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인식하면 자유다

by 홍종민

책을 마무리하면서 한 내담자가 떠오른다.


40대 중반 남성이었다. 관성이 세 개나 있는 사주였다. 평생 규칙대로 살았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했다.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게 무너졌다. 퇴사하고 싶다고 했다. 이혼하고 싶다고 했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나고 싶다고 했다.


대운을 봤다. 식상 대운이 시작된 지 2년째였다. 나는 말했다. "40년 동안 억눌렀던 것이 터지고 있어요. 자유, 표현, 창조. 당신 안에 그게 있었는데, 관성에 눌려서 나오지 못했어요. 지금 그게 폭발하는 거예요."


그는 물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정말 다 때려치워야 하나요?"


나는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퇴사하면 뭘 하고 싶으세요?"


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 "사실... 글을 쓰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꿈이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반대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죠."


식상 대운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40년 동안 억압했던 욕망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모든 것이 싫다고만 느꼈다. 퇴사하고 싶고, 이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다고만 느꼈다.


하지만 사주를 통해 무의식을 읽자, 진짜 원하는 게 드러났다. 그는 퇴사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혼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표현하고 싶었다. 창조하고 싶었다.


6개월 후 그가 다시 왔다.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선생님, 회사는 그만두지 않았어요. 대신 새벽마다 글을 써요.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읽어주더라고요. 신기해요.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줄었어요."

그는 식상 대운이 원하는 것을 찾았다. 표현할 통로를 만들었다. 억압되었던 것이 건강하게 분출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때려치우지 않아도 됐다. 무의식이 원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신분석적 사주상담의 힘이다.


라캉은 말했다. "타자의 욕망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평생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산다. 부모가 원하는 것, 배우자가 원하는 것, 사회가 원하는 것.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모른다. 사주상담실에 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제가 이렇게 해도 될까요?" 허락을 구한다. 승인을 기다린다. 하지만 진짜 치유는 스스로 답을 찾을 때 시작된다. "내가 원하는 게 뭐지?" 그 질문을 던질 때 시작된다.

사주는 가장 오래된 심리학이다.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사람들은 사주로 인간을 읽어왔다. 정신분석은 가장 깊은 심리학이다. 백 년 넘게 서양에서 무의식을 탐구해왔다. 이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이 책이 답하려는 질문이었다.

사주는 운명이 아니다. 무의식의 구조다. 사주를 아는 것은 자기를 아는 것이다. 자기를 알면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할 수 있으면 자유롭다.

당신의 사주를 보라. 천간과 지지가 일치하는가, 불일치하는가. 말과 행동이 같은가, 다른가. 지금 대운이 뭔가. 억압되었던 무의식이 올라오고 있는가. 받아들이고 있는가, 거부하고 있는가.

사주는 당신의 무의식이다. 무의식을 읽으면 당신이 보인다. 왜 이렇게 사는지, 왜 저렇게 반응하는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다 보인다. 그리고 바꿀 수 있다.

인식하면 자유다. 그것이 이 책이 전하고 싶은 단 하나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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