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과거가 현재를 결정한다고.
틀렸다. 현재가 과거를 결정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과거의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현재가 과거를 결정한다는 건가?
프로이트는 이것을 '사후결정론'이라고 불렀다. 하나의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는 것은 그 사건이 일어난 순간이 아니다. 나중에, 다른 사건과 만나면서, 소급적으로 트라우마가 된다.
이게 트라우마의 진짜 작동 방식이다. 예외가 없다.
한 30대 여성이 있었다. 남자를 못 믿는다고 했다. 연애를 해도 항상 불안했다.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이야기만 해도 질투가 났다. 결국 헤어졌다. 몇 번이고 반복됐다.
"저는 왜 이럴까요? 남자를 믿지 못해요."
나는 물었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모르겠어요. 원래 그랬던 것 같아요."
"원래요?"
"네. 기억나는 한 계속 그랬어요."
나는 다시 물었다. "혹시...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요?"
그녀가 잠시 멈칫했다. "아버지요? 왜 갑자기 아버지를..."
"그냥 궁금해서요."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요."
"초등학교 때."
"네. 엄마가 우시는 걸 봤어요. 그때는 왜 우시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알았죠."
"나중에 알았군요. 언제요?"
"중학교 때요.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고."
바로 이거다. 두 개의 장면이 있다.
장면 1: 초등학교 때 엄마가 우는 것을 봤다. 그때는 의미를 몰랐다. 그냥 엄마가 슬픈가 보다 했다.
장면 2: 중학교 때 아버지의 바람을 알게 됐다. 그 순간, 장면 1의 의미가 바뀌었다. "아, 그때 엄마가 운 건 아빠 때문이었구나." 과거의 기억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녀에게 "남자"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맹정현은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의 사건이 사후적으로 나중에 그 의미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원래 무의미한 사건이었는데 나중에 성적인 의미를 깨닫게 되어 이전의 사건이 소급적으로 트라우마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다"(맹정현, 2015: 42).
소급적으로 트라우마가 된다. 과거의 사건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의미가 변한다. 나중에, 다른 사건과 만나면서.
그 30대 여성에게 "엄마가 우는 장면"은 처음에는 그냥 슬픈 장면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을 알게 된 순간, 그 장면은 "배신의 장면"이 됐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믿음의 출발점이 됐다.
맹정현은 이어서 말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두 개의 사건이 서로 연상 관계를 맺으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의식의 범위를 벗어난 곳에서 두 개의 장면이 연상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맹정현, 2015: 43-44).
의식 밖에서 연상이 일어난다. 그녀는 의식적으로는 "나는 아버지 때문에 남자를 못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의식에서는 두 장면이 연결되어 있었다. 엄마의 눈물과 아버지의 배신. 그 연결이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믿음을 만들었다.
프로이트의 엠마 사례를 보자. 이게 사후결정론의 전형적인 예다.
맹정현은 이렇게 설명한다. "엠마는 상점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는 여성이다. 상점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불안한 그녀는 자신의 그러한 증상과 관련해 열두 살 때 상점에 들어갔다가 점원에게서 성적인 조롱을 당한 것을 기억해낸다"(맹정현, 2015: 43).
열두 살 때의 기억. 점원이 옷차림을 비웃었다. 그게 증상의 원인일까? 프로이트는 아니라고 봤다. 그것만으로는 "상점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는" 증상을 설명할 수 없다.
맹정현은 이어서 말한다. "그다음 세션에서 엠마는 보다 훨씬 오래된 장면을 기억해 낸다. 어렸을 때 사탕을 사기 위해 상점에 들어갔는데 그때 상점 주인이 그녀의 옷 속에 손을 넣어서 성기를 만졌다는 것이다"(맹정현, 2015: 44).
더 오래된 장면. 어린 시절의 성추행. 하지만 그때 엠마는 그 의미를 몰랐다. 성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이상한 일이 있었구나, 정도였다.
맹정현은 핵심을 짚는다. "장면 1을 경험할 때에는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추행을 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정동과 연합되지 않았다. 그것이 성적인 정동과 연합되어 트라우마적인 사건이 된 것은 그녀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장면 2를 경험했을 때다"(맹정현, 2015: 44).
장면 2가 장면 1의 의미를 결정한다. 열두 살 때 점원의 조롱이, 어린 시절 성추행의 의미를 '활성화'시킨 것이다. 두 사건이 무의식적으로 연결됐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됐다.
