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촉이란 무엇인가

— 직감과 직관의 차이

by 홍종민

상담을 오래 하면 이상한 걸 발견한다.


내가 느끼는 것들이 두 종류라는 것이다.


하나는 막연하다. 왠지 이 사람이 불편하다. 왠지 오늘 상담이 잘 안 될 것 같다. 설명이 안 된다. 그냥 그런 느낌이다. 이게 감이다.


다른 하나는 선명하다. 번개처럼 선명하다. 이 사람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뭔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다. 이 사람이 진짜 말하고 싶은 건 이직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다. 의심이 없다. 확신에 가깝다. 이게 촉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상담이 위험해진다.


막연한 감을 촉이라고 착각하면 과신한다. 많이, 자주 틀린다. 진짜 촉을 그냥 느낌으로 치부하면 내담자의 진짜 이야기를 놓친다. 감은 안개 같다. 있는 것 같은데 잡히지 않는다. 촉은 번개다. 바로 이거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그 번개가 어디에서 오는가. 내 머리에서 오는가. 내 경험에서 오는가. 아니다. 놀랍게도 촉은 내 안에서 오지 않는다. 상대방의 무의식에서 온다. 내 몸이 먼저 받고, 내 의식이 나중에 안다.


이것은 신비가 아니다. 구조다.



변명의 패턴


한 내담자가 있었다.


상담 약속을 자꾸 바꿨다. 첫 번째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교통이 막혔다고 했다. 세 번째는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겼다고 했다. 네 번째는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매번 달랐다. 매번 합리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각각의 이유는 말이 됐다. 하지만 패턴 전체가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왜 하필 상담 있는 날마다 이런 일이 생기는가. 그 사람의 삶에서 왜 상담 날만 이렇게 일이 많은가.


핑크는 이 지점에서 결정적인 것을 말한다. 분석에서는 아무것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핑크, 2021: 48). 환자가 변명을 할 때, 분석가는 항상 그가 제시한 이유가 과연 정당한지를 의심해야 한다. 변명은 결국 분석가에게 나에게는 분석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핑크, 2021: 49).


그런데 핑크가 진짜 강조하는 건 변명의 내용이 아니다. 왜 하필 그 말인가. 왜 하필 그 표현인가. 분명 어떤 이유 때문에 다른 표현이 아닌 바로 그 표현을 선택하게 되었을 것이다(핑크, 2021: 52).


왜 그 패턴인가. 이 질문이 임계점이었다.


나는 그 이상함을 오래 들고 있었다.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빠른 해석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그냥 들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선명해졌다.


이 사람은 상담이 두렵다.


상담을 원한다고 왔다. 그런데 실제로는 상담이 두렵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변명들은 그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의식적으로 꾸며낸 게 아니다. 그 사람도 자기가 왜 자꾸 약속을 바꾸는지 몰랐을 수 있다. 그냥 그날마다 진짜 이유가 생겼다고 느꼈을 거다.


하지만 무의식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의식이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비온은 이 과정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개념을 남겼다. 투사적 동일시는 개인이 아직 생각할 수 없는 감정과 경험을 타인의 마음속에 보내어 대신 처리해 달라는 무의식적 의사소통의 방식이다(신애자, 2026: 178). 그 내담자의 변명들은 공격이 아니었다. 조작도 아니었다. 자신의 내부에 머물 수 없는 두려움을 내 마음에 담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의식은 합리적인 이유를 대고 있었지만, 무의식은 나에게 두려움을 보내고 있었다.


네 번의 변명이 만들어낸 연쇄가 말한 것은 나는 이 상담이 두렵다였다.


핑크의 다른 말이 겹쳐진다. 정신분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 그가 실제로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의도한 바는 그가 의식적으로 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의도일 뿐이다(핑크, 2021: 54). 그 내담자가 의도한 것은 정당한 사정 때문에 약속을 변경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말한 것은 달랐다.


의도와 실제가 다르다. 그 간극에 무의식이 있다.



텅 빈 말


한 내담자가 상담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은 했다. 날씨 이야기, 출근길 이야기, 밥 먹은 이야기.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방 안이 텅 빈 느낌이었다.


나는 잠깐 멈췄다. 뭔가 이상했다. 이 사람은 왜 왔는가. 분명히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상담실에서 날씨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왜인가.


막연하게 어색하다는 감은 아니었다. 구체적인 뭔가가 걸렸다. 이 침묵이—말이 없는 게 아니라 말 안에 아무것도 없는 이 상태가—그 사람이 내게 보내는 신호라는 확신이 왔다.


핑크는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을 말한다. 환자가 자주 반복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말은 당시 환자가 의식적으로 생각한 것을 지칭할 뿐이다. 그들은 동일한 순간에 다른 수준에서 자신도 모르는 다른 생각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핑크, 2021: 53). 날씨 이야기를 하면서 그 내담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날씨였다. 의식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다른 수준에서, 자기도 모르는 다른 생각이 동시에 형성되고 있었다. 말하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


이 생각은 의식에 올라오지 못했다. 대신 텅 빈 말의 형태로 방 안에 새어나왔다.


비온의 언어로 읽으면 이렇다. 그 내담자가 내게 보낸 것은 베타 요소였다. 소화되지 않은 감각 덩어리. 말하면 무너질 것 같다는 공포가 아직 의미화되지 않은 채, 날것의 상태로 방 안에 떠돌고 있었다(신애자, 2026: 177). 날씨 이야기는 그 날것을 가리는 포장이었다. 그런데 포장이 아무리 깔끔해도, 날것의 무게는 전달된다. 그 무게가 텅 빈 느낌으로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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