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기도발이 좋은 동네 (1)

봉정암

by 홍종민

영지 길 위에서: 산이 건네는 무의식의 메시지

사주를 보다 보면 어떤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아무리 간지를 풀어도, 아무리 신살을 분석해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 때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 들곤 했다. 그중에서도 **조용헌 선생의 『휴휴명당』과 『영지순례』**는 특별했다.

글을 읽는 순간, 마치 손끝에서부터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책을 따라 영지(靈地)를 순례해보겠다는 결심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지는 종교와 무관하다. 나는 불교의 사찰을 찾았지만, 그곳이 예수님의 자리요, 성모 마리아의 명당이 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교감이었다.


봉정암: 죽기 전에 가야 할 이유


설악산이 부르는 소리


설악산의 깊은 골짜기와 날카로운 봉우리는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도전과 경외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봉정암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절' 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

가파르고 긴 산길이 이어지는 탓에, 왕복 21km를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 길에 대한 설렘은 그 어떤 힘든 여정보다도 강렬하다.

나는 봉정암을 일종의 **'성소(聖所)'**처럼 느낀다. 절에서 발원하는 한낱 기도가 아니라, 삶을 통째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어떤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들머리에서 느낀 묘한 감응


산 아래에서 출발할 때부터 마음이 묘하게 차분해지고, 동시에 설렘이 함께 치솟는다. 들머리에 서 있으니, 마치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한데 섞여 새로운 길을 열어주려는 느낌이 든다.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장기간 걷는 순례와는 또 다른 의미겠지만, 한국판 순례길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딘가로부터 초대된 듯한 기분, 그리고 누군가의 길을 뒤따르는 듯한 감각이 함께 일어난다.

이런 복합적인 심경이 샘솟았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이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는다.


한국판 산티아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


왕복 21km를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시야가 달라지고, 숲의 향이 짙어지며, 바위들은 저마다의 얼굴로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그 모든 요소가 합쳐져서, 이곳을 걷는 사람들에게 순례길과도 같은 영적(靈的) 체험을 선사한다고 느낀다.


길에서 만난 작은 기적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길을 따라 숙박지와 식당이 즐비하지는 않지만, 이 길에도 나름의 **'이정표'와 '쉼터'**가 존재한다. 어떤 구간은 가팔라서 로프를 잡아야 올라갈 수 있고, 또 어떤 구간은 잘 다듬어진 흙길이 산들바람과 함께 반겨준다.

이 길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응원이다.

"조금만 더 가면 쉬운 길이 나와"
"저기서부터는 물이 좋아"

같은 따뜻한 한마디가 의외로 큰 힘이 된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인사는 잠깐 스치는 우연이지만, 그 짧은 교류가 마음을 흐뭇하게 만든다. 저마다 자신의 속도로 걷고 있지만, 결국은 같은 목적지(봉정암)를 향해 간다는 사실이 일종의 동질감을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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