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투사적 동일시와 머릿속 매미 잠재우기
상담에서 일상까지
by 홍종민 Jul 22. 2025 brunch_membership's
사주를 보다 보면 정말 신기한 현상을 경험할 때가 있다. 내담자가 들어와서 앉기도 전에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갑자기 우울한 기분이 밀려오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내 컨디션 문제인 줄 알았는데,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을 알고 나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투사적 동일시는 대상관계이론에서 "가장 유용하면서도 난해한 개념 중 하나"(Stadter, 2006: 73)로 알려져 있다. 한편, 우리는 상담이나 일상 대화에서 누군가의 고민, 불안, 상처 등을 듣다가 갑자기 스스로가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순간을 경험한다.
마치 머릿속에 '매미'가 쉼 없이 울어대는 듯한 혼란이 밀려오는데, 이때 우리는 그 '매미'를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투사적 동일시의 실체: 감정이 전염되는 순간
투사적 동일시의 본질은 이렇다. 내담자나 상대방이 지닌 불안이나 상처가,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 상담자(혹은 대화 상대)에게 전달되고, 그가 해당 감정을 실제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머릿속 매미라는 은유
**"머릿속 매미"**는 투사적 동일시로 인해 일어나는 정신적 잡음과 혼란을 비유한 표현이다. 상대의 감정이 '내 것'처럼 들러붙어, 머릿속이 시끄러워지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여름철 매미 소리를 생각해보자.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크다. 투사적 동일시로 떠안게 된 낯선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집요하게 머릿속을 괴롭히면서 심적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일상에서 겪는 감정 전염의 순간들
상담 현장에서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대화에서도 이 매미가 소란을 피울 수 있다. 친구가 **"요즘 너무 힘들어"**라고 하면서 하소연을 시작하는데, 듣다 보니 내가 더 우울해지는 경험.
직장 동료가 상사 불평을 늘어놓는데, 나까지 그 상사가 미워지기 시작하는 현상. 이 모든 게 투사적 동일시의 일상적 발현이다.
내게 주어진 감정이 내 것인지, 상대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질 때, 우리는 어떻게 그 매미 소리를 가라앉히고,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직면하기: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보기
정신분석가 **조지프 버고(Joseph Burgo)**는 "마음속의 어떤 것도 없앨 수는 없다. 대신 다른 부분을 성장시켜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을 뿐"(Burgo, 2019: 247)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부정적 감정이나 투사된 감정을 단순히 억누르거나 도피하는 대신, 그것을 직면해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매미 소리를 억누르면 더 커진다
머릿속 매미를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 매미 소리가 귀찮다고, 계속 **'조용히 해!'**라고 외치면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릴 수도 있다.
오히려 **"지금 내 머릿속에서 울고 있는 소리는 무슨 감정일까?"**라고 물으며, 그 정체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 경험으로도 이는 확실하다. 어떤 내담자와 상담하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질 때, 처음엔 '왜 그럴까?' 싶어서 그 감정을 밀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심해지더라.
그래서 이제는 **"아, 이 분이 가슴 답답함을 느끼고 계시는구나"**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감정이 훨씬 견딜 만해진다.
마음챙김과 라벨링의 힘
명상에서 **'마음챙김(mindfulness)'**을 강조하듯,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을 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알아차리고 **라벨링(labeling)**하는 훈련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아,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은 상대방의 감정일 수도 있겠다"**는 식으로 직관적으로 파악해보는 것이다.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면, 상대방의 불안이나 슬픔이 '내 것'처럼 밀려오지만, 이를 애써 외면하기보다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지?"**를 자문해보는 과정이 '머릿속 매미'를 잠재우는 첫걸음이다.
환상과 현실 사이: 망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
투사적 동일시에는 **내면에서 발생하는 환상(fantasy)**이 크게 작용한다(강혜정, 2022: 190).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내가 정말 다른 사람의 감정을 100% 읽는 능력이 있다"**거나, 반대로 **"상대가 내게 이 감정을 억지로 집어넣는다"**는 등 과대·피해 망상적 관점에 빠지기 쉽다.
환상과 망상의 차이점
환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무의식적 심상이며, 망상과 달리 현실 검토를 통해 조절 가능하다. 투사적 동일시가 빚어내는 이미지는 일종의 **'역할극'**과 같아서, 임시적으로 **'내가 상대의 감정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는 상황이다.
실제로 내가 사주를 보면서도 이런 경험을 한다. 어떤 내담자 얘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이 사람 어머니가 우울증이 있으셨겠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러면 정말로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걸 **"내가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이건 그 사람의 무의식적 에너지와 내 무의식이 공명해서 일어나는 환상적 현상일 뿐이다.
자기-파편화 방지하기
**해밀턴(Hamilton, 2017: 47)**은 투사적 동일시 과정에서 자기 부분이 파편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정신분열적 상태와 유사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건 어디까지나 환상의 산물이다"**라는 현실 검토가 중요하다.
머릿속 매미가 울어댈 때, **"이건 내가 만들어낸 혹은 상대와 합작한 환상일 뿐"**이라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소음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비온의 베타 요소: 소화되지 않은 감정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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