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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그녀가 벤치에서 밥을 먹는 진짜 이유

by 홍종민

벤치와 그녀


영국의 정신분석가 조안 시밍턴의 『윌프레드 비온 입문』을 통해 우리는 '전이 해석'의 핵심과 활용을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전이 해석을 알아야 할까?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어, 그 속에서 진정한 통찰을 얻고 힐링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독자들에게 자기 이해의 여정을 안내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런던에서 분석치료를 받던 그녀에게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다. 집이나 식당이 아닌, 분석가의 집 근처 공원 벤치에서 음식을 먹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도시락을 싸서 직접 가져가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간단한 간식을 사 온 뒤 곧장 벤치에 앉아 한 끼를 해결하기도 했다.

처음엔 분석가도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반복되는 패턴이 눈에 띄자, 이것이 단순히 ‘먹는 방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봤다.


분석가의 의문: 떠나기 싫어하는 그녀


시간이 흐르고 상담이 깊어지자, 분석가는 한 가지 장면에 주목했다. 그녀가 회기가 끝날 즈음에 늘 “아직 갈 준비가 안 됐다”고 망설이거나 서성이는 모습이 반복된 것이다. 마치 “더 머무르고 싶다”고 말하는 듯했다. 분석가는 이런 ‘붙들기’ 행동에서, 그녀가 “떠나야 하는 상황”을 몹시 불편해한다는 점을 감지했다.


전이(Transference)의 관점: 엄마에게 매달리는 아기


분석가는 이 행동을 **전이(transference)**의 관점으로 해석했다. 전이란, 내담자가 과거에 중요했던 인물(주로 부모)과 얽힌 감정을 지금의 분석가에게 옮겨 오는 심리적 과정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녀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느꼈던 ‘달라붙고 싶음’을 분석가와의 관계 속에서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석가의 해석:


“당신은 회기가 끝난 뒤에도, 마치 엄마에게 매달리는 아기처럼 떠나기 싫어한다.”
“실제 세계에서 엄마(분석가) 무릎에 앉을 수 없으니, 대체물로 공원 벤치를 택해 거기에 앉아 먹고 머무른다.”

이 해석을 듣고, 그녀는 무척 불쾌감을 드러냈다. 왜냐하면 그녀는 스스로 **“성숙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석가가 자신을 ‘엄마에게 처절하게 매달리는 아기’로 묘사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엄마의 무릎 vs. 공원 벤치


분석가에 따르면, “벤치에 앉아 먹는다”는 단순 행동이 ‘엄마 무릎’ 같은 안전한 자리를 찾는 무의식적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녀가 분석가의 곁(엄마 역할)을 떠나는 걸 힘겨워하듯, 현실에서도 혼자가 될 순간이 오면 벤치를 찾아 그 위에 앉아 ‘안정감’을 느끼려 한다는 것.

분석가가 이런 해석을 내놓았을 때, 그녀는 화를 냈다.
“그딴 해석 싫어요. 난 그런 아기가 아니라고요!”
라며 내적 반발을 드러냈다. 그러나 곧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이 말이 어딘가 마음에 와닿는 걸 느끼기도 했다. “내가 왜 굳이 벤치를 찾아 식사했을까?” “엄마와 분리되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던 어린 시절, 정말 있었다”고 깨달은 것이다.


전이가 불러일으킨 분노: “난 어른이라고!”


라캉식 정신분석에서 전이는 **‘주체(내담자)가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욕망이, 분석가라는 큰 타자(The big Other)에게 다시 드러나는 장(scene)’**로 간주된다. 이때 분노는 중요한 신호다. “내가 어른이라는 걸 부정당한다는 느낌” 때문에 화가 난 것이지만, 라캉적으로 보자면 그 화 자체가 **무의식 속 ‘아이적 의존’**을 방어하기 위한 반응일 수 있다.

“회기가 끝나면, 내담자(당신)를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데, 어린 ‘매리’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엄마 무릎(벤치)에 집착해 앉는다. 이건 아이 시절 엄마에게 하듯 ‘정서적 달라붙기’를 재현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그녀의 격한 반발은, 사실 그 해석이 정곡을 찔렀음을 뜻한다. 진짜 문제를 건드렸을 때 비로소 강한 감정이 나온다는 것은, 정신분석에서 흔히 보는 현상이다. 라캉의 관점에서도, ‘주체의 환상’을 뚫고 들어갈 때 저항과 분노가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과거가 현재를 움직이는 방식


전이해석의 핵심은, 과거(엄마-아기 관계)가 지금(분석가-내담자 관계)에 투영되는 모습을 파악하는 데 있다. 그녀가 불편함과 분노를 느끼는 이유 역시, 과거 ‘엄마에게서 떨어지기 싫어!’ 했던 아기 때의 감정이 재현되기 때문이다.