이게 사후결정론이다. 과거의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는 것은 그 순간이 아니다. 나중에, 다른 사건과 만나면서, 소급적으로 트라우마가 된다.
한 40대 남성이 있었다. 발표를 못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만 하면 목소리가 떨렸다. 손에 땀이 났다. 머리가 하얘졌다. 승진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대학교 때부터요. 발표 수업에서 완전히 망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망했어요?"
"발표하다가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교수님이 앉으라고 하셨어요. 애들이 웃었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창피했죠. 죽고 싶었어요."
나는 물었다. "그 전에는요? 발표가 괜찮았어요?"
"음... 고등학교 때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요?"
그가 잠시 생각했다. "초등학교요? 글쎄요... 아, 하나 기억나는 게 있어요."
"뭔데요?"
"4학년 때요. 선생님이 저한테 책을 읽으라고 하셨어요. 근데 제가 더듬거렸나 봐요. 선생님이 '너 책도 못 읽냐'고 하셨어요. 애들이 웃었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기억이 잘... 그냥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바로 이거다. 두 개의 장면.
장면 1: 초등학교 4학년, 책 읽다가 더듬거림. 선생님의 핀잔. 애들의 웃음. 그때는 그냥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 정도였다.
장면 2: 대학교, 발표하다가 머리가 하얘짐. 교수님의 지적. 애들의 웃음. 이 순간, 장면 1이 활성화됐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면 창피를 당한다"는 믿음이 굳어졌다.
장면 2가 장면 1을 트라우마로 만든 것이다. 초등학교 때의 사건은 그 자체로는 트라우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교 때의 사건과 연결되면서, 소급적으로 트라우마가 됐다.
맹정현은 이렇게 정리한다. "프로이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는 것은 오로지 사후작용을 통해서라고 공식화하게 된다. 이는 우리의 삶이 우리가 의식하는 방식, 우리의 의식이 조명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을 초과하는 연상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전제한다"(맹정현, 2015: 45).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는 것은 사후작용을 통해서다. 과거의 사건 자체가 트라우마인 것이 아니다. 나중에, 다른 사건과 연결되면서, 트라우마가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의식을 초과한다. 무의식에서 일어난다. 그 40대 남성은 의식적으로는 "대학교 때 발표 망한 게 트라우마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의식에서는 초등학교 때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연결을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맹정현은 이어서 말한다. "하나의 사건은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맹정현, 2015: 45).
다른 시간과의 관계. 과거의 사건은 현재의 사건과 만나면서 의미가 바뀐다. 현재의 사건은 과거의 사건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래서 "현재가 과거를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50대 여성이 있었다. 며느리와 갈등이 심했다. 며느리가 뭘 해도 마음에 안 들었다.
"며느리가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세요?"
"다 마음에 안 들어요. 살림을 못해요. 아들한테 잘 안 해요. 건방져요."
"건방지다는 게 어떤 거예요?"
"제 말을 안 들어요. 제가 뭘 말해도 자기 맘대로 해요."
"말을 안 듣는다..."
"네. 어떻게 시어머니 말을 안 들을 수가 있어요?"
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어머님은 시어머니와 어떠셨어요?"
그녀가 잠시 멈칫했다. "저요? 저는... 시어머니 말씀 다 들었죠."
"다 들으셨어요?"
"네. 힘들어도 참았어요. 그게 며느리 도리니까."
"그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그녀가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억울했죠. 화가 났죠. 근데 참았어요."
바로 이거다. 또 두 개의 장면이 있다.
장면 1: 젊은 시절, 시어머니에게 순종. 억울함. 분노. 하지만 참았다. 그 감정은 억압됐다.
장면 2: 현재, 며느리의 "건방짐". 이 순간, 장면 1이 활성화됐다. 억압됐던 분노가 터져나왔다. "나는 참았는데 왜 너는 안 참아?"
며느리를 향한 분노는 사실 과거의 분노였다. 시어머니에게 느꼈지만 표현하지 못한 분노. 그 분노가 며느리에게 투사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그녀가 시어머니에게 느낀 억울함은 그 당시에는 그냥 "참아야 할 것"이었다. 트라우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며느리와의 갈등을 겪으면서, 그 기억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 "나만 참았다"는 억울함이 폭발했다.
