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돌려서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by 홍종민

상담실에 사람이 들어온다. 앉는다. 그리고 입을 연다.


"선생님, 내년 운세 좀 봐주세요."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사주상담을 하러 왔으니 운세를 묻는 거다. 나는 답한다. 대운이 어떻고, 내년 신수가 어떻고, 좋아지는 시기가 언제라고. 성실하게, 정확하게.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답을 들었는데 또 묻는다.


"그럼 결혼운은요?"

답을 해준다. 결혼운은 언제 들어온다고. 그런데 또 묻는다.


"재물운은요?"

답을 해준다. 그런데 또 묻는다.


"건강운은요?"

질문이 바뀐다. 자꾸 바뀐다. 운세에서 결혼으로, 결혼에서 재물로, 재물에서 건강으로. 처음엔 이게 그냥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인가 싶었다. 하나 물어보다가 다른 것도 궁금해진 거라고. 어차피 상담료 냈으니까 이것저것 다 물어보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수천 명을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아니다. 질문이 바뀌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진짜 질문을 못 하기 때문이다.


상담이 끝날 때쯤 되면 더 분명해진다. 상담시간이 2분 남았다는 안내가 뜨는 순간, 갑자기 다른 질문이 튀어나온다. "아, 근데 선생님... 대운이 끝나면 안 좋아지나요?" 이 질문은 처음 질문과 다르다. 뭔가 급하다. 뭔가 절박하다. 시간이 없어지니까 진짜가 비집고 나온 거다.


나는 알게 됐다. 처음 질문은 진짜가 아니다. 마지막에 급하게 나온 질문, 그게 진짜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조차 진짜 질문은 아니다. 진짜 질문은 끝내 나오지 못한다. 상담이 끝나고 문을 나서고 나서야 겨우 의식되는 것. 그게 진짜다.

이걸 알기 전에는 답만 줬다. 운세요? 좋아요. 결혼운이요? 3년 후요. 정확하게, 성실하게. 그런데 내담자는 만족하지 않았다. 다시 안 왔다. 뭐가 문제인지 오래 몰랐다. 알고 나서 달라졌다. 첫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는다. 기다린다. 질문이 바뀌는 걸 지켜본다. 마지막 2분에 뭐가 나오는지 본다. 그게 진짜다. 거기서부터 상담이 시작된다.


진짜 질문은 왜 나오지 않는가


사람은 진짜 묻고 싶은 것을 직접 묻지 못한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너무 두렵다. 진짜 질문을 입 밖에 내면 진짜 답을 들어야 한다. 그 답이 두렵다. 차라리 안 묻는 게 낫다. 그래서 다른 질문으로 돌린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 같은데 진짜인가요?" 이걸 직접 물으면 "네, 그렇습니다"라는 답을 들을 수도 있다. 그게 두렵다. 그래서 "남편 운세 어때요?"로 돌려서 묻는다. 운세를 물으면서 남편 이야기를 슬쩍 꺼낸다. 직접 묻지 않고 빙 돌아간다. 어떤 내담자는 자녀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우리 아이 운세 좀 봐주세요." 한참 자녀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묻는다. "근데 선생님, 부부 궁합도 볼 수 있어요?" 자녀를 통해 남편한테 접근하는 거다. 직접 가기 두려우니까.


둘째, 너무 부끄럽다. 진짜 질문을 하면 자기 속마음이 드러난다. 그게 부끄럽다. 남한테 약점을 보이는 것 같다. "돈이 없어서 등록금 걱정돼요." 이걸 직접 말하면 돈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게 부끄럽다. 그래서 "학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요?"로 돌려서 말한다. 학업 걱정은 만학도로서 자연스럽다. 오히려 열심히 하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체면이 유지된다. 어떤 내담자는 사업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이 사업 해도 될까요?" 사업 타당성을 묻는 것처럼 보인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슬쩍 묻는다. "근데 선생님, 혹시 투자받을 수 있을까요?" 진짜 질문은 "돈 구할 수 있을까요"인데, 그건 부끄러우니까 사업 이야기로 포장한 거다.


셋째, 본인도 뭔지 모른다. 이게 가장 많다. 뭔가 불안하고, 뭔가 답답한데,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른다. 말로 정리가 안 된다. 그래서 일단 아무 질문이나 던진다. "내년 운세 어때요?" 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게 답답하다. 근데 그게 뭔지 본인도 모른다. 그래서 질문이 자꾸 바뀐다. 운세 물어보고, 결혼 물어보고, 재물 물어보고, 건강 물어보고. 뭔가를 찾고 있는데 뭘 찾는지 모르는 거다. 이런 내담자들이 상담이 끝난 후에 다시 연락한다. "선생님, 저번에 못 물어본 게 있는데요..." 상담실을 나서고 나서야 뭔가 떠오른 거다. 상담 중에는 나오지 못했던 것. 나와서야 겨우 의식된 것. 그게 진짜 질문이다.

나는 이 세 가지를 구분할 줄 알게 됐다. 두려워서 못 묻는 사람은 눈을 피한다. 부끄러워서 못 묻는 사람은 말이 빨라진다. 본인도 모르는 사람은 질문이 자꾸 바뀐다. 패턴이 다르다. 그걸 읽으면 진짜가 보인다.


안전한 말과 위험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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