“엄마 곁을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욕망이, 현실에선 공원 벤치라는 형태로 드러났다. 왜 꼭 벤치였을까? 분석가는 “그 벤치가 엄마 무릎 같은 안전기반이 돼 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찾는 행위가, 이런 식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어린 나를 본다니, 기분 나빠요.”


많은 내담자가 이와 비슷한 불쾌감을 표현한다. “나는 이미 성인이 됐는데, 왜 자꾸 날 어린아이라고 하지?”라는 거다. 어린 시절의 의존 욕구를 인지한다는 건,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분노가 바로 마음속 진실에 접근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분석가는 “네가 아직 엄마와의 분리 불안을 품고 있다”라고 지적했을 때, 내담자가 느끼는 불편함은 스스로 ‘독립적’이라 여겼던 환상이 흔들리는 데서 온다. 그러나 라캉은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말하며, 주체가 자신을 ‘완전히 독립적’이라 믿는 순간조차도 타자(엄마/분석가)의 시선과 욕망에 의해 규정된 부분이 있다고 본다. 즉,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뭘까?”를 묻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전이의 전환점이다.


벤치라는 은유: 무의식의 작은 재현


결론적으로, 벤치=엄마 무릎이라는 해석은 단순하되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다. 사소해 보이는 행동이 사실은 어린 시절의 결핍과 연관돼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 해석을 듣고 분노했지만, 동시에 묘한 의미를 느낀 건, 이 말이 자기 안의 감정과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라캉의 시각: 벤치, ‘대상 a(오브제 a)’가 될 수 있을까?


라캉적 관점에서 볼 때, **‘벤치’**가 일종의 ‘대상 a(오브제 a)’, 즉 무의식적인 욕망을 촉발시키는 ‘결핍의 흔적’이자 ‘욕망의 원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녀에게 벤치는 단순한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어린 시절 엄마에게 충분히 받지 못했던 ‘안전감, 보호, 감싸주는 자리’**에 대한 갈망을 촉발하는 매개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벤치에 앉아서 먹으면 편안해요. 마치 ‘거기에 내 자리가 있는 듯’ 느껴져요.”


이 느낌 자체가, 라캉이 말하는 ‘잃어버린 대상(결핍)’을 다시금 소환함으로써, 쾌락(주이상스) 혹은 안도감을 얻으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녀의 변화 가능성: 분노 속에서 찾는 깨달음


“그 해석은 싫어요”라는 그녀의 반응은 예측 가능한 저항(resistance)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담자는 그 화의 이면에 숨은 ‘갈망’을 볼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 엄마를 필요로 했고, 엄마는 충분히 내게 와 주지 않았다”**는 상처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돌보게 된다.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명제에 비추어 보면,

“난 그런 아기가 아니라고요!”라는 외침 안에도 **‘사실은 난 아기가 되고 싶다’**는 무의식적 언어가 숨어 있을 수 있다.


“난 어른이라고!”라는 주장도, 바로 그 무의식적 욕망을 더욱 부정하기 위한 방어적 언어일 수 있다.


결국 전이해석을 통해, 그녀는 오래 묻혀 있던 아기 시절의 외로움·불안과 마주할 수 있고, 더 이상 그것을 벤치나 다른 행동으로 ‘은밀하게’ 해결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처음엔 거부감이 컸지만, 결국 내담자 스스로 “내가 엄마를 얼마나 원했는지”를 깨닫게 되면, 변화와 성장이 일어난다.


작은 장면, 깊은 심리


일상에서 보면, “공원 벤치에서 혼자 먹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의 렌즈로 보면, 그 미묘한 행동이 과거의 대인관계(특히 부모와의 관계)와 긴밀히 연결돼 있을 수 있다.

이 사례에서, 벤치라는 물리적 장소가 엄마의 무릎이라는 심리적 공간을 상징한다는 해석은, 듣는 이로 하여금 “헐,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을 준다. 그 해석에 분노하고 거부하다가도, 그 안에 담긴 진실을 마주하기 시작하면, 내담자는 비로소 내적 아이를 보듬는 과정을 시작한다.

라캉에 따르면 전이란, 주체가 자신의 욕망과 결핍을 ‘분석가라는 큰 타자’와의 관계에서 다시 체험하는 장치다. 어린 시절 엄마를 향해 울부짖던 아기의 욕망이, 어느 순간 공원 벤치에서 식사하는 모습으로 새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처럼 무의식은 사소한 곳에서 조용히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걸 포착해 조명하는 것이 바로 전이해석의 묘미이자, 라캉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욕망의 무대화’**다. (조안 & 네밀 시밍턴/ 임말희 역. 『윌프레드 비온 입문』, 18. 일부 재구성함)


*"손님도, 길냥이도, 학생도 머물고 싶은 편의점"의 주인공 고세현 점주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음악으로 힐링하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그렇지 않아요?

� 평범한 하루에 마법이 시작된다 – Ordinary Magic (Korean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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