현재의 사건(며느리의 건방짐)이 과거의 사건(시어머니에게의 순종)을 트라우마로 만든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상담에서 과거를 다룰 때, 많은 사람들이 "그때 뭐가 있었나요?"라고 묻는다. 과거의 사건을 찾으려고 한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기억이 언제 트라우마가 됐는가"다.
맹정현의 말을 다시 보자. "애초의 사건(장면 1)도 무의미한 것이고, 두 번째 사건(장면 2)도 그 자체로만 보면 그렇게 불쾌한 일은 아니라고 해도,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 장면 2가 장면 1을 성적인 사건으로 결정하면서 장면 1이 정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맹정현, 2015: 42-43).
두 사건 모두 그 자체로는 별것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둘이 만나면서 트라우마가 된다.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두 가지를 봐야 한다.
첫째, 과거의 장면. "그때 무슨 일이 있었어요?"
둘째, 연결의 순간. "그 기억이 언제 다시 떠올랐어요?" "언제부터 그게 문제가 됐어요?"
두 번째 질문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연결의 순간을 찾으면, 트라우마의 구조가 보인다.
한 20대 여성이 있었다. 친밀한 관계가 두렵다고 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불안했다. 그래서 항상 거리를 뒀다. 연애도 못 했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고등학교 때부터요. 친한 친구가 갑자기 저를 배신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요?"
"제 비밀을 다른 애들한테 다 말했어요. 그 뒤로 학교 다니기 힘들었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배신당한 느낌이었죠. 사람을 못 믿게 됐어요."
나는 물었다. "그 전에는요? 사람들과 관계가 어땠어요?"
"음... 그 전에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요?"
그녀가 생각했다. "초등학교요? 글쎄요... 아, 하나 생각나는 게 있어요."
"뭔데요?"
"엄마가 집을 나가신 적이 있어요. 제가 5학년 때요. 일주일 정도. 아빠랑 싸우시고 나가셨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무서웠어요. 엄마가 안 돌아오실 것 같았어요."
"그런데 돌아오셨군요."
"네. 일주일 만에요. 근데... 그 일주일이 너무 길었어요."
바로 이거다. 두 개의 장면.
장면 1: 초등학교 5학년, 엄마의 가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하지만 엄마가 돌아왔다. 그래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장면 2: 고등학교, 친구의 배신. 이 순간, 장면 1이 활성화됐다. "가까운 사람은 나를 버린다"는 믿음이 굳어졌다.
친구의 배신 자체는 충격적인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친밀한 관계가 두렵다"는 결론에 이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린 시절 엄마의 가출과 연결되면서, 그 경험은 "가까운 사람은 나를 버린다"는 핵심 믿음을 확정짓는 사건이 됐다.
장면 2가 장면 1을 트라우마로 만든 것이다.
상담에서 이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첫째, 현재의 증상에서 출발한다. "지금 뭐가 힘드세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둘째, 연결의 순간을 찾는다. "그 전에는 어땠어요?"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셋째, 두 장면을 연결한다. "혹시 그때 일이 지금이랑 연결되는 것 같으세요?"
넷째, 의미를 재구성한다. 과거의 사건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의미는 바꿀 수 있다.
그 30대 여성에게 나는 말했다. "어머니가 우셨던 건 아버지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남자친구를 못 믿는 것도 그 기억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그럼 저는 평생 남자를 못 믿는 건가요?"
"아니요.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모든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에요. 아버지와 남자친구는 다른 사람이에요."
그녀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맞아요. 다른 사람이죠. 근데 자꾸 겹쳐 보여요."
"겹쳐 보이는 게 당연해요. 오랫동안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 연결을 알았잖아요. 알면 다르게 볼 수 있어요."
과거의 사건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그 사건에 부여된 의미는 바꿀 수 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모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은 바꿀 수 있다.
그게 상담이 하는 일이다. 과거의 사건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정리하자.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현재가 과거를 결정한다. 이것이 사후결정론이다.
과거의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는 것은 그 순간이 아니다. 나중에, 다른 사건과 만나면서, 소급적으로 트라우마가 된다.
두 개의 장면이 만날 때 트라우마가 만들어진다. 장면 1은 원래 의미 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장면 2와 연결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상담에서는 이 연결을 찾아야 한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어요?"도 중요하지만, "언제부터 그게 문제가 됐어요?"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연결을 알면,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의 의미는 바꿀 수 있다. 그게 치유의 시작이다.
참고문헌
맹정현(2015). 『트라우마 이후의 삶』. 책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