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왜 사람들은 진짜 말을 하지 못하는가

by 홍종민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질문이 바뀐다. "내년 운세 어때요?"로 시작해서 "그럼 결혼운은요?"로 가고, "대운이 끝나면 안 좋아지나요?"로 간다. 처음엔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인가 싶었다. 하나 물어보다가 다른 것도 생각난 거라고.

아니다.

질문이 바뀌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진짜 질문을 못 하기 때문이다. 진짜 질문은 너무 두렵거나, 너무 부끄럽거나, 본인도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말로 돌려서 한다.

이건 상담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카톡에서도, 술자리에서도, 가족 모임에서도, 직장에서도. 사람이 말하는 곳이면 어디서든 이 패턴이 반복된다.


세 번 말한다. 그런데 진짜 말은 한 번도 안 한다


어느 날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K 교수 나르시즘 있는 것 같아요." 뜬금없었다. K 교수가 얼마나 권위적인지, 얼마나 무시하는지, 한참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말이 나왔다. "권위의식 느껴지면 발병하는 병이 있는데." 말을 하다가 멈췄다. 그리고


다시 K 교수 이야기로 돌아갔다.

나는 물었다. "권위 있는 사람 앞에서 어떠세요?" 잠시 침묵. 그리고 답이 왔다. "아마도 이건 엄마의 강압적인 어린 시절에서 나오는 저항 같은 거 같아요."

K 교수 이야기가 아니었다. 엄마 이야기였다. K 교수한테 화난 게 아니라, 엄마한테 못 한 말이 있었던 거다. 그 말이 지금 권위 있는 사람들한테 튀어나오고 있었다.

또 다른 지인이 있다. 만학도로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전에 연락이 왔다. "젊은 사람들 틈에서 학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요?" 걱정이 많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말이 나왔다. "장학금을 타야 해요." 학업 걱정하다가 갑자기 장학금. 맥락이 없다. 그리고 다시 학업 걱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알았다. 학업 걱정이 아니었다. 등록금 걱정이었다. "돈 없어서 걱정이에요"라고 직접 말하기 부끄러웠던 거다. 그래서 "학업 따라갈 수 있을까"로 돌려서 말한 거다.

둘 다 같은 구조다. 처음 하는 말은 안전한 말이다. 그다음 맥락 없이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진짜 말은 끝까지 안 나온다. 세 번 말한다. 하지만 진짜 말은 한 번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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