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 2탄

by 홍종민

2장. 라캉의 재해석: 반복은 "놓친 것"의 회귀다


프로이트를 넘어서

프로이트는 반복강박을 발견했다. 하지만 설명에는 한계가 있었다.

프로이트는 반복강박을 "죽음충동"으로 설명했다. 유기체가 무기물 상태로 돌아가려는 근본적 경향. 솔직히 말해서, 이 설명은 좀 신비롭다. 철학적이다. 임상에서 써먹기 어렵다.

라캉은 다르게 접근했다.

라캉은 프랑스의 정신분석가다. 프로이트의 제자라고 할 수 있지만, 프로이트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프로이트를 완전히 새롭게 읽었다.

라캉의 반복강박 이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우리가 반복하는 건 "같은 것"이 아니라 "놓친 것"이다.

무슨 뜻일까?


"놓친 것"의 의미

프로이트에게 반복은 "같은 것의 회귀"였다. 과거의 경험이 그대로 돌아온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가 지금 상사와의 관계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라캉에게 반복은 "차이를 통한 회귀"다. 돌아오는 건 맞는데, 똑같이 돌아오는 게 아니다.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더 중요한 건, 돌아오는 것의 정체다.

라캉에 따르면, 반복되는 건 "제대로 경험되지 못한 것"이다. 처음에 상징화되지 못한 것. 말로 표현되지 못한 것. 의식에 등록되지 못한 것.

예를 들어보자.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갑자기 떠났다고 치자. 아이는 이 경험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떠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기 잘못인지 아닌지. 그냥 혼란스럽다. 말로 정리할 수 없다. 그래서 그 경험은 "제대로 등록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등록되지 않은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리고 계속 돌아온다.

20대에 연인이 갑자기 떠난다. 30대에 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끊는다. 40대에 사업 파트너가 갑자기 배신한다.

내용은 다 다르다. 연인, 친구, 사업 파트너. 하지만 구조는 같다. "갑자기 떠남." "설명 없는 이별." "이해할 수 없는 상실."

라캉의 관점에서, 이 사람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떠남을 "다시 경험하는" 게 아니다. 그때 "놓친 것"을 "잡으려고" 계속 시도하는 거다.

놓친 게 뭐냐? 이해다. 설명이다. 의미다. "왜?"에 대한 답이다.

아이는 아버지가 왜 떠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질문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이 계속 만들어진다. 무의식이 "이번엔 이해할 수 있을까?" "이번엔 답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계속 시도하는 거다.


기표의 연쇄: 다른 옷을 입고 돌아오는 것

라캉은 "기표"라는 개념을 중요시했다.

기표란 뭐냐? 쉽게 말하면 "단어" 또는 "상징"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적 도구.

라캉에 따르면,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무의식에도 "핵심 단어"들이 있다. 그리고 이 핵심 단어들이 계속 반복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무의식에 "버림받음"이라는 핵심 기표가 있다고 치자.

이 기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20대: "연인에게 버림받았다"


30대: "회사에서 밀려났다" (조직에게 버림받음)


40대: "자식이 멀리 떠났다" (가족에게 버림받음)


내용은 다 다르다. 연인, 회사, 자식. 하지만 핵심 기표는 같다. "버림받음."

라캉의 표현을 빌리면, 같은 기표가 "다른 옷을 입고" 돌아오는 거다.

이게 반복강박의 핵심이다. 우리는 "같은 사건"을 반복하는 게 아니다. "같은 구조"를 반복한다. "같은 핵심 단어"를 반복한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일처럼 보인다. "연인 문제"와 "회사 문제"와 "자식 문제"가 뭔 상관이야? 전혀 달라 보인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같은 구조다. 같은 패턴이다. 같은 핵심 기표가 작동하고 있다.


실제 상담 사례로 보면

내가 만난 내담자 중에 이런 분이 있었다.

40대 남자.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다. 파트너가 배신해서 돈을 다 날렸다고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30대 초반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다른 파트너와 다른 사업이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파트너가 배신하고, 돈을 잃었다.

20대 후반에도 있었다. 친한 친구와 같이 일을 시작했는데, 친구가 뒤통수를 쳤다.

심지어 대학 시절에도 있었다. 동아리에서 같이 프로젝트를 하던 선배가 성과를 가로챘다.

패턴이 보이는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함." 이게 이 사람의 핵심 기표다. 20년 동안 같은 기표가 다른 옷을 입고 계속 돌아온 거다.

