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진짜 말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by 홍종민

1919년, 프로이트는 이상한 논문을 발표했다.

「아이가 매를 맞아요(Ein Kind wird geschlagen)」라는 제목이었다. 이상한 제목이다. 아이가 매를 맞는다니. 정신분석의 거물이 갑자기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처음 이 논문 제목을 접했을 때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읽고 나서 멈췄다. 100년 전 논문인데, 내가 상담실에서 매일 보는 것과 똑같았다.


프로이트는 여성 환자들을 분석하면서 공통적인 환상을 발견했다. 분석이 깊어지면 환자가 털어놓는 은밀한 환상이 있다. 주로 자위할 때 떠올리는 환상이다. 처음에는 말하기 부끄러워서 숨긴다. 하지만 분석이 진행되면서 겨우 털어놓는다.

맹정현은 이렇게 설명한다. "분석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환상을 이야기하는 단계가 있다. 환상이라는 것이 보통 남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잘 이야기하지 않죠. 처음에는 환자가 의식적인 이야기들, 이미 검열된 이야기들을 주로 하겠죠. 그리고 그것들을 다 걷어내면 어떤 지점부터 환자가 부끄러운 이야기도 하고 정말 은밀한 사적 이야기, 즉 환상을 털어놓는 단계가 있다"(맹정현, 2022: 237).


환자들이 털어놓은 환상 중에 전형적인 것이 있었다. "누군가가 아이를 때린다." 누가 때리는지 모른다. 누가 맞는지도 모른다. 그냥 어른이 어떤 아이를 때리는 장면. 이게 반복해서 나왔다. 프로이트는 파고들었다. 이 환상의 밑에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발견했다. 이 환상은 변형된 것이다. 원래 환상이 따로 있다. 억압된 것이 있다. 겉에 드러난 환상 뒤에 숨겨진 구조가 있다.

이 구조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상담실이 떠올랐다. 내담자들이 처음엔 안전한 이야기를 한다. 운세, 재물, 건강. 그러다 어느 순간 부끄러운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것조차 진짜가 아니다. 진짜는 끝내 나오지 못한다. 프로이트가 성적 환상에서 발견한 구조가, 사주상담실에서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세 개의 환상


프로이트가 재구성한 세 개의 환상은 이렇다.


1번 환상: "아버지가 아이를 때린다"


이것이 첫 번째 환상이다. 환자가 기억해낼 수 있는 환상이다. 여기서 맞는 아이는 누구인가. 환자 자신이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아이다. 나와 경쟁 관계에 있는 아이다. 동생일 수도 있고, 또래 아이일 수도 있다. 아버지가 그 아이를 때린다는 건 무슨 뜻인가. 아버지가 그 아이가 아닌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나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1)은 내가 싫어하는 어떤 아이를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가 때려준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맹정현, 2022: 240). 이 환상은 사디즘적이다. 남이 맞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쾌감의 배후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있다. 이것은 전치다. 진짜 원하는 것은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인데, 직접 말할 수 없으니 "아버지가 경쟁자를 때린다 = 아버지가 나를 선택했다"로 우회해서 표현한다. 사랑의 욕망이 처벌의 환상으로 전치된 것이다. 그리고 이 환상은 능동형이다. 내가 때리는 게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맞는다. 내가 행위자 편에 선다.


2번 환상: "내가 아버지에 의해 때려진다"


이것이 두 번째 환상이다. 그런데 이 환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환자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 환상을 환자가 기억해낸 게 아니라 분석을 통해 구성해냈다. 1번과 3번 사이에 이런 환상이 있었을 거라고 추론한 것이다.

"그 환상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그 환상이 억압되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무의식적인 환상이 있을 거라는 거죠. 그 환상을 프로이트는 '내가 아버지에 의해 때려진다'라는 문장으로 추정합니다"(맹정현, 2022: 239). 여기서 때려진다는 것은 단순히 맞는 게 아니다. 사랑받는다는 뜻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때리는 것이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되는가. 프로이트는 이것을 가학적 항문기의 특징으로 설명한다. 발달의 어느 시기에는 때리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혼동된다. 관심을 준다는 것, 나한테 집중한다는 것, 그게 사랑이다. 때리는 것도 일종의 관심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가학적 항문기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남자가 자꾸 때리는데도 그 남자를 떠나지 않는 여자들이 적지 않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뭔가 혼동하고 있는 경우도 있겠죠. 그가 나를 때리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혼동을 하는 경우죠"(맹정현, 2022: 241). 이 환상은 수동형이다. 내가 맞는다. 내가 당한다. 그래서 부끄럽다. 너무 은밀하다.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오이디푸스적 욕망이 항문기 언어로 표현된 것이다. 그 욕망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의식에서 완전히 억압된다. 절대 기억나지 않는다.


3번 환상: "누군가가 아이를 때린다"


이것이 세 번째 환상이다. 환자가 의식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환상이다. 여기서는 때리는 사람도, 맞는 아이도 불분명하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때린다. 흐릿하다. 안개가 낀 것처럼. 이 환상은 타협형성이다. 1번처럼 사디즘적이면서도, 2번처럼 마조히즘적이다. 겉으로는 남이 맞는 것을 본다. 하지만 속으로는 맞는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프로이트가 추정하기로 이 환상에서는 맞는 장면을 쳐다보면서 아이가 자신을 맞고 있는 아이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맹정현, 2022: 240). 겉은 능동형이지만 속은 수동형이다. 겉은 사디즘이지만 속은 마조히즘이다. 억압된 2번이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다. 직접 드러낼 수 없으니까 위장해서 나타난 것이다.


핵심은 순서다


세 개의 환상이 있다. 그런데 핵심은 순서다. 두 개의 순서가 있다. 만들어지는 순서와 기억나는 순서. 이 둘이 다르다. 그게 핵심이다.


만들어지는 순서는 이렇다.

1번이 먼저 만들어진다. 유년기의 환상이다. 아직 억압이 없다. 죄책감도 없다. 그다음 2번이 만들어진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억압되면서 생긴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억압되면서, 때려진다(=사랑받는다)로 변형된다.

마지막으로 3번이 만들어진다.


억압된 2번이 타협형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1번 → 2번 →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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