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영업 비밀-1장

1장. 첫 번째 질문은 거짓말이다

by 홍종민

내담자는 왜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가

상담실 문이 열린다.

30대 여성이 들어온다. 자리에 앉자마자 묻는다. "선생님, 저 요즘 너무 불안해요. 이 불안이 정상인가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불안증상을 본다. 생활사를 따진다. 신경생물학적 원인을 찾는다.

그런데 잠깐. 이 질문이 진짜 질문일까?

수천 명을 만났다. 그리고 깨달은 게 있다. 첫 번째 질문은 거짓말이다. 예외가 없다.


말은 겉과 속이 다르다


브루스 핑크라는 정신분석가가 있다. 라캉의 제자다. 그가 단호하게 말한다. "분석에서는 아무것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1].

충격적인 말이다. 내담자가 하는 말을 믿지 말라니. 그런데 맞는 말이다. 내담자의 말이나 행동이 그대로 어떤 진정한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심리상담실도 마찬가지다. "저 요즘 불안해요"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 질문 뒤에는 수십 가지 의미가 숨어 있다.

핑크는 더 나아간다. "의미는 본질적으로 다의적인 것이다"[1]. 우리가 내뱉는 말은 결코 하나의 의미만을 담지 않는다. 하나의 문장 안에 여러 겹의 의미가 포개져 있다. 의식이 아는 의미가 있고, 무의식이 숨긴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불안이 정상인가요?"라는 질문의 진짜 의미는 뭘까?

"제가 이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제 불안이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저를 정상이라고 인정해주세요." "나 혼자서도 기능할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겉으로는 증상에 대한 질문이다. 속으로는 승인에 대한 갈망이다. 이 간격을 모르면 상담이 안 된다.

핑크의 통찰은 단순하지만 깊다. 우리의 모든 말에는 여러 겹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인 의미 아래에는 무의식의 욕망이 흐르고 있다. 상담사는 이 무의식의 흐름을 감지해야 한다. 내담자의 말 속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을 들어야 한다. 침묵 속에서 울음을 들어야 한다.


40대 남성의 진짜 질문


한 40대 남성이 있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병력을 들었다. 자살 사고 유무를 물었다. 나는 말했다. "상황이 꽤 심하신데, 정신과 약물 치료를 고려해보세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저는 약을 먹기 싫어요. 상담만으로 낫고 싶어요."

나는 물었다. "그럼 왜 저한테 와서 이런 말씀하신 거예요?"

그가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사실은... 제 우울증이 제 약함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신경화학 문제라고 하시면, 저 때문이 아닌 것 같아서요."

바로 이거다.

그는 우울증 진단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의료 전문가라는 권위가 그 말을 해주길 바랐다.

첫 번째 질문: "저 우울증인가요?"
진짜 질문: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이 간격이 보이는가? 이 간격을 읽지 못하면 상담은 실패한다.

그 남성의 사례는 심리상담의 본질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진단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고 싶지 않다. 그들은 용서를 원한다. 자신을 용서받은 존재로 인정해주길 원한다. 의료 전문가의 권위는 단지 그 용서를 정당화하는 도구일 뿐이다.


왜 진짜 질문을 숨기는가


사람들은 왜 진짜 원하는 것을 직접 말하지 못할까?

부끄럽기 때문이다.

"저 혼자서는 못 살 것 같아요"를 직접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 불안해요"라고 묻는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나요?"를 직접 말하기 창피하다. 그래서 "제 관계 패턴이 뭔가요?"라고 묻는다.

핑크는 이를 정확히 짚는다. "의미는 자기-이미지와 밀착되어 있다. 자기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배척해 버린다"[1]. 그래서 진짜 욕망은 숨는다.

"나는 독립적인 성인이다"라는 자기 이미지가 있는 사람은 "누군가 내 곁에 있어야만 견딜 수 있다"는 욕망을 직접 말하지 못한다. 그 욕망이 자기 이미지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감이 자꾸 생겨요"라는 우회로를 택한다.

"나는 유능한 전문가다"라는 자기 이미지가 있는 사람은 "직장에서 자꾸 실패한다"는 고통을 직접 말하지 못한다. 대신 "제 성격이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요?"라고 묻는다.

첫 번째 질문은 자기 이미지를 보호하면서 던지는 질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이다. 진짜 질문은 그 뒤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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