표면적으로는 다 다른 사건이다. 선배, 친구, 사업 파트너, 또 다른 사업 파트너. 하지만 구조는 똑같다.

이 사람에게 "왜 자꾸 그런 사람을 만나세요?"라고 물으면, 답이 없다. "운이 나빠서요." "재수가 없어서요." 그렇게밖에 설명 못 한다.

하지만 라캉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운"이 아니다. 무의식이 같은 상황을 계속 "만들어내는" 거다.

왜? "놓친 것"을 잡으려고. 뭔가 해결되지 않은 게 있어서. 그게 해결될 때까지 계속 시도하는 거다.


욕망의 변증법

브루스 핑크는 라캉 이론을 해설하면서 "욕망의 변증법"을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분석(상담)이 시작되면, 내담자는 처음에 이렇게 말한다. "제가 원하는 건 이거예요."

확신에 차 있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상담이 진행되면, 슬슬 흔들린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게 진짜 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더 진행되면 이렇게 된다. "제가 진짜 원하는 건...... 잘 모르겠어요."

이게 변증법이다. 처음에 확신했던 게 흔들리고, 부정되고, 새로운 질문이 열린다.

핑크는 이렇게 말한다.

"환자는 더 이상 자신이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분석이 시작되면 그는 하나의 소망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번에 와선 그것을 부인하고, 또 다음 번엔 약간 변화된 비슷한 소망을 다시 표현할 수도 있다."

이게 정상이다. 우리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왜 모르냐? 우리의 욕망은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자의 욕망을 반복한다

라캉의 유명한 명제가 있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무슨 뜻이냐?

핑크는 이렇게 해설한다.

"부모의 욕망은 주체 자신의 욕망의 근원이 된다. 주체는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자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니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었다. 부모가 우리에게 기대한 것이었다.

아이는 묻는다. "부모님이 뭘 원하시지?"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지?" 그리고 그 답을 자기 욕망으로 삼는다.

"신경증자는 어떻게 하면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얻을 수 있는지 알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그 조건들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부모가 "공부 잘하는 아이"를 원했으면, 나는 공부를 잘하고 싶어한다. 부모가 "말 잘 듣는 아이"를 원했으면, 나는 순종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부모가 "성공한 아이"를 원했으면, 나는 성공하고 싶어한다.

내 욕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부모의 욕망이었다.


반복강박과 타자의 욕망

여기서 반복강박과 연결된다.

우리가 반복하는 건, 우리 자신의 패턴만이 아니다. 부모의 패턴도 반복한다.

부모가 두려워했던 것을 우리도 두려워한다. 부모가 피했던 것을 우리도 피한다. 부모가 실패했던 곳에서 우리도 실패한다.

왜? 부모의 욕망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두려움도 같이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사업에서 실패하고 파산한 경험이 있다고 치자. 아이는 이걸 본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각인된다. "사업은 위험하다." "돈을 잃으면 끝이다." "실패하면 가족이 무너진다."

이 아이가 자라서 어떻게 될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사업을 절대 안 한다. 아버지처럼 될까 봐 무서워서. 안전한 길만 간다.

다른 하나는, 사업을 한다. 그런데 아버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실패한다. 아버지가 실패한 그 지점에서 똑같이 무너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무의식이 아버지의 패턴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실패를 "다시 경험"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놓친 것을, 내가 잡으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게 대물림이다. 트라우마의 대물림. 패턴의 대물림.

우리는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물려받는다. 그리고 그걸 해결하려고 평생을 보낸다. 대부분은 실패한다. 왜? 같은 방식으로 시도하니까.


"왜 자꾸 그런 사람을 만나요?"

상담실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왜 저는 자꾸 그런 사람을 만나요?" "왜 저는 항상 이런 식으로 끝나요?" "왜 저는 매번 같은 실수를 해요?"

프로이트 식으로 답하면, "당신이 과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라캉 식으로 답하면, "당신이 '놓친 것'을 잡으려고 계속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둘 다 맞다. 하지만 뉘앙스가 다르다.

프로이트 식 설명은 좀 수동적이다. 과거가 "나를 붙잡고 있다"는 느낌. 내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느낌.

라캉 식 설명은 좀 더 능동적이다. 내가 "뭔가를 찾고 있다"는 느낌. 목적이 있다는 느낌. 물론 무의식적이지만.

그래서 라캉 식 관점이 희망을 준다. 반복이 "저주"가 아니라 "탐색"이라면, 뭔가를 "찾으면" 멈출 수 있다는 뜻이니까.

