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침묵 속에서 그의 생각이 내게로 건너왔다

내담자의 무의식이 분석가를 통과할 때

by 홍종민

마술적 순간: 무의식이 만드는 인간관계의 비밀

사주를 보면서 가장 소름끼치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는가? 내담자와 대화하다가 갑자기 **"아, 이 사람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는 느낌이 확신처럼 들 때다. 그리고 정말로 그 생각을 말하면 **"어떻게 제 마음을 그렇게 정확히 아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의 그 전율 말이다.

처음엔 그냥 경험과 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의 정신분석가 제프리 코틀러의 이론을 접하고 나서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직감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을.


정보 교환을 넘어선 깊은 차원


인간 관계를 종종 의사소통이나 정보 교환으로 한정 지어 설명하기 쉽다. 그러나 제프리 코틀러는 이보다 훨씬 깊은 차원이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혹은 택시를 타고 바텐더와 대화를 나눌 때조차, 그 이면에는 말이나 표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서적·무의식적 교류가 일어난다.

라캔이 말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명제를 떠올려보면, 우리가 주고받는 건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무의식의 기표들인 셈이다. 그 기표들이 서로 공명하고 연쇄되면서 예상치 못한 깊은 소통이 일어나는 것이다.


기술로 환원되지 않는 마법


기술로 환원되지 않는 순간: 상담에서 감정이입이 극에 달하면, 분석기법이나 상담기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법적 공감'이 발생한다. 이것은 상대의 마음을 거의 '읽어내는' 듯한 상태로, 마치 이성적 설명을 넘어서는 제3의 힘이 작용하는 듯 보인다.

내가 사주를 보면서도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다. 어떤 사람의 사주를 보는 순간 "아, 이 사람 어머니와 관계가 복잡하겠네"라는 직감이 온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서 상담이 깊어진다.

왜 중요한가: 인간이 이토록 복잡한 상호작용을 해내는 이유는, 단순한 논리나 정보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코틀러가 지적하듯, 이 영역에서 일어나는 마술적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연결감을 만들어낸다.


코틀러의 혁명적 발견: 지각의 일치


**코틀러(Kottler, 2014: 35-36)**는 감정이입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을 두고 **"지각의 일치(perceptual alignment)"**가 일어난다고 표현한다.


최면과 닮은 깊은 몰입


최면 상태와 유사: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에게 깊이 몰입하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며, 다음에 무엇을 말할지도 예측 가능한 상태가 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심리적 안정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상담할 때도 이런 순간이 온다. 내담자가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길 때,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거의 손에 잡히듯 느껴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혹시 지금 아버지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니에요?"라고 물어보면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무의식의 일시적 합일


마술적 순간의 의미: 이것은 단지 **"대화를 잘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서로의 무의식이 일시적으로 일치되는 특별한 경험"**이다. 코틀러는 상담 상황에서 이를 흔히 목격하지만,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 간에,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더 나아가 일상 속 다양한 접점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집단무의식 개념이나 셸드레이크형태장 이론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무의식은 서로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특정한 조건에서 그 연결이 활성화되면서 마술적 순간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상 속 치유의 마법사들


코틀러는 바텐더와 손님, 택시 운전사와 승객, 미용사와 고객 사이에서도 **"작은 치유적 순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계약 밖에서 일어나는 진짜 치유


보이지 않는 치료: 우리는 서로 대화하거나 간단한 용건을 해결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순간에도 일종의 정서적 환기가 일어난다. 택시 운전사가 승객에게 **"오늘 힘들어 보이네?"**라고 말하는 작은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될 수 있고, 미용사가 머리를 다듬으면서 건네는 칭찬이 마음을 환하게 비출 수 있다.

예전에 한 택시 기사분이 정말 신기한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손님들 태우고 다니다 보면, 어떤 분은 탑시다 마자 무슨 고민이 있는지 딱 느껴져요. 그럴 때 조심스럽게 한 마디 건네면 눈물 흘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계약된 서비스와는 별개: 코틀러는 **"그들이 제공하기로 계약한 서비스와 별개로, 사람들 사이에는 이러한 치료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즉, **"돈을 받고 해주는 행위"**라는 차원과는 구별되는 인간적 연결과 온기가 오간다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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