밤의 일을.
남편이 성불구였다. 첫날밤, 남편은 수도 없이 자기 방에서 나와 그녀의 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성관계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 아침이 되자 남편은 화가 나서 말했다. "하녀가 침대를 정리할 때 창피당할 순 없어." 남편은 붉은 잉크병을 집어 들었다. 침대보 위에 잉크를 부었다. 피 묻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런데 남편은 그 잉크를 엉뚱한 곳에 부어버렸다. 진짜 피가 묻었을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프로이트는 이제 이해했다. 그녀의 강박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남편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넘나드는 행위를 흉내 내면서 남편의 역할을 대신했다. 침대와 침대보를 탁자와 탁자덮개로 대체했다.
그런데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그녀는 과거를 "바로잡고" 있었다.
하녀를 불러서 탁자덮개의 얼룩을 보게 했다. "제대로 된 위치에" 얼룩이 있는 것처럼. 남편이 성불구가 아니었던 것처럼. 첫날밤이 성공적이었던 것처럼.
강박 행위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남편은 하녀 앞에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그는 성불구가 아니에요."
10년 동안, 그녀는 이 소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행동으로 반복하고 있었던 거다.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른 채.
반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게 있다.
반복강박은 단순히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게 아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르게 해결하려는" 무의식적 시도다.
그 부인은 신혼 첫날밤의 실패를 "바로잡으려고" 했다. 남편이 성공한 것처럼 만들려고 했다. 현실에서는 바꿀 수 없으니, 상징적인 행동으로 바꾸려고 했다.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녀가 탁자 옆에 서서 하녀를 부르는 행동을 아무리 반복해도, 10년 전 신혼 첫날밤은 바뀌지 않는다. 남편의 성불구가 치료되지 않는다. 과거는 그대로다.
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왜? 무의식이 계속 시도하니까. "이번엔 다를 거야. 이번엔 성공할 거야." 무의식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게 반복강박의 비극이다. 해결하려고 반복하지만, 반복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든다.
저항과 반복의 관계
프로이트는 중요한 공식을 발견했다.
저항이 클수록, 기억하기가 더 많이 반복하기로 대체된다.
무슨 뜻이냐면, 과거의 어떤 경험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억하기 힘들면, 그것을 말로 기억하는 대신 행동으로 반복한다는 거다.
그 부인은 신혼 첫날밤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창피하고,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기억"하는 대신 "행동"했다. 의식에서는 잊었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환자는 과거라는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내서 치료의 진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과거를 기억하면 아프다. 그래서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반복한다. 반복은 기억의 대체물이다. 기억하지 않기 위해 반복하는 거다.
역설적이다. 잊으려고 반복하는데, 반복함으로써 과거에 더 묶인다.
훈습: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중요한 통찰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내 문제를 알면 해결된다"고.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면 멈출 수 있다"고.
프로이트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다.
"저항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는 곧바로 저항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
분석가가 환자에게 "당신은 이런 저런 저항이 있어요"라고 말해준다. 환자가 "아, 그렇군요"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바뀐다. 저항은 오히려 더 강력해진다.
왜? 아는 것과 변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훈습(durcharbeiten)"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영어로는 "working through". 반복해서 작업하는 것.
"우리는 환자가 저항을 무릅쓰고 분석의 기본 규칙을 따라 작업을 계속함으로써 그에게 이제 알려진 저항에 몰두할, 그것을 훈습할, 그것을 극복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한 번 깨닫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같은 패턴이 다시 나타날 때마다 직면해야 한다. 또 나타나면 또 직면해야 한다. 반복해서 직면하고, 반복해서 작업해야 한다.
이 훈습하기가 "실제 치료에서 피분석자에게는 까다로운 과업일 수 있으며 의사에게는 인내심에 대한 시험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작업 중 환자를 가장 크게 변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부분이며 분석 치료를 암시를 통한 모든 영향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당신 문제는 이거예요"라고 말해주는 건 암시에 가깝다. 진짜 변화는 훈습을 통해서만 온다. 반복해서 경험하고, 반복해서 직면하고, 반복해서 다르게 해보는 것.
강박 신경증: 반복의 극단
프로이트는 강박 신경증에서 반복강박의 극단적 형태를 보았다.
"강박 신경증은 환자를 자신이 원래는 흥미를 느끼지 않고 있는 생각들에 몰두하는 행위에서 드러납니다. 또 환자 자신들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충동을 스스로의 내부에서 감지하거나, 스스로에게 아무런 만족감을 주지 않는데도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강박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증상이 비합리적이라는 걸 안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거 알아요"라고 말한다. "바보 같은 짓인 거 알아요"라고 한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다.
"환자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자는 스스로의 상태를 완벽하게 알고 있으며, 자신의 강박 증상에 대한 여러분의 판단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또 심지어는 자진해서 여러분과 견해를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는 안다. 자기 행동이 이상하다는 걸. 그런데 멈출 수 없다. 왜? 그 행동 뒤에 무의식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정신과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
"환자는 강박 관념을 지연시킬 수는 있으나 제거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지연시킬 수는 있다. 잠깐 미룰 수는 있다. 다른 행동으로 대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돌아온다.
이게 반복강박의 힘이다. 의지로 이길 수 없다. 이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안 하면 되지"가 안 된다.
치료의 원리: 전이를 활용하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프로이트의 답은 이렇다. 반복을 막으려 하지 마라. 대신 활용하라.
"우리는 그것에게 전이라는 운동장을 열어 준다. 그것은 그곳에서 거의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을 펼치는 것이 허용되며 피분석자의 정신생활에 숨겨져 있었으며 병인이 된 욕동과 연관되었던 것을 모두 보여 줄 것이 요구된다."
전이를 막지 않는다. 오히려 장려한다. 환자가 의사를 아버지로 보게 내버려둔다. 환자가 의사에게 과거의 감정을 쏟아내게 한다.
왜? 그래야 패턴이 보이니까. 환자가 과거에 어떻게 관계 맺었는지, 지금 눈앞에서 재현되니까.
"전이는 병과 삶 사이의 중간 영역을 형성하며 그것을 통해서 병에서 삶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진다."
전이는 인위적인 병이다.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패턴이지만, 통제된 환경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개입할 수 있다. 관찰할 수 있다. 작업할 수 있다.
"만약 환자가 행위를 통해서 방출하려고 한 어떤 것을 기억 작업으로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을 치료의 승리로 축하할 수 있을 것이다."
반복하려던 것을 기억으로 전환시키면, 그게 치료다. 행동으로 반복하는 대신, 말로 기억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 더 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어진다.
1장을 마치며
프로이트가 발견한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기억하지 못하면 반복한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면, 무의식이 그것을 행동으로 반복한다.
둘째, 반복은 해결 시도다. 단순히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르게 해결하려는" 무의식적 시도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셋째, 저항이 클수록 반복도 강해진다. 기억하기 너무 고통스러운 것일수록, 행동으로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자신의 패턴을 이해한다고 변화가 자동으로 오지 않는다. 훈습이 필요하다. 반복해서 직면하고, 반복해서 작업해야 한다.
다섯째, 전이를 활용하라. 반복을 막으려 하지 말고, 통제된 환경(치료 관계)에서 재현되게 해서 작업하라.
이게 프로이트의 반복강박 이론의 핵심이다.
다음 장에서는 라캉이 이것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살펴보겠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통찰을 가져가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반복이 "같은 것의 회귀"가 아니라 "놓친 것의 회귀"라는 관점.
1장 참고문헌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덕하 역(2021). 『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 b.
지그문트 프로이트/ 임홍빈 외 역(2022). 『정신분석 강의』.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