뭘 찾아야 할까? "놓친 것"을 찾아야 한다. 상징화되지 못한 것을 상징화해야 한다. 말로 표현되지 못한 것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


의미는 상상적이다

여기서 라캉의 중요한 통찰이 나온다.

핑크는 이렇게 해설한다.

"의미가 자기-이미지와, 다시 말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 갖는 이미지와 밀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는 우리의 자기-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배척해 버린다."

무슨 말이냐?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생각. 이걸 "자아"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자아 이미지가 진실이 아니라는 거다. 자아는 "상상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진짜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아 이미지에 맞는 것만 받아들인다. 맞지 않는 건 거부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자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공격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나는 화내는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화가 날 때마다 억누른다. 부정한다.

하지만 억눌린 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우울로, 신체 증상으로, 수동적 공격으로.

이게 라캉이 말하는 "상상적인 것"의 문제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는 환상이다. 그 환상에 맞지 않는 것들이 무의식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그것들이 반복을 통해 돌아온다.


실제로 말한 것 vs 의도한 것

라캉은 분석에서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정신분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 그가 실제로 말한 것이다."

내담자가 "이렇게 말하려고 했어요"라고 변명해도, 실제로 나온 말이 중요하다. 말실수가 중요하다. 의도치 않게 튀어나온 표현이 중요하다.

왜? 거기에 무의식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핑크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어떤 환자가 "아버지가 말 그대로 제 뒤에 있어요"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아버지가 저를 도와주세요"라는 뜻이다.

하지만 분석가는 "뒤에"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왜 하필 그 표현을 썼을까? "저를 지지해요", "저를 응원해요" 같은 표현도 있는데, 왜 "뒤에"?

분석을 해보니, 이 환자에게 "뒤"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성적인 의미. 아버지와 관련된 무의식적 환상.

이게 라캉 식 분석이다. 내담자가 의도한 것을 넘어서, 실제로 말한 것에서 무의식을 읽는다.


분석은 언제 시작되나

핑크는 분석의 시작점을 이렇게 말한다.

"환자가 진정으로 분석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그가 자신의 말에 대해 의문을 던질 때이다."

처음에 내담자는 확신에 차 있다. "제 문제는 이거예요."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제가 원하는 건 이거예요."

진짜 분석은 이 확신이 흔들릴 때 시작된다.

"왜 내가 그렇게 말했지?" "왜 그런 꿈을 꿨지?" "왜 자꾸 같은 실수를 하지?"

이런 질문이 생길 때, 분석이 시작된다. 자기가 알고 있던 "나"가 흔들릴 때. 모든 것이 의문시될 때.

"모든 것은 의문시될 수 있다. 가장 확실했던 것도 더 이상 확실할 수 없다. 이제 그는 무의식에 주목하게 되고, 자신을 통해 말하고 있는 또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해석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게 분석의 시작이다. 그리고 반복강박을 끊는 시작이기도 하다.


타자의 욕망에서 분리되기

핑크는 분석의 방향을 이렇게 제시한다.

"신경증자의 분석은 타자나 타자의 욕망으로부터 그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라면, 치유는 "타자의 욕망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 사회가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 타자의 인정이 아니라, 내 자신의 욕망을 찾는 것.

이게 쉬운 일일까? 절대 아니다.

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타자의 욕망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타자의 욕망이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타자의 욕망이고 어디부터가 내 욕망인지,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분석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자기 욕망을 찾기 어렵다. 누군가와의 관계 안에서, 하나씩 벗겨내야 한다.


2장을 마치며

라캉의 관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반복은 "놓친 것"의 회귀다. 같은 것이 그대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상징화되지 못한 것이 다른 형태로 계속 돌아온다.

둘째, 같은 핵심 기표가 다른 옷을 입고 돌아온다. "버림받음", "배신", "실패" 같은 핵심 단어가 다양한 사건의 형태로 반복된다.

셋째, 우리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우리 것이 아니었다. 부모의 욕망, 사회의 기대를 내면화한 것이다.

넷째, 부모의 패턴도 반복한다. 트라우마는 대물림된다.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물려받아 반복한다.

다섯째, 치유는 타자의 욕망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내 욕망을 찾는 것.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는 것.

다음 장에서는 "나이 들면서 비슷하게 돌아오는 것"의 의미를 더 깊이 살펴보겠다. 시간의 구조 속에서 반복강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사주 상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2장 참고문헌

브루스 핑크/ 맹정현(2021). 『라캉과 정신의학』.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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