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투사적 동일시와 머릿속 매미 잠재우기

상담에서 일상까지

by 홍종민

사주를 보다 보면 정말 신기한 현상을 경험할 때가 있다. 내담자가 들어와서 앉기도 전에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갑자기 우울한 기분이 밀려오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내 컨디션 문제인 줄 알았는데,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을 알고 나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투사적 동일시는 대상관계이론에서 "가장 유용하면서도 난해한 개념 중 하나"(Stadter, 2006: 73)로 알려져 있다. 한편, 우리는 상담이나 일상 대화에서 누군가의 고민, 불안, 상처 등을 듣다가 갑자기 스스로가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순간을 경험한다.

마치 머릿속에 '매미'가 쉼 없이 울어대는 듯한 혼란이 밀려오는데, 이때 우리는 그 '매미'를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투사적 동일시의 실체: 감정이 전염되는 순간


투사적 동일시의 본질은 이렇다. 내담자나 상대방이 지닌 불안이나 상처가,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 상담자(혹은 대화 상대)에게 전달되고, 그가 해당 감정을 실제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머릿속 매미라는 은유


**"머릿속 매미"**는 투사적 동일시로 인해 일어나는 정신적 잡음과 혼란을 비유한 표현이다. 상대의 감정이 '내 것'처럼 들러붙어, 머릿속이 시끄러워지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여름철 매미 소리를 생각해보자.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크다. 투사적 동일시로 떠안게 된 낯선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집요하게 머릿속을 괴롭히면서 심적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일상에서 겪는 감정 전염의 순간들


상담 현장에서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대화에서도 이 매미가 소란을 피울 수 있다. 친구가 **"요즘 너무 힘들어"**라고 하면서 하소연을 시작하는데, 듣다 보니 내가 더 우울해지는 경험.

직장 동료가 상사 불평을 늘어놓는데, 나까지 그 상사가 미워지기 시작하는 현상. 이 모든 게 투사적 동일시의 일상적 발현이다.

내게 주어진 감정이 내 것인지, 상대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질 때, 우리는 어떻게 그 매미 소리를 가라앉히고,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직면하기: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보기


정신분석가 **조지프 버고(Joseph Burgo)**는 "마음속의 어떤 것도 없앨 수는 없다. 대신 다른 부분을 성장시켜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을 뿐"(Burgo, 2019: 247)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부정적 감정이나 투사된 감정을 단순히 억누르거나 도피하는 대신, 그것을 직면해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매미 소리를 억누르면 더 커진다


머릿속 매미를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 매미 소리가 귀찮다고, 계속 **'조용히 해!'**라고 외치면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릴 수도 있다.

오히려 **"지금 내 머릿속에서 울고 있는 소리는 무슨 감정일까?"**라고 물으며, 그 정체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 경험으로도 이는 확실하다. 어떤 내담자와 상담하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질 때, 처음엔 '왜 그럴까?' 싶어서 그 감정을 밀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심해지더라.

그래서 이제는 **"아, 이 분이 가슴 답답함을 느끼고 계시는구나"**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감정이 훨씬 견딜 만해진다.


마음챙김과 라벨링의 힘


명상에서 **'마음챙김(mindfulness)'**을 강조하듯,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을 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알아차리고 **라벨링(labeling)**하는 훈련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아,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은 상대방의 감정일 수도 있겠다"**는 식으로 직관적으로 파악해보는 것이다.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면, 상대방의 불안이나 슬픔이 '내 것'처럼 밀려오지만, 이를 애써 외면하기보다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지?"**를 자문해보는 과정이 '머릿속 매미'를 잠재우는 첫걸음이다.


환상과 현실 사이: 망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


투사적 동일시에는 **내면에서 발생하는 환상(fantasy)**이 크게 작용한다(강혜정, 2022: 190).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내가 정말 다른 사람의 감정을 100% 읽는 능력이 있다"**거나, 반대로 **"상대가 내게 이 감정을 억지로 집어넣는다"**는 등 과대·피해 망상적 관점에 빠지기 쉽다.


환상과 망상의 차이점


환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무의식적 심상이며, 망상과 달리 현실 검토를 통해 조절 가능하다. 투사적 동일시가 빚어내는 이미지는 일종의 **'역할극'**과 같아서, 임시적으로 **'내가 상대의 감정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는 상황이다.

실제로 내가 사주를 보면서도 이런 경험을 한다. 어떤 내담자 얘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이 사람 어머니가 우울증이 있으셨겠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러면 정말로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걸 **"내가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이건 그 사람의 무의식적 에너지와 내 무의식이 공명해서 일어나는 환상적 현상일 뿐이다.


자기-파편화 방지하기


**해밀턴(Hamilton, 2017: 47)**은 투사적 동일시 과정에서 자기 부분이 파편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정신분열적 상태와 유사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건 어디까지나 환상의 산물이다"**라는 현실 검토가 중요하다.

머릿속 매미가 울어댈 때, **"이건 내가 만들어낸 혹은 상대와 합작한 환상일 뿐"**이라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소음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비온의 베타 요소: 소화되지 않은 감정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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